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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 Matutina

Founder of Plus63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디자인과 일러스트를 하게 된 계기, 창작 여정의 주요 단계, 그리고 현재 주력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필리핀 마닐라 소재 디자인 스튜디오 Plus63의 디렉터 Dan Matutina 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과 미술을 좋아했지만, 일러스트나 디자인, 미술을 직업으로 삼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메트로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 타클로반에서 자랐고, 당시엔 크리에이티브 업계에서 커리어를 쌓는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못했거든요. 그래서 공립 고등학교에서는 과학과 기술에 더 관심이 있어 기술 중심 과정을 선택했습니다. 대학을 지원할 때는 한 잡지에서 미술을 전공한 지역 아티스트의 성공담을 읽고 미술대를 택했습니다. 그때서야 미술이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과정’이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필리핀대학교 입학시험을 볼 때도 미술대를 지원했습니다. 합격 통보를 받았고, 그게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대학에서 미술의 기초를 대부분 배웠죠. 대학에서 처음 사랑한 분야는 영화였지만 제작이 쉽지 않아 디자인과 일러스트도 함께 탐색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광고회사에서 3년간 일했습니다. 광고 일을 즐기지 못했고 지금도 크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친구 넷과 함께 사회적 디자인 에이전시를 차렸고, 이후 각자 길을 가게 되면서 Plus63를 설립했습니다. 2016년에는 Hydra Design Group을 공동 설립했습니다. 요즘은 여러 프로젝트를 병행합니다. 에이전트 페카와 비전트랙의 대표 작가로 일러스트 작업을 유지하면서, Plus63와 Hydra에서 디자인 일도 계속합니다. 또 Space63라는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크리에이티브 친구들을 초대해 독특한 공간에서 팝업을 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공간을 되찾고 만들어가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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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작품 속에 레트로 감성과 미래적 색채, 기술적 정밀성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적 영향과 스타일은 어디에서 왔고, 어떤 배경과 경험이 지금의 언어를 만들었나요?

 

제 일러스트에 영향을 준 이들은 필리핀 국립예술가들이었습니다. 아르투로 루즈(미니멀한 기하 추상과 여백의 우아한 활용), 비센테 마난살라(중첩된 면과 형태로 이루어진 투명 입체주의), H.R. 오캄포(유기적이며 생물학적 형태의 역동적 추상), 앙 키우콕(인간 조건을 강렬하게 포착한 표현주의) 등입니다. 또한 디즈니의 「잠자는 숲속의 공주」 배경으로 유명한 에이빈드 얼의 그래픽한 자연 묘사, 「덱스터의 실험실」과 「사무라이 잭」을 만든 겐디 타르타코프스키의 대담한 기하 구성과 실루엣, 미드센추리 모던 그래픽으로 알려진 에릭 니체, 기능과 기하 원리를 중시한 바우하우스, 네오 퓨처리스트 콘셉트 아티스트이자 산업 디자이너인 시드 미드 등 많은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에게서도 영감을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과학 서적과 백과사전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유의 기술 도해, 선명한 색 구성, 복잡한 개념을 시각적으로 이해시키는 레트로 퓨처리즘 스타일이 제 시각 언어에 깊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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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디자이너로서, 나라를 대표하는 고유의 디자인 정체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있다면 본인의 작업과 시각적 표현에서 어떻게 드러난다고 생각하나요?

 

우리는 아직 ‘진정으로 고유한’ 디자인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 있다고 봅니다. 한국이나 일본, 태국처럼 고유 문자를 가진 나라와 달리 필리핀은 라틴 알파벳을 사용합니다. 현지어와 방언이 다양하지만 미디어는 주로 영어를 쓰죠. 그래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은 서구적 인상이 강합니다. 필리핀의 디자인과 예술은 흔히 맥시멀, 유기적, 장난스럽다는 이미지로 묘사됩니다. 다만 나라 안에서도 ‘그래픽하고 미니멀’한 작업을 선보이는 지역들이 존재합니다. 제 생각에 ‘필리핀 스타일’은 디자이너의 집단적 문화 경험이 응축된 표현입니다. 제 작업에서는 제 삶의 경험이 곧바로 드러나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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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프로젝트와 협업을 통해 보셨을 때, 디자인에서 ‘아시아적’이라 느껴지는 고유한 특성이 있나요? 있다면 글로벌 디자인 관행과 어떻게 다르거나 두드러진다고 보십니까?

 

정말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웃음) 어떤 작업이 ‘아시아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한 요소는 인지 가능한 아시아 문자 사용입니다. 한국의 한글, 일본의 한자를 보면 사람들은 곧바로 그 나라를 연상하죠. 하지만 필리핀이나 싱가포르처럼 영어 문자 사용이 많은 곳에서는 무엇이 ‘아시아적’인지를 특정하기가 어렵습니다. 필리핀은 문자가 아닌 다른 층위의 영향이 겹치며 정체성이 드러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필리핀 디자인은 선명한 색, 대담한 그래픽 요소, 전통과 현대의 혼합이 특징입니다. 학자들은 스페인 식민 건축과 미국 점령기의 영향이 현대 디자인에 남아 있고, 동시에 깊은 토착 전통이 공존한다고 말합니다. 지프니 아트만 봐도 종교 이미지, 가족 사진, 애니메이션, 영화 캐릭터, 농구 스타까지 뒤섞여 세계적이면서도 매우 로컬한 시각 언어를 만듭니다. 대중문화와 개인적 자부심이 함께 흐르는 것이죠.

 

영문 중심임에도 필리핀 디자인이 아시아적으로 보이는 까닭은 풍부한 시각적 밀도와 스토리텔링을 품기 때문입니다. 전통 패턴과 직물을 현대적 맥락에 자연스럽게 통합해 ‘분명히 필리핀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나무, 라탄, 아바카 같은 토착 재료와, 마라나오의 오키르 문양에서 민다나오의 기하 패턴과 화려한 직물에 이르는 다양한 모티프가 사용됩니다. 저는 아시아 디자인이나 일러스트의 한 가지 규정적 특성이, 다층적 요소와 따뜻함, 전통에 뿌리내린 상징성이라고 봅니다. 필리핀 디자인은 다중 참조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색과 패턴을 축하하며 개인과 문화의 서사를 작업 속에 새겨 넣는 태도에서 그 특성을 보여줍니다. 문자가 아니라 시각적 이야기 방식이 아시아적입니다. 감정적 연결, 공동체적 가치, 의미의 중첩을 중시하는 접근이 미니멀한 절제보다 우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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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폴리오는 에디토리얼 일러스트, 브랜딩, 디지털 아트 등 매우 넓은 범위를 아우릅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얻은 통찰은 무엇이며, 디자이너로서의 접근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디자인과 일러스트를 함께 하는 이유는 서로의 균형을 잡아 주기 때문입니다. 일러스트는 제 스타일과 개인적 표현에 집중하게 해 줍니다. 대체로 혼자 하는 작업에 가깝고, 에이전트나 아트디렉터, 클라이언트와 협업하지만 창작의 대부분은 제 손에서 나옵니다. 반면 디자인은 협업 과정입니다. 제가 스튜디오를 이끄는 Plus63에서는 결과물이 팀 전체에 의해 형성됩니다. 결과는 단일한 스타일이나 개인적 표현에 묶이지 않고, 브리프와 브랜드나 클라이언트의 성격에 의해 결정됩니다.

 

서로 다른 그룹 다이내믹과 역할을 오가며 때로는 리드하고 때로는 팔로우하고 때로는 그저 듣는 시간이 저를 성장시켰습니다.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사고를,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수공을,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의사결정을 담당합니다. 이런 유연함이 창작 체력을 유지시키고 계속 진화하게 만듭니다. 저에게 독립적 표현과 집단적 창작의 균형이 작업을 살아 있게 합니다. 단지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연함을 유지하고 타인에게서 배우며, 때로는 하나의 목소리로, 또 때로는 팀원으로 기여하는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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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도구와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표현의 가능성이 크게 넓어졌습니다. 이런 변화가 본인의 작업을 어떻게 바꾸고 있으며, 어떤 기회와 도전이 있다고 보십니까?

 

도구와 기술은 우리가 더 나은 작업을 하도록 활용하고 길들이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경험과 사고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도구를 형성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AI가 우리의 일과 생계를 위협한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실제로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길을 찾으리라 낙관합니다. 창작은 아이디어를 내는 일만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에 기술, 공예, 인간의 손길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AI가 더 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인간의 창의성, 존엄, 연결을 희생하고 얻는 효율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기술은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일을 덜어 주어 상상과 실험, 대화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해 줄 때 진정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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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과 더 넓은 아시아의 디자인 미래를 위해 어떤 제도적, 교육적, 문화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보나요? 그 과정에서 개인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아시아 디자이너들 사이의 연결을 더 촘촘히 하고, 교류를 확대하며, 연대를 깊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어 장벽이 있지만 협업을 막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필리핀의 크리에이티브 산업은 오랫동안 서구 중심이었습니다. 이제는 아시아 이웃을 더 바라보고 관계를 맺으며 서로 배우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차이가 있더라도 우리는 많은 문화적 가치, 역사, 창작 감각을 공유합니다. 이 유사성에 다양한 관점과 철학, 접근을 더하면 지역의 디자인 지형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이를 위해 기관과 학교는 공동 프로그램, 지역 디자인 페스티벌, 공동 연구 등 국경을 넘는 협업 플랫폼을 더 만들어야 합니다. 문화적으로는 우리의 서사를 더 적극적으로 축하하며, 그것이 단지 로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아시아 이야기의 일부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별 디자이너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스스로 다리가 되어 다른 나라의 동료를 찾아 나서고, 지역적 맥락에서 작업을 공유하며, 영향과 교환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개인의 실천도 강해지고, 더 연결된 아시아 디자인·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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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아시아 디자인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다음 세대 디자이너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들려주세요.

 

먼저 우리 앞에 놓인 과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우리가 그것을 해결할 역량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술가,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의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은 길을 밝힐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연결되고 나누며 배우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많은 가능성을 열어 주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미래는 여러 목소리가 각자의 관점을 보태며 함께 그릴 때 가장 잘 보입니다. 아시아에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창작 방식이 있고, 그 차이는 곧 우리의 힘입니다. 다음 세대 디자이너들이 익숙한 패턴을 넘어 탐색하고, 국경을 넘어 손을 내밀며, 상호 존중과 이해에 뿌리 내린 진정한 연결을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 움직일 때, 아시아 디자인의 미래는 더 넓고 깊게 확장될 것입니다.

 

 

 


 

 

 

에디터 이용혁

Archive. Design. Ess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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