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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준우 | 써니아일랜드 대표

디자인 스튜디오 창업노트 저자, K-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

 

 

 


 

 

 

철길은 숲길이 되었고, 경계는 관계가 되었다. 연트럴파크라 불리는 경의선숲길 연남동 구간을 걷다 보면 하나의 공원 안에서도 공간의 속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좌역과 코오롱아파트에 가까운 북쪽에서는 주민들이 조용히 걷고 운동한다. 주거지와 맞닿은 길에는 일상의 차분한 리듬이 흐른다. 반면 홍대입구역 방향으로 내려갈수록 사람과 상점이 많아지고, 식당과 술집, 만남과 공연이 이어지며 공간의 온도가 높아진다. 하나의 길이지만 하나의 표정만을 갖고 있지는 않다. 조용한 아침과 활기찬 밤, 주민의 일상과 방문객의 경험, 오래된 동네와 새로운 상권이 하나의 선 위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경의선숲길은 철도가 지하화되면서 남겨진 지상부를 활용해 만들어졌다. 오랫동안 동네를 나누었던 철길이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는 공원으로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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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트럴파크는 과거를 모두 지우고 새로운 이미지를 덧씌우지 않았다. 철길의 기억과 기존 수목을 남기고, 골목과 주거지, 상권을 공원으로 연결했다. 지역이 가지고 있던 시간과 생활의 흔적을 새로운 일상 안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그 결과 경의선숲길은 단순한 산책로를 넘어 연남동을 대표하는 장소가 됐다. 주민에게는 일상적으로 걷고 쉬는 생활공간이 되고, 방문객에게는 연남동을 경험하는 출발점이 됐다. 주변의 작은 상점과 문화활동을 연결하며 지역 전체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지역성은 새로 만들어 붙이는 이미지가 아니다. 이미 존재하던 기억과 생활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일이다. 경의선숲길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약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조성됐다. 주민설명회와 전문가 자문을 통해 실개천과 다목적 공간, 기존 은행나무 보존 등의 의견도 설계에 반영됐다. 그러나 지금의 연트럴파크가 행정과 설계자의 계획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공원이 열린 뒤 사람들이 걷고 머물고 상점을 이용하면서 구간마다 서로 다른 역할이 형성됐다. 주거기능이 강한 북쪽은 산책과 운동, 휴식이 중심이 되는 주민의 공원이 됐다. 홍대입구역과 가까운 남쪽은 만남과 문화활동, 상업적 활기가 모이는 방문객의 공원이 됐다. 그 사이 구간은 주민의 일상과 방문객의 경험이 교차하는 완충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부터 모든 역할을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장소가 자신에게 맞는 기능을 찾아간 것이다. 좋은 공공디자인은 공간의 사용법을 모두 결정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장소를 완성할 여지를 남겨둔다. 연트럴파크에도 소음과 음주, 쓰레기, 공연과 상업화로 인한 갈등이 있었다. 조용한 생활을 원하는 주민과 활기를 즐기는 방문객의 요구도 달랐다. 그러나 갈등이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공공디자인의 실패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이 공간을 사용하면 설계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요구가 드러난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없었느냐가 아니라, 드러난 문제를 관찰하고 운영기준과 관리방식을 계속 조정할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은 ‘오픈엔디드 디자인(Open-ended design)’과 연결된다. 처음부터 모든 사용법과 결과를 확정하지 않고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뒤, 사용자의 행동과 시간의 흐름을 다음 결정에 반영하는 것이다.

 

갈등은 디자인의 실패가 아니라, 다음 디자인을 시작하게 하는 정보가 된다. 연트럴파크의 성공은 모든 구간을 같은 시설과 분위기로 통일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디자인의 일관성보다 장소마다 다른 조건과 속도를 인정했다. 공공디자인은 물리적 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행정·주민·상인·방문객의 관계를 조정하고, 변화하는 이용방식에 맞춰 운영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연트럴파크의 성과를 방문객 수나 아름다운 경관만으로 설명해서는 부족하다. 철길이 나누었던 동네를 다시 연결하고, 장소가 가진 기억을 남기며, 서로 다른 사람과 생활의 속도를 하나의 공원 안에 담아낸 것이 더 중요한 성과다. 공공디자인의 성공은 완벽한 결과물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는 지역과 사람, 환경과 관계를 받아들이고 계속 변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연트럴파크는 완성된 공원이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시간과 함께 각자의 역할을 찾아가는 공원이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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