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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kie Santos

독립 디자이너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Kookie는 ‘의도를 담아 창작하는 일은 곧 진심을 담는 일’이라는 단순한 믿음에서 출발한 필리핀 디자이너다. 시리어스 스튜디오(Serious Studio)의 시작을 함께 만들었고, 이후 캔바(Canva)에서 글로벌 팀과 협업하며 크래프트의 기준을 이끌어 왔다. 그 과정은 호기심과 용기, 그리고 낯선 세계의 경계에 기꺼이 머무르려는 태도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녀는 디자인을 ‘질문은 나의 살아가는 방식’으로 삼고 있다. 이번 대화에서는 그녀가 기쁨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저항이 될 수 있는지, 필리핀에서 커뮤니티가 창작 문화를 어떻게 관계할 수 있는지, 그리고 아시아 디자인의 정체성이 결국 ‘서로를 살피는 마음’이라는 공통의 윤리에서 출발할 수 있는 이유를 들려준다.

 

 

 

ADP 독자들에게 본인을 소개해주시고, 디자인을 업으로 삼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안녕하세요. 필리핀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 쿠키(Kookie)입니다. 저는 창작이라는 행위가 결국 우리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향한 하나의 ‘돌봄(Care)’의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특히 의도가 분명한 창작일수록 더 큰 힘을 가진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만들 때 가장 설레는 순간은, 즐거움과 놀이, 탐험의 감각이 살아 있는 경험을 만들어낼 때입니다. 저는 약 8년 동안 필리핀의 브랜딩·디자인 스튜디오 ‘시리어스 스튜디오(Serious Studio)’에서 파트너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습니다. 대학을 막 졸업한 신입 시절부터 스튜디오의 설립과 성장을 함께할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행운이었죠. 다만 그만큼 쉽지 않은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정해진 운영 매뉴얼도, 참고할 만한 정답도 없는 상태에서 파트너들과 함께 부딪히며 하나씩 배워야 했거든요. 자연스럽게 안전지대 밖으로 내몰렸고, 그 과정에서 ‘불편함’과 친해지는 법을 배우게 됐습니다.

 

그 시행착오 덕분에 디자인 실력은 물론, 까다로운 프로젝트와 촉박한 일정에 대응하는 감각,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법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이후 캔바(Canva)에서 3년간 디자인 리드로 일하며 이런 경험들을 한층 더 확장할 수 있었어요. 로컬과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팀의 작업 퀄리티를 유지하고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았는데, 책임의 범위가 훨씬 커지다 보니 처음에는 솔직히 부담도 컸습니다. 하지만 동료들의 신뢰와 지지가 있었기에 점차 주도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어요. 흥미로웠던 점은, 이미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조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캔바 역시 “완벽한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전제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직접 시도해보기 전까지는 옳고 그름을 단정할 수 없다는 태도 덕분에, 크리에이티브 팀을 위한 교육과 학습 프로그램을 실험해볼 수 있는 굉장히 건강한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현재는 독립적으로 작업한 지 약 2년 정도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선택이지만, 돌이켜보면 그동안의 경험들이 이 시기를 위해 저를 준비시켜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모른다는 상태’와 ‘낯선 영역을 탐험하는 일’이 점점 익숙해졌어요. 지도도 없고 방향이 불분명하다고 느껴질 때 오히려 저 자신과 타인에 대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더라고요. 독립적인 작업은 제 직관을 더 깊이 신뢰하게 만들고, 스스로 창작의 리듬과 방향을 다듬게 해줍니다. 저는 지금도 계속해서 제 의도를 돌아보고, 그 의도가 제가 선택하는 프로젝트와 아이디어, 신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저에게 일종의 수행이자, 기꺼이 감당하고 싶은 개인적인 책임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이유로 저는 디자인을 업으로 선택했습니다. 창의성은 우리가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깨어 있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디자인은 제게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예술’을 가르쳐 주었어요.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를 넘어, 질문 그 자체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랄까요. 창작의 과정 속에서 모든 것은 늘 진행 중이며, 생성과 변화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디자인을 통해 저는 저 자신과 타인, 그리고 이 세상을 이해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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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님의 작업은 강렬한 밝음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철학이나 의도는 무엇인가요?

 

제 창작 철학의 중심에는 언제나 ‘놀이(Play)’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전문적인 작업에 놀이를 끌어들이는 것을 다소 가볍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지금처럼 세상이 복잡하고 무거울수록,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놀이를 어린 시절에만 허락된 것으로 배워왔죠. 긴박한 문제들 앞에서 기쁨이나 장난기는 쉽게 얄팍하거나 경박한 것으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삶이 언제나 가볍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놀이’라는 태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특정한 모습으로 살아가라고 요구하고, 우리가 갈 수 있는 경계를 정해놓을 때, 놀이는 그에 대한 하나의 저항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저에게 놀이는 결코 가벼운 개념이 아닙니다. 놀이는 대담하고, 용기 있으며, 아주 깊은 사유를 품고 있습니다. 상상력과 확장, 그리고 아직 열리지 않은 가능성을 향한 태도이기도 하죠.

 

놀이를 선택한다는 것은 취약해질 용기를 요구합니다. 가면을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창작 과정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호기심에 이끌리게 됩니다. 확실함이 주는 오만 대신, 모른다는 상태가 주는 겸손을 받아들이고, 경직된 논리보다는 사려 깊은 직관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놀이는 저에게 ‘인간이 되는 법’을 가르쳐 주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제 작업에서 드러나는 밝음이나 에너지는 어떤 전략적인 연출이라기보다, 저 자신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려는 선택의 결과에 가깝습니다. 작업이 잘 풀리지 않거나 고민이 깊어질 때마다, 저는 늘 스스로에게 상기시킵니다. 가장 좋은 결과는 언제나 ‘놀이의 상태’에서 나왔다는 사실을요. 그때의 저는 탐험하고, 실험하고, 실수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있었습니다.

 

놀이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결과보다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탐험의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들 말이죠. 저는 늘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내 작업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 그 흐름을 믿고 맡길 용기가 있는가?” 놀이는 혼란스럽고, 앞뒤가 맞지 않고, 때로는 엉뚱해 보이는 모든 것들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태도 속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결과가 탄생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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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그래피, 컬러,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작가님만의 접근 방식은 무엇인가요? 프로젝트에서 유독 돋보이는 요소들인데요.

 

제 접근 방식을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제 창작의 나침반은 언제나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이 작업이 나를 미소 짓게 하는가?'라는 질문이죠. 다행히 지금은 작업에 충분히 익숙해져서, 기술적인 요소나 ‘무엇이 좋은 디자인인가’라는 이론에 과도하게 매달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기술적 완성도를 가볍게 여긴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술이 몸에 밴 상태에서, 그 디자인이 주는 ‘느낌’을 기준으로 저만의 좋은 디자인을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술을 증명하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작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할 것인지에 더 집중합니다. 저에게는 컨셉과 이야기를 명확히 이해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왜 이 작업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전달하려는지를 분명히 하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타이포그래피와 컬러, 일러스트레이션의 성격 역시 그 지점에서 결정됩니다. 초반에는 비주얼 작업이 마치 추측 게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려웠고, 클라이언트의 반응에도 늘 긴장했죠.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에, 충분한 고민 없이 시각적인 요소부터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시각화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진짜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를 먼저 묻는 것이 작업의 흐름을 훨씬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을요. 핵심 아이디어와 의도, 목표를 충분히 성찰할 시간을 갖는 순간, 작업은 오히려 더 빠르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저는 더 이상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창작을 이어가며, 과정 속에서 컨셉이 스스로 진화하고 변형되도록 내버려 둡니다. 이는 컨셉과 시각적 요소 사이에서 이어지는 끊임없는 대화와도 같습니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계속해서 정보를 교환합니다. 저는 ‘의도를 담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감정을 담은 디자인’을 믿습니다. 논리적으로 타당한가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느낌이 좋은가 역시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기분 좋은 느낌이란 친근하고, 생기 넘치며, 활력이 느껴지는 상태입니다. 제 작업에서 자주 보이는 밝고 경쾌한 시각적 성향은 바로 그런 ‘살아 있음’을 표현합니다. 약간은 거칠고, 조금은 펑키하고, 어딘가 엉뚱한 구석이 있죠. 저는 사려 깊은 치밀함과 장난기 어린 불완전함 사이의 균형을 통해 그 감각을 작업에 담아내려 합니다. 결국 저를 미소 짓게 하고, 작업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바로 그런 요소들이기 때문입니다. 작업이 살아 숨 쉬기 위해서는, 그 안에 솔직함이 반드시 담겨야 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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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나 협업이 있다면 소개해주시고, 그 경험이 디자이너로서의 관점을 어떻게 확장하거나 영향을 주었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우그나얀(Ugnayan)’입니다. 이 작업은 사려 깊은 창작과 의미 있는 연결에 대한 제 가치관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준 프로젝트였어요. 우그나얀은 젠 혼(Jen Horn)과 함께 공동 제작한 작업으로, 필리핀 타갈로그어로 ‘연결’을 의미합니다. 그중에서도 ‘우그나얀 카드(Ugnayan Cards for Connection)’는 우리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과의 연결을 보다 깊고 자유로운 성찰과 대화를 통해 돕는 도구로 기획되었습니다. 다행히 이 프로젝트는 2024년 굿 디자인 어워드 필리핀(Good Design Award Philippines)에서 이미지 메이킹과 오브젝트 메이킹 두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 젠과 저를 이끌었던 말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Fun fun lang', 그러니까 그냥 재미로 해보자는 말이었죠. 이 한마디 덕분에 우리의 창작 과정은 자연스럽게 열려 있었고, 반복적이면서도 대화 중심적인 협업이 가능했습니다. 주력 제품인 우그나얀 카드를 세상에 내놓을 즈음에는, 이미 젠과 저 사이에 깊은 우정이 형성되어 있었어요. ‘연결’을 위해 디자인한 프로젝트가 실제로 창작자들 사이의 연결을 더 깊게 만들었다는 점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인상 깊었습니다. 외부의 인정이나 론칭 이전에, 그 자체가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성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작업의 투박하고 DIY적인 과정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격식 있는 회의 대신, 안부를 묻는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아이디어와 피드백이 오갔죠. 젠은 집에서 친구들을 초대해 자신이 만든 질문들을 직접 테스트하곤 했고, 저는 기존 클라이언트 작업에서 따르던 공식적인 워크플로우를 일부러 내려놓았습니다. 대신 흐름을 믿고, 과정이 이끄는 방향을 신뢰했어요. 철저한 시장 조사나 사용자 분석, 디자인 트렌드를 따르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믿는 가치에서 출발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작업했습니다. 서로를 공동 창작자로 소개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가장 진실하게 느껴지는 이름을 선택했어요. 젠은 자신을 ‘다가파그파달로이(tagapagpadaloy)’, 즉 흐름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 불렀고, 저는 ‘칼라로(kalaro)’, 기쁨을 향해 디자인하는 놀이 친구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과정 속에서 쏟아부은 기쁨과 헌신이 결국 결과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우그나얀은 단순한 제품을 넘어, 창의성과 실험, 그리고 연결을 위한 하나의 플랫폼이 되었어요. 이 브랜드를 키워가는 과정은 우리가 지키는 가치에 얼마나 진실한지가 곧 우리 자신과 우그나얀의 안녕(wellbeing)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상기시켜 줍니다.

 

공동 창작자로서 우리의 관계는 상호 존중과 공유된 가치라는 단단한 토대 위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기술과 경험, 그리고 개인적인 열망을 신뢰하며 작업합니다. 디자이너로서 우그나얀은 필리핀 문화와 커뮤니티, 그리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저의 이해를 한층 더 확장시켜 주었습니다. 젠과의 협업은 제 창작의 범위를 시각적인 영역을 넘어, 다른 형태의 표현과 창의성으로 넓혀주었고요. 서로 다른 창의성이 만날 때, 과정과 결과물은 자연스럽게 더 다층적이고 학제적인 가능성을 품게 됩니다. 익숙한 영역과 안전지대를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창의성을 스승 삼아, 보다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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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필리핀 그래픽 디자인의 지형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젊은 필리핀 디자이너들의 작업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저는 현재 필리핀 그래픽 디자인이 매우 유망한 궤도 위에 올라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변화의 흐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또 그 과정에 일부라도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을 큰 특권으로 느끼고 있어요. 제가 2013년에 대학을 졸업했을 당시만 해도, 필리핀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살아갈 수 있는 선택지는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광고 회사에 들어가거나, 기업 조직 안에서 디자이너라기보다는 ‘디자인을 할 줄 아는 사람’, 이를테면 보기 좋은 PPT를 만드는 역할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저에게는 그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거나, 아니면 그래픽 디자인이 더 생존 가능하고 주목받는 분야가 되도록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선택지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운이 좋게도 저는 시리어스 스튜디오에서 후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시기부터 그래픽 디자인 업계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필리핀 디자인이 어떻게 점진적으로 진화해왔는지를 몸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필리핀 그래픽 디자인의 지형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고 훨씬 더 다채로워졌습니다. 브랜딩, 일러스트레이션, 레터링과 타이포그래피, 판화 등 다양한 전문 영역에서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등장하고 있고, 흥미롭고 에너지 넘치는 작업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결과 더 많은 로컬 브랜드는 물론 글로벌 브랜드들까지도 제품 협업이나 프로모션을 위해 필리핀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습니다. 필리핀의 창작자들이 국내외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정당한 보수와 건강한 업무 환경에 대해 더 분명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그래픽 디자인과 창작이 현실적인 진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창작 인구가 늘어나면서 커뮤니티 이벤트 역시 눈에 띄게 활성화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떤 행사에 갈지 고민해야 할 정도로 선택지가 많아졌고, 때로는 여러 행사를 오가며 참여해야 할 만큼 활발합니다. 제가 2013년부터 지금까지 지켜본 변화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점은, 필리핀 인재들을 서로 지지할 때 영향력과 관심이 자연스럽게 확산된다는 사실입니다. 경쟁과 결핍의 논리에 빠지기보다는, 가시성과 연결을 넓히고 자원을 공유하며 동료 창작자의 성공을 함께 기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필리핀 디자인과 창의성의 영향력을 진정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안녕’과 ‘서로를 지지하는 커뮤니티’가 업계의 기본값이 되어야 합니다.

 

필리핀 그래픽 디자인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말로 딱 잘라 설명하기 어려운 표현력과 풍부함, 그리고 따뜻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특정한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작업 전반에 스며 있는 공유된 문화적 경험에 가깝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필리핀 사람들은 따뜻하고, 유쾌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민족으로 인식되곤 하는데, 이러한 이미지가 필리핀 디자인을 시끄럽고 활기차며 맥시멀한 시각 언어로 연결시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저는 필리핀 그래픽 디자인이 그 이면에 있는 ‘결핍과 필요’, ‘깊이’, 그리고 ‘투쟁’의 경험에 의해서도 크게 형성된다고 봅니다. 우리는 식민 지배의 역사, 정치적·기업적 탐욕, 그리고 만성적인 자원 부족이라는 현실을 짊어지고 살아왔습니다. 다른 문화권에 비해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 편이기도 한데, 저는 바로 그 점이 오히려 표현력과 감정이 예술로 응축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필리핀 디자이너들의 작업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필리핀인으로서 경험하는 ‘기쁨’과 ‘투쟁’을 동시에 끌어안으려는 태도입니다. 그 안에는 유머와 따뜻함, 재치와 용기뿐만 아니라 좌절과 분노까지 함께 공존합니다.

 

우리의 다양한 감정과 고유한 경험을 소화해, 분명한 메시지를 가진 작업으로 풀어내는 데 필리핀 디자인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단순함과 일관성을 미덕으로 삼는 디자인 문화도 존재하지만, 필리핀의 작업은 필연적으로 대조와 복잡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창작한다는 것은 투쟁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겠다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필리핀 사람으로서 느끼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온전히 허용한다면, 어떤 작업들이 가능해질지 저는 늘 기대하게 됩니다. 작업 자체뿐만 아니라, 필리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공유하고 있는 ‘커뮤니티와 공동의 안녕에 대한 가치’ 역시 충분히 조명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필리핀에서 크리에이티브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마도 이러한 공통의 어려움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묶어주고, 서로를 지지하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의 성공을 넘어, 타인을 위한 더 나은 삶을 함께 꿈꾸는 이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가장 자랑스럽습니다.

 

제 친구이자 디자이너인 카 아볼라(Kar Abola)는 최근 ‘긴하와(Ginhawa)’라는 필리핀 고유의 웰빙 개념을 주제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마쳤습니다. 그녀는 필리핀 심리학을 디자인 실무에 적극적으로 접목하고 있는데, 우리 문화에서 웰빙은 개인의 상태라기보다 집단적인 개념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개념들을 시각화하고 탐구하는 과정은, 필리핀의 정체성이 어떻게 그리고 왜 우리의 창의적 목소리를 형성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확장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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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젊은 필리핀 크리에이터들이 독립 스튜디오나 협업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참여하고 있거나 영감을 받아 소개하고 싶은 그룹이나 활동이 있나요?

 

현재 저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넓은 가시성과 영향력의 물결을 만들어내는 두 그룹에 속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 속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더 크고 밝은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그룹, 집단, 커뮤니티는 상상력 넘치는 행동을 추구하는 여정에서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상기시켜 줍니다. 가치관에 따라 우리는 외부의 기대나 현상 유지에 의존하기보다, 우리만의 방식으로 꿈꾸고 시도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먼저, ‘타입 페어 필리핀(Type Fair Philippines)’은 필리핀의 서체와 인재들을 기념하는 모임입니다. 이는 제가 동료 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피 애호가들인 아론 아마르(Aaron Amar, Cubao Free 및 Quiapo 등 유명 필리핀 폰트 제작자), 제스 토레스(Jeth Torres, Swash Originals 및 커뮤니티 공간 Manila Middle Ground 운영), 조 말리니스(Jo Malinis, 필리핀 타입 디자인 플랫폼 Type63 설립자)와 함께 조직한 독립적인 로컬 커뮤니티 이벤트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연결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로컬 타입 커뮤니티를 함께 축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타입 페어를 통해 우리는 상호작용적이고 경험 중심적이며 커뮤니티 친화적인 창작 모임의 형태를 실험합니다. 참가자들이 깊이 몰입하고 커뮤니티를 풍요롭게 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지난 2025년 11월에 열린 행사에서는 타입 워크(Type walk), 필리핀 서체 아카이브 전시, 큐레이팅 된 서체 라이브러리, 강연, 워크숍, 커뮤니티 타입 트레이드, 영화 상영, 굿즈 마켓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하루 동안 꽉 채워진 이 행사들은 참가자들이 자신에게 의미 있고 흥미로운 것을 찾을 수 있게 해줍니다. 3년 차를 지나 4년 차를 맞이하는 지금, 타입 페어 필리핀이 우리 자신보다 더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기쁨을 느낍니다. 이 성공의 배후에는 커뮤니티의 압도적인 지지가 있었습니다. 끈끈한 참가자들, 자원봉사자들, 크리에이티브 파트너들, 그리고 다양한 후원자들이 관대하게 나서 주었기에 지금의 형태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공동의 노력을 통해 우리는 필리핀의 인재, 서체 교육, 그리고 타입 디자인과 역사, 레터링, 캘리그라피 등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타입 페어를 통해 서체에 대한 통찰, 대화, 관점을 계속 넓혀가고자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약속은 타입 페어 필리핀을 최대한 접근하기 쉬운 행사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교육적 자원과 기회를 얻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티켓 가격을 저렴하게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이러한 헌신으로 우리는 지역 및 글로벌 파트너들의 지원을 지속적으로 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최상의 가치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필리핀 내의 더 다양한 지역적, 사회경제적 대표성을 확보하고, 아시아 다른 지역의 관점까지 아우르며, 서체를 통해 필리핀 정체성을 보다 총체적이고 포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힘을 싣고자 합니다. 타입 페어를 통해 로컬 및 글로벌 무대에서 필리핀 서체의 목소리와 영향력을 증폭시키기를 열망합니다. 우리는 필리핀의 서체와 인재가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선언하며, 이곳에 굳건히 존재할 것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필리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협회(CDAP, Communication Design Association of the Philippines)’를 통해 필리핀 디자인 산업을 형성할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이곳에서 홍보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CDAP는 디자인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조직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교육, 신기술, 그리고 공공의 이익과 공유된 실천에 기반한 프로그램을 통해 필리핀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좋은 디자인은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단순한 믿음이 있습니다. 디자인이 접근 가능하고 윤리적이며 일상생활에 스며들 때, 존엄성과 포용성, 그리고 모두를 위한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다른 디자인 단체들과 비교하면 CDAP는 꽤 젊습니다. 저에게 이는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 일입니다. 국가적 규모의 영향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은 부담스럽지만, 동시에 이 조직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빚어갈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특히 다양한 방식으로 업계에 기여해 온 존경하는 이사회 동료들과 함께여서 더욱 유망합니다. 우리는 지역 디자인 업계의 집단적 필요와 열망을 듣고, 조율하고, 증폭시키는 데 도움이 될 튼튼한 기반을 천천히 쌓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디자이너를 대변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공정한 보수 요구, 건강한 업무 관행 주장, 디자이너의 웰빙 증진, 그리고 공예에 대한 존중의 기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의 동료 회원들과 대표들이 이 안전한 소속감을 계속 다듬고 넓혀가며, 우리 필리핀 사람들의 더 존엄한 삶을 위한 공동의 책임을 다하기를 희망합니다.

 

그 외에도 제가 존경하는 몇 가지 그룹이나 활동을 더 언급하고 싶습니다. 필리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주도하는 ‘마닐라 일러스트레이션 페어(Manila Illustration Fair)’, 필리핀의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를 기념하는 플랫폼 ‘Type63’, 창작자들에 의한 창작자들을 위한 ‘노비스 매거진(Novice Magazine)’, 창의성과 문화를 다루는 연례 모임 ‘퍼베이어 페어(Purveyr Fair)’가 있습니다. 또한 로컬 아티스트와 메이커를 위한 공유 공간인 ‘커먼 룸(Common Room)’과 ‘마닐라 미들 그라운드(Manila Middle Ground)’, 크리에이티브 샵과 컨셉들이 모인 허브 ‘코무나(Comuna)’와 ‘카리빈(Karrivin)’도 있습니다. 마닐라 외곽에서는 세부의 ‘세부 아트 북 페어(Cebu Art Book Fair)’, 카가얀데오로의 ‘오로 디자인 컨퍼런스(Oro Design Conference)’, 팜팡가의 ‘플라워 마켓(Flower Market)’ 등이 필리핀의 창의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제가 공유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활동이 있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의 크리에이티브 산업이 얼마나 흥미롭고 역동적으로 형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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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넓은 아시아 디자인의 맥락에서 필리핀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시아 디자인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해석하시나요?

 

저는 필리핀 사람들의 따뜻함을 좋아합니다. 외국인들도 흔히 필리핀 사람들이 얼마나 환대하고 친근한지 이야기하곤 하죠. 저는 이런 성향이 작업과 커뮤니티에도 묻어난다고 믿고 싶습니다. 작업에 있어서는 시각적인 것에 대한 연민 어린 접근이 있습니다. 필리핀 디자인의 매력은 규칙과 가이드라인을 엄격히 준수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충동에 있습니다. 시각적 풍요로움, 독특한 버릇(quirks), 그리고 불완전함이 필리핀의 작업을 공감 가게 하고 매혹적으로 만듭니다. 디자인이 외부의 표준이나 서사에 얽매이지 않을 때, 우리의 목소리와 정체성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합니다. 커뮤니티 측면에서는 서로를 기꺼이 돕는 끈끈하게 연결된 서클들이 있다는 점이 존경스럽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커뮤니티를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혼자서만 필리핀 디자인을 옹호한다면 외롭고 지칠 수 있으니까요. 흥미로운 점은 우리 필리핀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서도 서로를 알아보고 끌어당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필리핀 사람들의 존재 속에서 소속감을 찾으려 하고, 닥쳐오는 도전이나 승리의 순간들을 더 잘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죠.

 

필리핀 디자인은 ‘즐거운 창작과 연결’의 롤모델이자 표상이 될 수 있습니다. 직관에 뿌리를 두고 개인적인 경험에 솔직할 때, 과정과 결과물은 우리의 복잡성을 기념하는 축제가 됩니다. 우리는 기쁨과 안정감(groundedness)을 작업에 쏟아붓는 법을 알지만, 동시에 우리의 고통과 투쟁을 희망의 서사로 승화시키는 법도 알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의 핵심에는, 디자인의 뿌리와 토대에 ‘돌봄(Care)’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필리핀 디자인이 이 모멘텀을 계속 키워나가기를 희망합니다. 그것은 필요하고, 심지어 시급한 일이니까요. 이와 더불어,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서로 배우고 공유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아시아 디자인은 현재 흥미로운 성장과 인정의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제가 필리핀 디자인에서 사랑하는 점들을 아시아 디자인에서도 목격하곤 합니다. 모든 아시아 국가의 공예에는 뚜렷한 풍요로움이 있습니다. 이 에너지가 로컬과 글로벌 무대에 어떻게 스며드는지에 대한 미묘한 차이들은 주목할 만합니다.

 

저는 이것이 전통과 진보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 때문인지 궁금합니다. 아시아의 다양한 역사들은 장인 정신(craftsmanship)을 문화와 전통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간직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생활 방식과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러한 장인 정신과 전통의 영혼은 아시아 문화 속에 살아 숨 쉬며, 의도하든 하지 않든 그래픽 디자인 기술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의 문화적 기억이 창작의 여정을 안내하는 것이죠. 우리는 장인 정신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상상력 넘치는 열망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그 둘 사이의 공간에서 의도적인 혁신이 맹렬히 나아갑니다. 서로에게 배울 점이 정말 많습니다. 각 아시아 국가 안에는 깊고, 뿌리 깊으며, 공명하는 창조적인 힘이 내재해 있습니다. 우리는 감정과 문화의 깊은 곳에서 손을 뻗을 용기가 있으며, 우리에게 기대되는 것 이상을 해내려는 결의가 있습니다. 문화적으로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도록 자란 우리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배웁니다. 따라서 ‘돌봄’이 우리의 의도와 행동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의 창조적인 힘이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돌봄의 문화’에서 시작하면, 다른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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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탐험하고 싶은 새로운 방향이나 창작 영역은 무엇인가요? 마지막으로, 필리핀과 아시아의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저에게 창작 활동을 추구하는 것은 디자인을 단순한 직업 선택을 넘어, 다차원적이고 총체적인 삶의 방식으로 대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이를 위해 올해의 탐험은 ‘몸을 돌보는 것’에 집중될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창작의 삶을 오래 지속하려면 몸을 돌보는 데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동안 창작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몸의 안녕을 희생시킨 적이 많았습니다. 이제 관점을 바꿀 때입니다. 건강한 몸이 건강한 창작 활동을 반영합니다. 몸에 영양을 공급하는 것을 하나의 창의적인 프로젝트로 생각하니 재미있습니다. 실제로 그러니까요! 이것은 현재의 저를 마주하고, 자신을 드러내며, 과정을 신뢰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스승입니다.

 

또한 화면을 넘어 더 촉각적이고 다감각적인 경험으로 디자인 접근 방식을 확장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다양한 창작 매체를 시도하고 확장할수록 그것이 다시 제 디자인 과정과 실무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드럼을 배우고 있는데, 음악이라는 렌즈를 통해 창의성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시각과 소리가 상호작용하는 기회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리듬은 어떤 모습일까?', '시각적으로 어떻게 움직일까?'와 같은 질문들 입니다.  바느질과 요리도 배우고 싶습니다. 이 모든 창작적 호기심이 서로 동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그 공예 속으로 들어갈 때 의미 있는 연결을 만들고자 하는 저의 충동으로 모두 묶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상호작용하고, 배우는 것은 창의성에 대한 제 관점을 확장해 줍니다. 결국 제가 탐험하기로 선택한 모든 창작 영역은 예견할 수 없는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며, 저는 그것을 기꺼이 즐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줄리아 카메론의 책 <아티스트 웨이>에 나오는 “내가 창조하고 경청할 때, 나는 이끌릴 것이다(As I create and listen, I will be led)”라는 구절에서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 구절을 본 이후로, 저는 일단 시도해 보고 무엇이 남는지 확인하며 호기심을 충족시켜 왔습니다. 또한 창의적인 교육과 연결의 기회를 탐색하고 싶습니다. 참가자들이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 모두에 참여할 수 있는, 몰입도 높고 상호작용적이며 실습 위주의 학습 형식을 실험해 보고 싶습니다. 이는 창의적인 목소리를 강화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며, 공예와 그 탐험 속에서 기쁨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창의적인 문화와 풍경에 호기심이 많은 저는 다른 아시아 크리에이터 및 디자이너들과 연결될 기회를 더 많이 갖고 싶습니다. 아시아 디자인에 대한 제 인식을 이야기했듯이, 아이디어와 희망, 꿈의 ‘교차 수분(cross-pollination)’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강점, 좌절, 현재의 격차, 그리고 열망을 기록하고 배우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될 것입니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고, 명확히 하며, 재확인할 수 있고, 동시에 아시아 디자인 전체의 영향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필리핀과 아시아의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시도하고, 시도하고, 또 시도하라'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잘하지 못할 것 같아서, 아직 준비되지 않아서, 혹은 시작하기 전에 이것저것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멈춰 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장 큰 도약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도해야 할 것이 있다면 작고 부드러운 발걸음으로도 충분합니다. 창작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세상에 내보인다는 것이 두려울 수 있다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 공예의 깨달음은 그것을 알아가는 지저분하고, 혼란스럽고, 불완전한 과정 속에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불확실성의 공간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창의성은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고(show up), 무엇이 나타나는지 지켜보라고 가르칩니다. 무엇이 나타나고 결과로 나오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시도하는 것뿐입니다.

 

 

 


 

 

 

에디터 이용혁

Archive. Design. Ess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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