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충 리(YiChung Lee, SeungHyun Lee)
“홍콩과 선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충 리(YiChung Lee, 이승현)는 8년 경력의 산업 디자이너로, 현재 Segai Design Lab의 총괄이자 Segai Innovation Technology Holdings Limited의 최고디자인책임자(CDO)를 맡고 있다. 한국 디자인 문화의 엄격함을 토대로 성장했으며, 글로벌 실무 경험을 통해 그 영역을 확장해왔다. 그는 스타일보다 명확함을 우선하는 제품 디자인을 지향하며, 솔직한 형태, 단호한 기능성, 그리고 실제 사용 환경에서의 유용성을 강조한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국경을 넘나든 그의 여정과 ‘덜어냄’과 ‘테스트’에 대한 원칙, 그리고 일상 속에서 오래도록 의미를 유지하는 제품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어느 도시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고 계신지, 그리고 제품 디자이너로서 어떤 조직 구조 속에서 일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이충 리, 또는 이승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산업 및 제품 디자인 분야에서 8년간 실무 경험을 쌓아온 산업 디자이너입니다. 현재는 Segai Design Lab의 총괄과 Segai Innovation Technology Holdings Limited의 최고디자인책임자(CDO)를 맡고 있습니다. 홍콩과 선전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으며, 두 지역에서 다학제적 디자인 및 혁신 팀을 이끌고 협업하고 있습니다. 제품 전략 수립부터 디자인 개발, 그리고 전반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션까지 총괄하며, 양 지역을 연결하는 구조 속에서 제품 디자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한국에서의 실무 경험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느낀 차이점은 무엇이었나요?
해외에서 일하기 전, 저는 한국의 JDW에서 수석 산업 디자이너로 근무했습니다. 그 시기는 제게 디자이너로서 매우 깊은 영향을 남긴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의 디자인 문화는 매우 강렬합니다. 속도감이 빠르고, 정밀하며, 디테일에 대한 집중력이 탁월합니다. JDW에서 저는 높은 강도의 업무 환경 속에서 집중력과 규율, 그리고 매우 높은 품질 기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은 지금도 제가 디자인에 접근하는 방식의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처럼 높은 수준의 환경에서 일하면서, 동시에 더 넓은 성장에 대한 갈증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팀들은 실행력 면에서 매우 뛰어나지만, 저는 글로벌 시장과 다양한 사용자, 그리고 보다 폭넓은 비즈니스 관점에 직접 노출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동기가 해외 진출을 결심하게 만든 계기였습니다.
홍콩과 선전으로의 이동은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보다 국제적인 생태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다양한 국가의 엔지니어, 제조사,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업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역할이 주로 실행 중심이었다면, 해외에서는 제품의 방향성과 전략, 그리고 디자인 리더십까지 아우르는 보다 확장된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여정이 저에게 의미 있는 이유는, 한국에서 쌓은 디자인 기반이 저를 단단히 지탱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배운 속도, 엄격함, 그리고 장인정신은 글로벌 무대에서도 자신 있게 기여할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해외에서의 경험은 저를 디자인 리더로 성장하게 했지만, 그 토대는 분명 한국 디자인이었습니다.


다양한 카테고리를 아우르는 포트폴리오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일관되고 정돈된 인상이 강합니다. 일관되게 지켜오는 ‘디자인 기준’이나 원칙이 있나요?
제 포트폴리오는 여러 제품 카테고리를 포함하고 있지만, 하나의 시각적 스타일을 반복하기보다는 분명한 디자인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일관된 인상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준은 ‘명확함’입니다. 제품은 내부에 아무리 복잡한 기술이 들어 있더라도, 형태와 인터랙션만으로 그 목적이 즉각적으로 전달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또한 저는 디자인에서 ‘정직함’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형태는 장식이 아니라 실제 기능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제 커리어 초기에 저를 이끌어주신 분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만카돈(Harman Kardon) 출신의 디자인 전문가 김호연, 제가 깊이 존경하는 시니어 디자인 디렉터 김대영, 그리고 JDW에서 팀 리더였던 최윤성 님입니다. 그분들로부터 저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무언가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 불필요한 요소를 끊임없이 덜어내어 결국 본질만 남기는 과정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제품이 더 큰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항상 고려합니다. 브랜드, 사용자, 그리고 사용 맥락까지 포함한 전체 구조 속에서 제품을 바라봅니다. 이러한 기준을 모든 프로젝트에 일관되게 적용하기 때문에 결과물 역시 통일감을 갖게 됩니다. 제게 디자인은 어떤 외형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사용자가 제품을 즉각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사고방식을 반복하는 일입니다.

제품을 설계할 때 기능을 덜어내거나 제거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논리가 의사결정을 이끌어가나요?
제품 디자인 과정에서 기능을 제거할지 판단할 때, 저는 ‘적다’ 혹은 ‘많다’의 관점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용자의 부담’이라는 기준으로 접근합니다. 하나의 기능이 추가될 때마다 사용자에게는 인지적·물리적 비용이 함께 증가합니다. 더 많은 버튼을 바라봐야 하고, 더 많은 선택지를 고민해야 하며, 그만큼 망설일 가능성도 커집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기능이 유용한지 묻기보다는, 그것이 실제 사용 흐름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만약 특정 기능이 사용 흐름을 방해하거나 혼란을 유발하거나, 극히 드문 상황에서만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은 제거 또는 단순화의 대상이 됩니다.
제가 남기고자 하는 것은 이른바 ‘결정적인 기능(decisive functions)’입니다. 사용자가 제품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핵심 목적을 직접적으로 달성하도록 돕는 기능들입니다. 그 외의 요소들은 반드시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능을 줄이는 일은 단순히 제품을 겉으로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 경험을 더 명확하고 자신감 있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웨어러블 제품은 공학, 인체, 미학이 충돌하는 영역입니다. 착용감과 편안함을 결정짓는 여러 디테일 중, 디자이너가 가장 집요하게 바라봐야 할 한 가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웨어러블 제품에서 디자이너가 가장 집요하게 바라봐야 할 지점은 제품과 인체가 맞닿는 ‘접점’이며, 그 접점이 사용자의 행동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웨어러블을 정적인 오브제로 보지 않습니다. 사용자의 움직임, 자세, 그리고 일상적인 행동을 중심에 두고 설계합니다. 예를 들어 압력 분포는 단순히 무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용자가 걷거나, 고개를 돌리거나, 팔을 들어 올릴 때 그 무게가 어떻게 이동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어떤 제품은 한 자세에서는 편안할 수 있지만, 움직임이 더해지는 순간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저는 ‘미세 움직임’에도 주목합니다. 실제 사용 상황에서 제품이 피부 위에서 어떻게 미묘하게 미끄러지고, 휘어지고, 저항하는지 살펴봅니다. 이러한 작은 상호작용이 전체적인 형태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재와 열 반응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땀, 열, 장시간 접촉과 같은 요소 속에서 피부가 제품을 어떻게 경험하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형태 자체보다 ‘행동’을 중심에 두고 접근할 때, 웨어러블은 일상 속에서 거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연스럽고 투명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완성도 높은 콘셉트 렌더링과 실제 제품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합니다.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 프로토타이핑 단계에서 사용성, 발열, 소음, 내구성, 조작성 등 어떤 검증을 가장 집요하게 반복하시나요?
아주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인턴 시절에 이 문제로 많이 고민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아름다운 콘셉트 렌더링과 실제로 제작되어 사용될 수 있는 제품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그 경험은 이후 제 커리어 전반에 걸쳐 이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 저는 실제 사용 환경에서 기능 프로토타입을 반복적으로 테스트하는 방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검증하는 것은 ‘압박 상황에서의 사용성’입니다. 단순히 제품이 작동하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산만한 상태이거나, 급한 상황이거나, 한 손으로 조작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정확히 사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많은 디자인 문제는 사용자가 완전히 집중하지 않은 상태에서 비로소 드러납니다.
또한 저는 ‘장시간 상호작용’에 큰 비중을 둡니다. 처음 5분간은 괜찮게 느껴지던 제품도 한 시간 이상 사용하면 피로감이나 불편함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복적인 장시간 테스트를 통해 피로도, 압박감, 그리고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는 작은 불편 요소들을 관찰합니다. 이처럼 이상적인 조건이 아닌, 실제 인간의 행동 맥락 안에 프로토타입을 놓고 검증할 때, 콘셉트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점진적으로 좁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상 경험이 커리어나 작업 방식에 실제로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그리고 ‘평가받기 위한 포트폴리오’와 ‘시장 속에서 살아남는 제품’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맞추고 계신가요?
수상은 제 커리어에 분명 변화를 가져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디자인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대신 제 작업이 더 넓은 무대에서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수상을 통해 포트폴리오는 국제적인 가시성을 얻게 되었고, 동시에 디자이너로서의 책임감 역시 더 분명해졌습니다. 포트폴리오는 순간적으로 평가받는 대상이지만, 제품은 사람들과 오랜 시간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저는 작업할 때 이 두 지점이 겹치는 영역을 찾으려 합니다. 콘셉트는 충분히 강렬해 전문가의 시선을 끌 수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현실에서 실제로 기능하며 지속 가능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두 가지 질문을 동시에 던집니다. “이 디자인은 전문가에게 의미 있는가?” 그리고 “이 제품은 사용자가 천 번을 사용한 뒤에도 여전히 타당한가?” 두 질문 모두에 ‘예’라고 답할 수 있을 때, 그 지점에 좋은 디자인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디터 람스(Dieter Rams)의 ‘좋은 디자인을 위한 10가지 원칙’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원칙은 우리 분야에서 매우 존중받는 기준이며,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고, 유용하며, 오래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 줍니다. 저는 인정과 실제 시장 영향력 사이의 균형을 맞출 때 이 가치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상과 시장성은 서로를 보완합니다. 수상은 좋은 디자인의 가치를 반영하고, 시장 속 제품은 그 의미를 증명합니다.

앞으로 더 깊이 탐구해보고 싶은 제품 영역이나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리고 해외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일하고자 하는 주니어 디자이너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 가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앞으로 저는 특히 ‘라이트 테크(Light Tech)’ 분야에 더 깊이 탐구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말하는 라이트 테크란, 존재감을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소란스럽게 드러나기보다, 하드웨어와 AI가 차분하고 직관적이며 인간적인 방식으로 결합되어, 사람과의 거리를 만들지 않고 조용히 지원하는 기술입니다. 해외에서 일하고자 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제가 항상 강조하는 한 가지는 소프트웨어 스킬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준비하라는 점입니다. 도구와 트렌드, 스타일은 매우 빠르게 변화합니다. 하지만 사용자를 관찰하는 방식,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역량은 디자이너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입니다.
왜 이 디자인이 의미 있는지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어느 나라에서든 일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