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튜디오 온실 조인옥 디렉터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스튜디오 온실의 디렉터인 조인옥은 지난 몇 년간 블랙핑크 제니, BTS 등의 앨범 패키지를 통해 전 세계 팬들이 ‘손에 쥘 수 있는 감정’을 경험하게 만든 주역 중 한 명이다. K-POP이 음악을 넘어 전 세계적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은 지금, 그 시각 언어를 만들어내는 디자이너의 역할은 점점 더 전략적이며 복합적인 성격을 띤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스튜디오 온실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관과 사운드를 시각적으로 해석하는지, K-POP 디자인이 전통적인 브랜딩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아시아 디자인의 위상이 글로벌 문화 속에서 어떻게 재정의되고 있는지를 함께 들여다본다. 조인옥 디렉터는 “디자인은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고 강조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도 디자이너가 지켜야 할 감각과 태도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전한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스튜디오 온실의 디렉터 조인옥입니다. 현재 온실의 대표로서 전체 프로젝트를 총괄하며 모든 과정이 문제없이 흘러가도록 리드하고 있습니다. 온실은 특정한 디자인 스타일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컨셉과 무드의 디자인을 유연하게 해석하고 구현할 수 있는 스튜디오입니다. 각 프로젝트마다 주어진 세계관을 가장 적절한 형태로 풀어내는 것이 우리의 강점입니다.

K-POP 앨범 디자인은 단순한 시각적 결과물 그 이상으로 여겨집니다. 일반적인 브랜딩 프로젝트와 비교했을 때, K-POP 디자인만의 본질적인 차별점은 무엇이라 보시나요?
K-POP 디자인의 핵심에는 음악과 팬이라는 두 요소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브랜딩이 브랜드 정체성을 장기적으로 쌓아가며 유지하는 작업이라면, K-POP 디자인은 매 앨범마다 음악의 감정선, 콘셉트, 세계관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에 따라 시각 언어도 전혀 다르게 구성되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K-POP 디자인은 일회성의 강렬한 감정 경험에 가까우며, 일종의 ‘감정적 설치 미술’처럼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과 분위기를 팬들이 물리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시각적 오브젝트로 번역하는 것이 저희의 역할입니다. 음악과 팬 사이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감정 매개체’를 디자인하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참여하신 여러 아티스트의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도전적이었거나,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모든 프로젝트가 늘 새로운 도전이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작업은 블랙핑크 제니의 정규 앨범입니다. 아티스트 본인의 정체성과 앨범이 가진 서사 구조가 명확했기 때문에, 그 흐름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앨범 패키지 전체 구성부터 포토북, 구성품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그 스토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조를 설계했으며, 디자인적 밀도를 높이는 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음악을 들었을 때 연상되는 감정이 시각 요소로도 동일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사운드와 비주얼의 연결을 면밀히 고려했습니다.

전 세계 팬을 대상으로 한 K-POP 디자인 작업에서는 어떤 ‘문화 간 감수성’이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을 고려하게 되나요?
K-POP은 글로벌 팬덤을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각 문화권의 맥락을 민감하게 고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의 픽토그램이나 색상, 텍스트 표현이 특정 국가에서 다른 정치적 의미나 사회적 이슈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항상 리스크를 점검하려고 노력합니다. K-POP 디자인은 팬들의 피드백이 빠르게 돌아오는 분야 중 하나이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적 관점에서 오는 반응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그 속에서 디자인적 해석을 재점검하게 됩니다. 디자인은 단순히 시각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문화적 맥락 속에서 기능해야 한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K-POP이 전 세계적인 문화 현상이 되면서 아시아 디자인의 위상도 함께 변화하고 있습니다. 현업에서 직접 체감하신 변화가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요?
최근 몇 년 사이 아시아 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 온실에도 일본, 중국, 태국 등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직접 협업 요청이 들어오고 있으며, 현재도 일본 현지에서 발매될 앨범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해외에서는 K-POP 콘텐츠를 만드는 디자이너들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고, 한국이 단지 음악 산업뿐 아니라 앨범 디자인, 그래픽 트렌드, 패키징 등에서도 중심적인 위치에 있다고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각 프로젝트에서 아시아 고유의 감각과 현대적인 표현을 조화롭게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Studio Onsil이 새롭게 준비 중인 디자인 레이블 ‘푸르트 레이아웃’은 기존 온실과 어떤 차별점을 지니며, 어떤 미래를 지향하고 있나요?
스튜디오 온실은 그동안 클라이언트와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에 집중해왔습니다. 반면 ‘푸르트 레이아웃(Furt Layout)’은 온실의 철학을 좀 더 주체적이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디자인 레이블입니다. 우리는 이 레이블을 통해 인디 아티스트나 새로운 뮤지션들과 협업하여, 단 하나의 트랙에서 시작해 완성도 높은 비주얼 세계를 구축하는 전체적인 아트 디렉션을 시도하려 합니다. 클라이언트의 요청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시선과 감각이 중심이 되는 창작 방식으로 전개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온실의 또 다른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아시아 혹은 글로벌 디자이너,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나 네트워크 확장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ADP와 같은 플랫폼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ADP를 통해 저희 스튜디오를 알게 되는 해외 디자이너나 관계자들이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연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이미 일본, 중국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그 나라의 스튜디오들이 어떻게 작업하고, 어떤 인쇄 기술과 시각 감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서로의 작업 방식을 직접 경험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미감과 결합된 새로운 시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ADP는 그런 협업의 기회를 열어주는 플랫폼이자, 아시아 디자인 커뮤니티가 서로 배우고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AI 기술이 디자인 씬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생성, 레이아웃 구성 등 실무적으로 체감하시는 변화가 있으신가요? K-POP 디자인에 있어 AI는 어떤 식으로 접목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엔터테인먼트 디자인은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AI의 도입도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미지 생성이나 콘셉트 테스트, 구성안 조율 등의 단계에서 이미 많은 디자이너들이 AI를 활용하고 있고, 앞으로는 더 자연스럽게 실무 전반에 스며들 것이라 예상합니다. 아직은 일부 팬들에게 AI가 관여한 결과물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AI는 시간과 리소스의 제약을 극복하고 표현의 다양성을 확보해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K-POP처럼 감정과 속도가 공존하는 분야에서는, AI가 디자이너의 창작 과정을 보조하며 새로운 시각적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시대의 디자이너가 지녀야 할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특히 K-POP과 아시아 디자인 유산을 만들어가는 관점에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디자인 도구와 기술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지금,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기본기’와 ‘진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지더라도, 사람의 감각에서 비롯되는 섬세함과 온기, 그리고 감정의 흐름을 포착하는 능력은 여전히 디자이너의 몫입니다. 오히려 기술이 발전할수록, 아날로그적인 가치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결국 디자인은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고, 디자이너가 어떤 태도로 그것을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감각을 믿는 태도가 필요하며, 저는 그것이 앞으로의 디자이너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Archive. Design. Esse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