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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최종우 교수. ffd랩 디렉터

전) 영국 맥라렌 시니어 제품운송 디자이너, 로지텍MX 시리즈 제품 수석 디자이너

 

 

 


 

 

 

산업디자인에서 표면은 오랫동안 장식으로 취급되었다. 구조와 기능을 다 만들고 나서 나중에 색을 바르고 재질을 고르는 마지막 단계로 밀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제품의 성능이 비슷해지면서 사람들은 숫자의 스펙 놀이보다 느낌을 먼저 본다. 손에 쥐었을 때 편한지, 보기만 해도 믿음이 가는지, 일상 속에서 계속 보고 싶을지 같은 질문이 앞에 선다. 그래서 표면은 더 이상 마지막 선택이 아니다. 표면은 제품이 세상에 자신을 소개하는 첫 문장이다. 그리고 브랜드가 사람에게 건네는 약속이기도 하다. 우리는 물건을 볼 때 곡선이나 비례보다 먼저 색과 빛을 본다. 손으로 잡는 순간 질감과 온도를 느낀다. 아주 작은 차이지만 고광택 플라스틱은 가벼운 인상을 만든다. 반면 정밀하게 가공된 금속은 안정감과 신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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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MacBook Pro M5 © Apple >

맥북의 알루미늄 표면의 차분한 반사가 도구에 대한 신뢰를 만든다. 단순한 형태지만 표면이 성격을 완성한다.

 

 

 

예를 들어 맥북은 형태가 특별히 화려하지 않다. 그럼에도 믿음이 가는 이유는 표면에서 시작된다. 단단한 알루미늄의 촉감과 과하지 않은 반사가 잘 맞물리며 잘 만든 도구라는 신호를 보낸다. CMF는 기술을 글로 설명하는 대신 몸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언어다. 표면이 허술하면 좋은 기술도 싸게 보인다. 표면이 좋으면 평범한 기능도 설득력을 얻는다. 그래서 CMF는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사람들이 물건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까지 설계하는 핵심 요소다. 결국 표면은 디자인의 주변부가 아니라 제품의 위치를 결정하는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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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Leica M2 film camera © Leica Camera AG >

라이카 빈티지 카메라. 모서리에 드러난 흠집들이 사용의 흔적을 기록으로 바꾼다.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줄지 않는 표면이다.

 

 

 

우리는 물건을 살 때 기능만 고르지 않는다. 그 물건이 우리의 시간 속에서 어떻게 변할지까지 함께 고른다. 오늘도 좋고 내년에도 괜찮을지. 쓰다 보면 더 좋아질지. 이런 상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금방 벗겨지고 갈라지는 표면은 금세 싫어진다. 반대로 천천히 깊어지는 표면은 오히려 정이 붙는다. 라이카 카메라의 황동이 조금씩 드러나는 모습이 그렇다. 흠집이 아니라 함께 보낸 시간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값싼 코팅이 벗겨지고 끈적거리기 시작하면 기능이 멀쩡해도 버리고 싶어진다. CMF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서적 내구성을 만들어 준다. 오래 쓸수록 애착이 생기게 하는 표면. 사용 흔적이 망가짐이 아니라 이야기로 읽히게 하는 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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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Bang & Olufsen speakers — © Bang & Olufsen >

거실 속에 자연스럽게 놓인 B&O 스피커. 표면과 질감이 가구처럼 공간에 녹아든다.

 

 

 

뱅앤올룹슨 스피커처럼 금속과 직물이 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섞이는 사례가 있다. 오래 두어도 질리지 않는다. 파타고니아 가방도 비슷하다. 천이 조금 닳아도 더 멋있어 보인다. 사람들은 이런 물건을 쉽게 버리지 않는다. 고쳐서 계속 쓴다. 복잡한 기술이 없어도 가능하다. CMF만으로도 사용자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 애착이 생기면 교체는 늦어진다. 관리와 돌봄이 자연스러워진다.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분이 좋다. 내 손에 익어 가는 물건을 쓰는 일은 생활의 리듬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면은 유행을 덧칠하는 화장이 아니다. 오랫동안 함께 쓰도록 만드는 경험의 장치다.

 

표면은 브랜드의 생각을 보여 주는 창이기도 하다. 로고는 한쪽에만 있지만 촉감과 빛은 제품 전체에 퍼져 있다. 같은 검정이라도 테슬라의 깊은 반사는 속도를 떠올리게 한다. 라 마르조코 커피 머신의 무광은 차분함과 집중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리모와 알루미늄 캐리어를 더 떠올려 볼 수 있다. 리브가 들어간 표면과 금속의 스크래치는 사용 흔적을 숨기지 않는다. 대신 여행의 기록처럼 남는다. 그래서 낡아 보이는 대신 익숙하고 믿음직한 느낌을 만든다. 이런 선택은 브랜드 포지션과 바로 연결된다. 누구를 위한 물건인지. 어떤 자리에서 쓰일지. 얼마만큼의 가치를 약속 할 지가 표면 안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CMF는 마케팅 뒤에 붙는 단계가 아니다. 처음 기획할 때부터 함께 고민해야 하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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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Rimowa hinge detail — © RIMOWA >

리모와 힌지와 리브 패턴의 디테일. 스크래치까지 받아들이는 표면이 내구성과 시간을 함께 보여 준다.

 

 

 

하지만 CMF는 감성만 다루지 않는다. 표면은 곧 공정이다. 공정은 비용과 품질로 이어진다. 도색을 줄이고 소재 자체를 살린 아이맥이 있다. 인쇄 대신 레이저 각인을 선택해 부품을 줄인 제품도 있다. 모두 미학과 운영을 동시에 생각한 결정이다. 스크래치가 덜 보이는 질감. 쉽게 벗겨지지 않는 마감. 의도적으로 드러나는 구조. 이런 선택은 A/S 비용을 낮추고 불만을 줄인다. 여기에 유럽을 중심으로 강해지는 지속가능성 규제가 더해지고 있다.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요구하는 환경 속에서 시간을 견디는 표면은 부담이 아니라 투자에 가깝다. 그래서 디자이너의 질문도 바뀐다. 이 표면은 1년 후 어떤 모습일까. 3년 후에는 어떤 느낌일까. 관리하기 쉬울까. 여전히 좋아 보일까. 표면이 시간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같은 제품이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결국 CMF는 브랜드와 운영과 사용 경험이 만나는 교차점에 서 있다.

 

디자이너로 일하며 늘 형태와 기능 사이에서 균형을 고민해 왔다. 그런데 그 고민의 끝에는 언제나 사용자가 직접 보고 만지는 CMF의 가치가 있었다. 산업디자인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은 정말 넓다. 하지만 막 사회에 나온 디자이너들이 CMF를 깊게 고민하는 장면은 아직 많이 보지 못했다. 표면은 여전히 덧칠로 오해받기도 한다. 이제는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산업디자인에서 CMF의 중요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자동화와 알고리즘이 넓어지는 시대일수록 사람의 감각과 판단이 개입되는 영역은 더욱 값진 영역이 된다. CMF는 그 지점에 서 있다. 물건이 사람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시간이 지난 뒤 어떤 얼굴을 가질지.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CMF가 단순한 옵션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오래 붙들고 갈 수 있는 중요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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