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우.jpg

 

심준우 | 써니아일랜드 대표

디자인 스튜디오 창업노트 저자K-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

 

 

 


 

 

 

나는 일본에 대해 긍정적인 환상을 가진 사람이다. 애니메이션과 문화 속에서 느껴온 섬세함, 절제, 그리고 ‘배려’라는 감각은 내 마음 속 일본을 정돈된 사회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오사카 여행에서는 그 이미지를 확인하기보다, 관광객의 시선으로 공공디자인을 다시 바라보고자 했다. 공항에 이어 도시에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사람의 밀도였다. 붐비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거의 부딪히지 않는다. 이 현상은 단순한 문화라기보다,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사전정보가 있었기에 여행 내내 더욱 날카롭게 관찰했다.) 동선, 정보 배치, 공간의 밀도 설계가 자연스럽게 사람의 움직임을 조율하고 있었다. 오사카는 겉보기엔 복잡하지만, 실제로는 정교한 흐름 위에서 작동하는 도시라는 첫인상을 가졌다.

 

 

 

KakaoTalk_20260406_201309669.jpg

 

 

 

일본어 중심 환경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안내판에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가 병기되어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언어 이전에 작동하는 구조였다. 유튜브와 블로그에서 오사카 여행의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내용 중 하나가 '무슨무슨 색을 따라가라.' '빨간색만 따라가면 된다' 이다. 색과 번호 중심의 노선 체계, 방향성을 직관적으로 유도하는 사인 시스템은 ‘읽지 않아도 이해되는 도시’를 만들고 있었다. 이 경험은 공공디자인의 핵심 개념인 ‘어포던스(affordance)’와 맞닿아 있다. 어포던스는 설명 없이도 환경이 행동을 유도하는 특성을 의미한다. 오사카의 공공디자인은 정보를 해석하게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만든다. 색을 따라가면 환승이 되고, 흐름을 따라가면 출구에 도달한다. 이해보다 행동이 먼저 일어나는 구조다.

 

오사카는 다국어 안내와 배리어프리 설계를 통해 관광객을 수용하는 도시지만, 진짜 강점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작동 방식에 있다. 사용자가 멈추지 않고 이동하도록 설계된 흐름, 그리고 불편이 없어 인식되지 않는 디자인. 결국 좋은 공공디자인은 눈에 보이기보다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데 있다. 오사카의 지하상가와 골목은 어떤 면에서 한국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오래되고 좁지만 여전히 기능적으로 작동한다. 이는 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유지와 운영의 차이를 보여준다. 공공디자인은 새로움보다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구조’에서 완성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흡연 문화였다. 거리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지정된 공간에서는 자연스럽게 흡연이 이루어진다. 이는 시민의식이라기보다 정책과 디자인이 함께 작동한 결과다. 오사카는 노상흡연을 제한하면서 동시에 흡연구역을 명확하게 제공한다. 금지와 허용을 공간으로 구획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공공디자인은 정책을 실행하는 방식이 된다. 규칙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따르도록 유도한다. 넛지 이론처럼 강제 없이 행동을 바꾸는 구조다. 흡연자는 금지된 공간을 피하고, 허용된 공간으로 이동한다. 공공디자인은 행동을 유도하는 것을 포함해서, 문화에 의해 변하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포용하기도 한다.

 

 

 

KakaoTalk_20260406_201309669_01.jpg

 

 

 

오사카의 또 다른 특징은 건물과 간판에서 드러난다. 도톤보리와 같은 상업지역에서는 간판이 과할 정도로 자유롭고 창의적이다. 반면 오사카성 주변과 같은 전통 관광 구역은 절제되고 정돈된 질서를 유지한다. 같은 도시 안에서 자유와 통제가 공존하는 이 모습은 공공디자인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공간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되며,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합의된 경계’로 작동한다. 이 지점에서 공공디자인은 설계가 아니라 거버넌스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정책, 시민의 행동, 공간의 맥락이 맞물리며 기준이 형성된다. 모든 공간을 동일한 기준으로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목적과 성격에 맞게 ‘선’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선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사람의 성향, 공간의 특성, 그리고 문화가 결합된 결과다. 내가 돌아본 오사카는 넘칠듯 넘치지 않는 그곳만의 선이 있었다.

 

문제는 우리는 이 ‘선’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동일한 기준을 모든 공간에 적용하려는 안타까운 행동을 한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공공디자인은 결국 ‘사람’과 그들이 공유하는 ‘선’ 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정교한 시스템과 정책이 존재하더라도, 시민이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따르지 않으면 디자인은 기능하지 않는다. 오사카의 친절한 억양, 관광객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서로를 배려하는 거리감은 모두 오랜 시간 축적된 사회적 합의의 결과다.

 

 

 

KakaoTalk_20260406_201309669_02.jpg

 

 

 

이러한 관점에서 공공디자인은 단순한 시설이나 시각 요소가 아니라, 행동을 유도하고 관계를 조율하는 구조다. 얀 겔(Jan Gehl)이 말한 ‘사람 중심 도시’처럼, 도시의 질은 결국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상호작용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오사카는 규칙을 강하게 드러내기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그 선을 지키도록 만드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민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더 많은 시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선’을 설정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도록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흡연 구역처럼 행동을 유도하는 공간 설계, 직관적인 안내 시스템, 그리고 공간의 맥락에 맞는 기준 설정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오사카는 완벽한 도시가 아니다. 그러나 이 도시는 잘 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잘 작동하기 위해 설계된 도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고, 그들이 공유하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공공디자인은 결국 그 선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제대로 작동한다.

  • Founder: Doyoung Kim
  • Business Registration Number: 454-86-01044
  • Copyright © DESIGNSORI Co., Ltd.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