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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어 김주황 대표 (브만남)

<K-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

 

 

 


 

 

 

오늘날 스노우피크는 단순한 캠핑 장비 브랜드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팬덤이자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팬데믹 기간 동안 폭발적인 수요를 경험하며 2022년 연결 매출액 307억 엔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던 이들은, 리오프닝 이후 시장의 정상화 과정 속에서도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2023년 매출은 257억 엔 수준으로 조정되었으나 해외 매출 비중은 33.3%까지 상승하며 전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입증했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의 성과는 독보적이다. 라이선스 파트너인 감성코퍼레이션을 통해 전개되는 '스노우피크 어패럴'은 2024년 매출 2,204억 원을 기록했으며, 2025년에는 약 27% 성장한 2,793억 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방탄소년단(BTS)의 뷔(V)를 새로운 모델로 발탁하며 발생한 소위 '뷔 이펙트'는 브랜드 인지도를 대중적 차원으로 끌어올렸고, 이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한 강력한 동력이 되고 있다. 

 

이러한 눈부신 성과와 글로벌 확장의 이면에는 브랜드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과감한 전략적 결단이 있었다. 2024년 초, 스노우피크는 글로벌 사모펀드 베인캐피탈(Bain Capital)과 손잡고 경영권 매수(MBO)를 통한 자발적 상장 폐지를 단행했다. 주식 시장이 요구하는 단기적인 수익 지표와 매 분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장기적 관점에서 브랜드의 미션인 '체험 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승부수였다. 상장사로서 누릴 수 있는 자본 조달의 이점을 포기하는 대신, 전 세계에 캠핑장을 직접 짓고 호텔과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고객에게 완벽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비공개 기업'의 자유를 선택한 것이다. 이는 주주들의 배당 수익보다 현대인의 '인간성 회복'이라는 브랜드의 근본 철학을 우선순위에 둔, 비즈니스 역사상 보기 드문 사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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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스노우피크 >

 

 

 

이 브랜드의 시작, 과연 어땠을까?

 

스노우피크의 역사는 1958년 일본 니가타현의 작은 마을 츠바메산조에서 시작된다. 창업자 야마이 유키오는 전후의 트라우마를 산에서 치유받고자 했던 열정적인 등산가였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타니가와 산은 해발 2,000m도 되지 않지만, 험준한 암벽과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악마의 산'으로 불린다. 유키오는 이 거친 산을 오르며 당시 시판되던 장비들의 조잡함에 분노했고, "내가 목숨을 맡길 수 있는 도구를 직접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에도 시대부터 못과 칼을 만들던 금속 가공의 성지, 츠바메산조의 숙련된 대장장이들을 찾아가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테스트한 아이젠과 피톤(바위 틈에 박는 못)을 제작했다. 바위에 피톤을 박을 때 울려 퍼지는 맑은 금속 소리가 곧 생명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믿었던 그의 고집은 오늘날 스노우피크가 가진 장인정신의 뿌리가 되었다. 1963년, 그가 산 정상에서 본 아름다운 설경의 이미지를 담아 '스노우피크'라는 이름을 등록했을 때, 이 브랜드는 이미 도구를 넘어선 신뢰의 상징이었다.

 

브랜드의 2세대 경영자 야마이 토루는 1980년대 후반, 아버지의 등산 장비 회사를 '오토캠핑'이라는 새로운 문화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미국 유학 시절 광활한 자연 속에서 가족들이 여유를 즐기는 모습에 영감을 받은 그는 1990년, 현대 캠핑 텐트의 표준이 된 '어메니티 돔'을 출시하며 일본에 오토캠핑 붐을 일으켰다. 그러나 위기는 곧 찾아왔다. 1990년대 중반 일본의 캠핑 열풍이 식으면서 매출은 6년 연속 곤두박질쳤다. 파산 직전의 상황에서 토루는 "우리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고, 1998년 전설적인 행사인 '스노우피크 웨이(Snow Peak Way)'를 시작했다. 직원들과 고객이 캠핑장에서 함께 밤을 지새우며 모닥불(타키비) 앞에서 나누는 진솔한 대화는 브랜드를 다시 일으킨 기적의 씨앗이 되었다. 고객들은 "스노우피크가 우리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질타했고, 토루는 그 밤 텐트 안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브랜드를 철저히 고객 중심(D2C)으로 재편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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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스노우피크 >

 

 

 

여기서 스노우피크의 핵심 가치인 '인간성 회복'과 '노아소비(Noasobi, 야생 놀이)'가 비로소 완성되었다. 현대 사회의 편리함이 앗아간 인간 본연의 감각을 자연 속의 '놀이'를 통해 되찾아주겠다는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 스노우피크는 경제적 효율성을 기꺼이 포기했다. 대표적인 것이 '평생 보증(Lifetime Warranty)' 제도다. 이들은 제품에 보증서를 넣지 않는다. 스노우피크의 이름이 새겨진 제품이라면 언제, 어디서 구매했든 끝까지 수리해주겠다는 약속이다. 새 제품을 더 많이 팔아 이익을 남기는 대신, 수리 흔적이 훈장처럼 남은 낡은 텐트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만든 것이다. 이는 대량 소비 시대에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희생이자, 고객을 평생의 동반자로 만드는 가장 영리한 전략이었다.

 

2014년, 3세대 야마이 리사가 합류하며 스노우피크는 'Home ⇄ Tent'라는 컨셉으로 또 다른 혁명을 일으켰다. 그녀는 캠핑을 즐기지 않는 93%의 도시인들에게도 브랜드의 철학을 전달하기 위해 일상에서도 입을 수 있는 고기능성 어패럴 라인을 런칭했다. 이 전략은 특히 한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의 감성코퍼레이션은 스노우피크의 철학을 세련된 패션과 결합하여 '고프코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했다.  2024년 4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16.8% 증가한 1,052억 원을 기록하는 등 한국은 이제 스노우피크 글로벌 전략의 핵심 거점이자 마케팅의 시험대가 되었다. 한국에서의 성공 모델은 이제 대만, 홍콩을 넘어 2026년 대규모 플래그십 매장 오픈을 앞둔 중국 본토와 동남아시아 6개국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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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스노우피크 >

 

 

 

스노우피크가 꿈꾸는 미래는 이제 텐트 안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전체를 향한다. 상장 폐지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통해 확보한 자율성을 바탕으로, 이들은 단순히 캠핑 장비를 파는 회사를 넘어 '인간성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2024년 미국 워싱턴주에 오픈한 25에이커 규모의 '롱비치 캠프필드'와 전 세계 곳곳에 지어질 체험형 숙박 시설들은 현대인들이 언제든 자연과 연결될 수 있는 안식처가 될 것이다.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알고리즘이 우리를 가두는 시대일수록, 스노우피크가 제안하는 모닥불 앞에서의 대화와 자연 속에서의 잠자리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다. 60년 전 츠바메산조의 대장간에서 시작된 그 맑은 금속 소리는, 이제 전 세계인의 메마른 가슴 속에 "당신은 인간답게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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