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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어 김주황 대표 (브만남)

<K-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

 

 

 


 

 

 

대한민국 제과 업계의 지형도가 흔들리고 있다. '골리앗'으로 불리는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지배하던 시장에서, 지방의 한 '동네 빵집'이 쏘아 올린 성과는 실로 충격적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성심당을 운영하는 로쏘(주)의 2023년 영업이익은 478억 원으로 전년 대비 51.7% 급증했다. 이는 국내 제빵 프랜차이즈의 양대 산맥인 파리크라상(파리바게뜨, 약 199억 원)과 CJ푸드빌(뚜레쥬르, 약 214억 원)의 별도 기준 영업이익을 2배 이상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매출액 역시 1,937억 원을 기록하며 단일 베이커리 브랜드로서 전무후무한 역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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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전역과 은행동 본점 앞은 빵을 사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인파로 장사진을 이룬다. 호텔 케이크의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과일을 쏟아부은 듯한 '딸기 시루', '망고 시루'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은 이제 뉴스가 아닌 일상이 되었다. 소비자들에게 성심당은 단순한 빵집이 아니다. 그들은 성심당의 빵을 사기 위해 KTX를 타고, 그 경험을 SNS에 공유하며, '대전'이라는 도시 자체를 소비한다. 전국 3,400여 개의 매장을 가진 대기업도 흉내 낼 수 없는 강력한 팬덤과 브랜드 로열티를 만든 ‘성심당’

 

“이 브랜드의 시작, 과연 어땠을까?”

 

성심당의 시작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맞닿아 있다. 창업주 고(故) 임길순은 함경남도 함주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1950년 12월, 전세가 역전되자 그는 가족을 이끌고 흥남 부두로 향했다. 아비규환 속에서 기적적으로 마지막 철수선인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몸을 실은 그는, 차가운 배 위에서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만약 우리 가족이 살아남는다면, 남은 평생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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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대전일보 >

 

 

 

거제도와 진해를 거쳐 서울로 올라가려던 그의 가족은 1956년, 타고 있던 열차가 대전역에서 고장으로 멈춰 서는 운명적인 사건과 마주한다. 오갈 데 없는 막막함 속에서 대흥동 성당을 찾은 그들에게 오기선 신부는 밀가루 두 포대를 내주었다. 이것이 성심당의 종잣돈이 되었다. 창업주는 대전역 앞에 천막을 치고 찐빵을 팔기 시작했고, 흥남 부두에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날 팔고 남은 빵은 전량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주었다. '당일 생산, 당일 소진, 남은 빵 기부'. 성심당 경영 철학의 뿌리는 경영학 교과서가 아닌, 전쟁의 폐허 속에서 피어난 '나눔'의 서약이었다.   

 

성심당이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프랜차이즈 열풍에 편승하여 서울과 지방 곳곳에 가맹점을 냈던 성심당은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다. 무리한 확장은 품질 저하를 불렀고, 회사는 부도 위기에 내몰렸다. 2005년에는 본점에 대형 화재까지 발생해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었다. 하지만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회사를 다시 일으키자"며 복구에 뛰어들었고, 이 과정을 통해 성심당은 "빵은 생물이다. 내 눈앞에서 만들어 바로 팔아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이후 성심당은 '대전 사수'라는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성심당은 다음과 같은 차별화된 전략으로 지금의 성공을 일구어냈다.   

 

첫째, 철저한 '희소성(Scarcity)' 전략과 로컬 앵커 테넌트로서의 입지다.

성심당은 서울 백화점들의 파격적인 입점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성심당은 대전의 문화입니다"라는 그들의 슬로건은 고도의 브랜딩 전략이다. 서울에서도 살 수 있었다면 사람들은 굳이 대전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불거진 대전역 매장 월세 논란은 성심당의 위상을 증명한다. 코레일유통은 규정에 따라 월 매출의 17%인 4억 4천만 원의 임대료를 요구했으나, 성심당은 "감당할 수 없다"며 맞섰다. 여론은 성심당의 편이었고, 결국 수차례 유찰 끝에 월 1억 3,300만 원 수준으로 계약이 체결되었다. 이는 성심당이 단순한 임차인이 아니라, 대전역의 유동 인구를 창출하는 대체 불가능한 앵커 테넌트임을 공공기관마저 인정한 상징적 사건이다.   

 

둘째, 혁신적인 제품 개발과 압도적인 '가성비'다.

성심당은 전통에 안주하지 않는다. 1980년 국내 최초로 개발해 특허까지 받은 '튀김소보로'는 누적 판매량 1억 개를 돌파하며 브랜드의 기틀을 다졌다. 최근에는 '시루' 시리즈로 MZ세대를 사로잡았다. 호텔 베이커리 케이크가 10만 원을 호가할 때, 성심당은 4만 원대의 가격에 딸기, 망고, 무화과 등 과일을 쏟아부은 듯한 케이크를 내놓았다. 마케팅비용을 제로(0)에 가깝게 줄이는 대신 원재료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전략은,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SNS에 인증샷을 올리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바이럴 기제가 되었다.   

 

셋째, '모두를 위한 경제(EoC)'의 진정성 있는 실천이다.

성심당의 나눔은 보여주기식이 아니다. 그들은 매년 영업이익의 15%를 직원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매월 3,000만 원 이상의 빵을 40여 곳의 복지시설에 기부한다. 투명한 납세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선한 영향력'은 위기 상황에서 강력한 사회적 자본이 된다. 2005년 화재 당시에도, 최근 임대료 논란 때도 대전 시민들은 "성심당은 지켜야 한다"며 기업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었다. 직원을 가족처럼 대우하고 지역 사회와 이익을 공유하는 경영 철학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 경쟁력이다.   

 

넷째, 미래를 위한 '로컬 생태계' 구축이다.

성심당은 이제 빵을 파는 것을 넘어 농업과 문화를 아우르는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대전 유성구 교촌동 일대에 7,000평(약 23,000㎡) 규모의 밀밭을 조성하고 국산 밀 생산에 뛰어들었다. 이는 수입 밀 의존도를 낮추고 국산 밀 자급률을 높이는 ESG 경영의 일환이자, 밀밭 체험과 생산 시설을 연계한 새로운 관광 랜드마크를 조성하려는 큰 그림이다. 단순히 재료를 사서 쓰는 소비자가 아니라, 지역 토양에서 원물을 직접 생산하고 가공하여 판매하는 '진정한 로컬 기업'으로의 진화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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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당의 성공 신화는 "성공하려면 서울로 가야 하고, 몸집을 불려야 한다"는 한국 사회의 고정관념을 통렬하게 깨부수었다. 그들은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경쟁력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기업이 이윤 추구를 넘어 공동체와 상생할 때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꿈꾸는 이들에게 성심당은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화려한 마케팅이나 무리한 확장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다. 빵집은 빵이 맛있어야 하고, 기업은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대전역 앞 작은 찐빵집에서 시작해 도시의 자부심이 된 성심당.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십시오"라는 그들의 사훈처럼, 진심(True Heart)을 담은 로컬 브랜드의 따뜻한 반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Founder: Doyoung Kim
  • Business Registration Number: 454-86-0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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