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랙더넛츠 송창렬 대표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대한민국광고대상> 심사위원
2025 칸라이언즈는 기술의 축제가 아니라, 진실의 시험대였다. AI로 조작된 영상이 최고상을 받은 뒤 모든 상이 박탈된 초유의 사건. 그 충격은 단지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창의의 본질'과 '브랜드의 윤리'를 향한 경고였다. 2025 칸라이언즈(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는 창의의 무대가 아니라 진실의 심판대였다. 세계 최고의 광고제에서, 브라질의 유명 광고대행사 DM9이 AI를 이용해 캠페인의 성과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수상했던 모든 상이 박탈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DM9은 크리에이티브 데이터 부문 그랑프리(Grand Prix)를 비롯해 금상, 은상, 동상 등 총 12개의 상을 잃었다. 이는 성과를 창출하는 과정의 정직함보다 '수상 실적'이라는 단기적인 명예를 앞세운 결과였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광고의 존재 이유 자체’를 AI로 만들어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캠페인의 성공을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케이스 필름 안에서, AI를 이용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조립했다. CNN 브라질이 자신들의 캠페인을 극찬하는 가짜 뉴스 영상을 AI로 제작했고, 테드(TED) 강연을 편집해 마치 실제 인플루언서가 캠페인을 언급한 것처럼 조작했다. 심지어 AI로 만든 가상의 소비자 인터뷰까지 등장했다. 현실의 반응이 아니라, AI가 만들어낸 ‘성과의 환상’이었다. 광고의 근본 목적이 ‘현실의 변화를 증명하는 것’이라면, 이 사건은 그 존재 이유 자체를 허물어버린 셈이었다. 조작이 드러나자 DM9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이카로 도리아(Icaro Doria)는 사임했고, 칸라이언즈 조직위는 “AI를 이용한 조작은 업계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들은 모든 상을 박탈하며, 앞으로 모든 출품작에 AI 사용 여부와 더불어, AI가 창작 과정의 어떤 단계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더 나아가 AI 조작을 탐지하기 위한 기술적 시스템까지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창의의 본질이 ‘상상력’이 아니라 ‘신뢰’라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해진 순간이었다.

이번 사건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태도에 대한 문제였다. '창의적인 결과'를 얻기 위한 도구였던 AI가 '수상'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윤리적 파국을 맞았다. AI는 비효율을 제거하고 소규모 브랜드에게도 정교한 마케팅 전략을 제공하는 혁신적인 기회인 동시에, 그 엄청난 잠재력을 악용할 때의 파괴력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AI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진실보다 효율을, 공감보다 완벽함을 선택한 것이다. 기술의 속도는 윤리의 속도를 앞질렀고, 결국 신뢰가 무너졌다. 창의는 기업과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여정이지, 그 결과물로 얻는 명예를 쫓는 경쟁이 아니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보다 ‘무엇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는 창의는 언제든 파괴적이 된다.
AI는 디자이너의 도구이자 거울이다.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을 돕기도 하지만,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더 빠르게, 더 자극적으로, 더 완벽하게 보이려는 욕망. 그 욕망이 진실을 밀어냈을 때, AI는 혁신이 아니라 위협이 된다. 이번 칸라이언즈의 사태는 그 욕망이 만들어낸 균열이었다. 기술이 진실을 대신한 순간, 창의의 심장은 흔들렸다. 디자인과 광고는 언제나 감동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감동은 허구와 다르다. 감동은 진실 위에서만 지속된다. 진정성(authenticity)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크리에이티브 자산이며, 그 자산은 기술이 아닌 태도에서 비롯된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인간의 의도와 책임이 빠진 창작은 단지 시뮬레이션일 뿐이다. 디자이너는 기술의 속도에 휩쓸리는 대신, 기술이 놓치는 인간적 공감의 의미를 설계해야 한다.
브랜드에게도 같은 질문이 주어진다. AI를 통해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라, AI를 통해 어떤 진실을 지킬 것인가. 결국 브랜드가 쌓아야 하는 것은 클릭 수나 조회 수가 아니라, 신뢰의 지속성이다. 그리고 그 신뢰는 투명한 제작 과정, 정직한 표현, 책임 있는 서사에서 비롯된다. 진짜 크리에이티브는 기술의 완성도가 아니라, 인간의 진심으로 완성된다. 2025년 칸라이언즈는 화려한 기술보다 ‘정직한 창작의 윤리’가 더 중요한 가치임을 증명했다. 이 윤리를 지키기 위해 업계는 AI 라벨링(AI Labeling)을 통해 AI의 기여도를 투명하게 명시하고, AI 생성 콘텐츠에 검증 가능한 디지털 워터마크를 삽입하는 것을 새로운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과 책임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거울이다. 창의력은 기술로 확장되는 능력이 아니라, 진실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다. 기술은 인간의 감각을 확장할 수 있지만, 인간의 양심은 대체할 수 없다. 진실 없는 창의는 결국 허상 위의 불꽃처럼 사라진다. AI 조작이 흔들어 놓은 것은 상 하나가 아니라, 창의의 심장이었다. 그리고 그 심장이 다시 뛰기 위해서는 기술보다 먼저 윤리가 깨어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