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chitect Muneji Toh
Founder & Representative Director, Muneji Toh Architects
"도 무네지(Muneji Toh)는 일본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공간의 물리적 구조를 넘어 감정과 윤리, 문화적 전통이 어떻게 디자인의 언어로 구현될 수 있는지를 탐구해 왔다. 이번 인터뷰는 그의 건축 작업을 통해 드러나는 일본적 미감, 장인 정신의 현대적 계승, 그리고 감성과 기능, 정체성과 진보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 설계의 철학을 깊이 있게 조망한다. 그는 빛과 그림자의 흐름 속에서 섬세하게 조직된 공간이 어떻게 인간의 인지와 정서를 변화시키는지를 설명하며, 전통 공예에서 비롯된 기술과 사유가 어떻게 현대 건축의 재료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도 무네지는 디자인을 단순한 형식의 창조가 아닌, 사람들이 품격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세심하게 설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의 작업은 조용하지만 강한 어조로, 공간이 품을 수 있는 고요함과 깊이, 그리고 문화적 책임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먼저 본인 소개와 디자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 계기를 들려주십시오.
저는 일본의 건축가 도 무네지(Muneji Toh)입니다. 저희 사무소는 건축의 전체 구조를 설계하는 동시에, 가구·조명·소재 개발 등 세밀한 디테일 디자인에도 집중하며 ‘단 하나의 건축’을 만들어가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작은 단위의 디자인과 큰 스케일의 건축적 사고를 병행함으로써,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형태의 건축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제가 건축가를 꿈꾸게 된 계기는 학생 시절 방문한 이탈리아 로마의 판테온(Pantheon)이었습니다. 그곳의 천정 중앙 오쿨루스(oculus)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을 마주한 순간, 건축이 사람의 감정에 미치는 힘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그 경험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고, 빛을 ‘건축의 재료’로 삼는 지금의 철학으로 이어졌습니다. 빛은 단순한 물리적 요소가 아니라 공간의 감정과 질서를 결정하는 본질이며, 도시의 방향에서부터 하나의 마감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판단의 중심에 있습니다. 전체와 세부를 동시에 다루는 이러한 이중적 시선이 저의 설계 방식을 규정하고, 기술적 완성도와 감정적 울림이 공존하는 공간을 가능하게 합니다.

< Fat Wood Shoji, ADP Gold Winner 2025 >
선생님의 작품에는 아시아적 감성이 깃들어 있으면서도 국제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아시아 디자인의 고유한 특성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나요?
저는 일본 건축가로서 ‘섬세함’과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는 일본 고유의 미의식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일본 전통 디자인에는 ‘그늘에 대한 찬미(In Praise of Shadows)’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깊이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사상입니다. 저 역시 이 철학에 깊이 공감하며, 작품 속에서 빛과 그림자의 미묘한 관계를 표현하려 합니다. 이를 실천하는 과정은 대비보다는 점진적인 농담의 흐름을 설계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재료가 부드럽게 빛을 받아들이게 하고, 시선이 천천히 공간의 깊이를 발견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미감은 일본 문화에서 비롯되었지만, 그로 인해 생성되는 ‘고요함’, ‘명료함’, ‘집중의 감각’은 전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언어입니다. 조용함은 번역이 필요 없는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문화적 배경과 전통은 선생님의 디자인 철학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섬나라 일본은 오랜 세월 독자적인 문화와 전통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학생 시절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건축과 문화를 경험했지만, 그 여정 속에서 오히려 일본 고유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전통공예를 비롯한 일본의 기술과 미의식에 대한 탐구를 본격적으로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전국 곳곳에는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 완성된 장인들의 기법이 존재합니다. 그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섬세한 감각과 완벽한 기술에는 시간의 깊이가 스며 있습니다. 저는 이 전통적인 기술과 태도를 현대 디자인에 적용하여 새로운 형태로 재해석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목재의 수축과 팽창을 고려한 전통적인 맞춤기법은 현대의 하이브리드 구조 설계에 영감을 주며, 종이문(shoji)의 은은한 채광은 오늘날의 더블 스킨 시스템이나 자연광 제어 방식에 새로운 접근을 제시합니다. 자연스럽게 노화되는 소재의 미학은 지속가능한 디자인의 방향을 알려줍니다. 전통은 박물관 속의 유물이 아니라, 현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도구이자 문화적 지혜입니다.

일본 디자인의 흐름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 속에서 어떤 대응을 하고 계신가요?
오늘날 전 세계가 정보로 연결된 시대에 디자인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일본도 예외가 아니지만, 저는 여전히 일본의 문화와 전통을 토대로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디자인’을 지키고자 합니다. 우리의 설계는 오랜 세월 축적된 기술과 감각을 존중하는 동시에, 변화하는 현대의 맥락을 포착해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이를 위해 저는 두 개의 시간 축을 동시에 다룹니다. 하나는 디지털 도구, 스마트 시스템, 신소재 등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적 진보이고, 다른 하나는 장인정신, 기후에 맞춘 건축적 사고, 공간의 의식과 같은 느린 문화적 연속성입니다. 이 두 리듬이 조화를 이룰 때, 건축은 시대에 맞게 진화하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는 균형을 얻게 됩니다.

선생님의 공간은 기능적이면서도 시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디자인, 분위기, 인간 경험이 하나로 만나는 공간을 어떻게 구축하십니까?
저는 건축과 제품을 설계할 때 ‘디자인의 완성도’와 ‘기능의 완전성’을 동시에 중시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디자인은 일상 속에서 불편을 초래하기 쉽습니다. 아름다움과 기능이 공존할 때, 그것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디자인’이 됩니다. 이 철학은 설계의 전 과정에 적용됩니다. 동선과 인접성을 계획하는 것과 마감의 질감이나 음영을 다루는 일은 같은 수준의 집중을 요합니다. 빛은 장식이 아닌 구조로 다뤄지며, 재료는 사용과 함께 더 깊어져야 합니다. 제가 추구하는 공간은 명료함 속의 고요함입니다. 사용자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이끌고, 인지적 부담을 줄이며,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잔향처럼 남는 조화로운 공간.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건축입니다.

국제 협업을 통해 경험한 동서양 디자인의 차이는 무엇이며, 아시아 디자인이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시아의 문화와 전통을 깊이 탐구하면서 현대적 요소와 조화시키는 것, 그리고 그 융합을 통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미학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서구 디자인이 명료한 표현과 구조적 강렬함을 중시한다면, 아시아 디자인은 완급과 여백, 절제의 미학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 두 접근이 존중과 균형 속에서 만날 때, 디자인은 명확하면서도 풍부한 층위를 지닌 형태로 진화합니다. 단순히 동서의 결합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조율과 섬세함이야말로 현대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언어라 믿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에서 ‘빛’은 경험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일본과 아시아의 현대 건축에서 조명 디자인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전기조명이 일상화되면서 수많은 조명 디자인이 존재하지만, 옛 일본의 공간에는 자연광과 달빛을 섬세하게 활용한 지혜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종이문을 통과한 빛은 시간과 날씨에 따라 다른 표정을 보여주며, 그 안에는 인공 조명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자연의 그라데이션이 존재합니다. 저는 이처럼 자연의 리듬을 담아내는 전통적 기술과 지혜에 다시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현대적 설계와 결합한다면, 우리는 빛을 단순한 조도(照度)가 아니라 ‘시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자연광을 중심에 두되, 해가 진 이후에도 그 서사를 이어가는 하이브리드 조명 방식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밝음이 아니라 분위기, 조명 그 자체가 ‘하루의 감정’을 읽어내는 매개가 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의 차세대 디자이너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배 세대가 남긴 기술과 지혜를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 이미 미래의 해답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을 배우고, 현재의 문제를 마주하며, 그 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할 때 비로소 풍요로운 미래가 열립니다. 저는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호기심을 잃지 말고, 탐구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다양한 분야와 협력하되, 스스로의 중심은 잃지 마십시오. 새로운 도구와 기술, AI까지도 판단을 확장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되, 결코 그것에 판단을 맡기지 마십시오. 디자인은 단지 물건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이 품격 있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그 본질을 잊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디자인은 시대를 넘어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Archive. Design. Esse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