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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어 김주황 대표 (브만남)

<K-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

 

 

 


 

 

 

대한민국 신발 제조의 심장부였던 부산, 이곳이 지금 전 세계 스포츠웨어 산업의 미래를 쏘아 올리는 전초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거대한 로봇 팔이 1.5km에 달하는 단 하나의 필라멘트사를 정교하게 분사하며 신발 갑피(Upper)를 만드는 모습은 흡사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부산에 이런 공장을 세운 브랜드는 바로 ‘온(On)’이었다. 스위스 취리히 본사에도 단 4대뿐인 이 ‘라이트스프레이(LightSpray™)’ 기계를 부산에 무려 32대나 배치했다. 

 

온(On)이 수많은 국가 중 한국, 특히 부산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공학 인프라와 제조 실행력이 뒷받침되어야만 이 혁신 기술을 현실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계 한 대가 신발 한 켤레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3분. 기존 200단계에 달하던 수작업 공정을 단 하나의 자동화 프로세스로 압축하며, 탄소 배출량을 75%나 줄이는 경이로운 효율을 달성했다. 이제 전 세계 러너들은 부산에서 생산되어 ‘Sprayed in Korea’라는 문구가 새겨진 최첨단 러닝화를 신고 구름 위를 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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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술적 패기는 압도적인 재무 성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온 홀딩 AG는 2025년 회계연도 기준 연간 매출 약 30억 1,400만 스위스 프랑(한화 약 4조 5천억 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30억 프랑 고지를 돌파했다. 전년 대비 30%가 넘는 성장률은 물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무려 96.4%라는 폭발적인 매출 증가를 기록하며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수익성이다. 62.8%에 달하는 매출총이익률(GPM)은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전통적인 거대 기업들도 도달하기 힘든 수치로, 온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강력한 프리미엄 브랜드 권력을 확보했음을 입증한다.

 

이 강력한 비즈니스 엔진에 화룡점정을 찍은 인물은 테니스의 살아있는 전설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다. 2019년 페더러가 온의 파트너로 합류한다는 소식은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는 수십 년간 함께했던 나이키와의 거액 후원을 뒤로하고, 아직은 작았던 스위스의 신생 브랜드에 자신의 미래를 걸었다. 페더러는 단순한 광고 모델이 아니었다. 그는 직접 약 5,000만 달러를 투자해 3~10%의 지분을 확보하고 이사회에 참여하는 ‘공동 기업가’로서의 길을 택했다. 

 

그는 온의 제품에서 스위스 특유의 정밀함과 기존 브랜드에서는 느낄 수 없던 혁신적인 감각을 발견했고, 이는 그가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걸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세계 최고의 완벽주의자로 통하는 페더러가 왜 이 ‘이상한 밑창’을 가진 브랜드에 매료되었는지, 사람들은 그때부터 온의 실체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 브랜드의 시작, 과연 어땠을까?

 

온의 혁신은 거창한 연구소가 아니라 스위스 알프스의 어느 뒷마당에서 지극히 원초적인 실험으로 시작되었다. 전설적인 트라이애슬론 선수였던 올리비에 베른하르트(Olivier Bernhard)는 고질적인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은퇴 위기에 처해 있었다. 기존 신발들이 제공하는 쿠셔닝 방식이 자신의 통증을 해결해주지 못하자, 그는 어느 날 정원용 호스를 짧게 잘라 자신의 운동화 밑창에 가로로 다닥다닥 붙여 보았다. 누가 봐도 괴상하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닮았다던 이 시제품을 들고 그는 자신의 후원사였던 나이키를 비롯해 아디다스, 푸마 등 거대 기업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냉소였다. “이게 신발인가요?”라는 반응과 함께 모든 제안은 거절당했다. 대기업들의 눈에 그 호스 조각은 그저 상업성이 전혀 없는 ‘조잡한 발명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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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베른하르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이 우스꽝스러운 신발을 신고 달렸을 때 느꼈던 ‘구름 위를 달리는 듯한’ 감각(부드러운 충격 흡수와 즉각적인 에너지 반환)을 확신했다. 그는 2010년 1월, 자신의 에이전트였던 카스파 코페티(Caspar Coppetti)와 전략가 다비드 알레만(David Allemann)을 설득해 단 세 명이 온을 설립했다. 초기 투자금은 각자 15만 달러씩, 총 45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들은 거대 기업이 거절한 그 ‘이상한 기술’을 클라우드텍(CloudTec®)이라는 정교한 메커니즘으로 진화시켰고, 출시 1개월 만에 ISPO 브랜드뉴 어워드를 수상하며 시장에 충격을 주었다. 온이 단기간에 거대 공룡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심도 있는 비즈니스 전략이 숨어 있다.

 

첫째, 온은 '전문가 집단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확보하는 니치 전략을 펼쳤다. 초기 마케팅 예산을 대중 매체 광고에 쏟아붓는 대신, 전 세계의 전문 러닝 편집숍(Specialty Stores)에 집중적으로 제품을 공급했다. 러닝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이 먼저 온의 기술력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진짜 러너들이 신는 신발"이라는 강력한 퍼포먼스 신뢰를 구축한 것이다. 이는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대형 유통망과 자사 D2C로 이동하며 소홀히 했던 틈새시장을 정확히 공략한 결과였다.

 

둘째, '신발을 모르는 전문가'들이 만드는 신발이라는 역설적인 디자인 철학이다. 온은 디자인 책임자로 신발 설계 경험이 전혀 없는 가구 및 산업 디자인 전문가 틸로 브루너(Thilo Brunner)를 영입했다. 기존 신발 디자이너들이 가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온은 스위스 가구처럼 미니멀하면서도, 기술적 요소가 외부로 드러나는 독창적인 미학을 완성했다. 브루너는 "기술을 숨기지 말고 시각적으로 증명하라"는 원칙 아래, 클라우드텍 구조를 그대로 노출하여 고객이 신발을 보는 즉시 그 기능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셋째, 철저한 '가격 및 브랜드 거버넌스'다. 온은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업계에서 가장 엄격한 정가 정책을 고수한다. 세일이나 아울렛 유통을 극도로 제한하여 소비자들에게 "온은 할인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가치 있는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가격 통제력은 높은 매출총이익률로 이어졌고, 현재 자사몰(D2C) 판매 비중이 42%에 달할 정도로 강력한 수익 구조를 만들었다. 중간 유통 단계를 줄이면서도 브랜드의 희소성을 유지하는 이 전략은 온을 명품과 스포츠의 경계에 놓이게 했다.

 

넷째, 지속 가능성을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으로 통합했다. 온의 '사이클론(Cyclon™)' 프로그램은 단순히 친환경 소재를 쓰는 것을 넘어, 신발을 소유하는 방식 자체를 바꾼 혁명이다. 피마자 씨앗으로 만든 신발을 월 구독료를 내고 빌려 신다가, 6개월 뒤 낡은 신발을 반납하면 새 신발로 교체해주는 시스템이다. 수거된 신발은 100% 재활용되어 다시 새로운 신발의 원료가 된다. 이는 환경 보호와 고객 충성도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전략으로 평가받는다.

 

다섯째, 한국의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PAF)이나 명품 브랜드 로에베(Loewe)와의 협업에서 보듯, 온은 기술과 패션, 그리고 예술을 결합하는 데 거침이 없다. 특히 PAF와의 협업은 온이 전문 스포츠 브랜드의 경계를 넘어 가장 최전선의 서브컬처와 패션 씬에서도 인정받는 브랜드임을 증명했다. 이는 2030 세대에게 온을 단순한 운동화가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으로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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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의 여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모두가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던 정원용 호스 조각에서 세계를 제패할 혁신을 발견한 집요함, 그리고 그것을 스위스적인 정밀함과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듬어낸 브랜드 전략이 오늘날의 온을 만들었다. 나이키가 거절했던 그 ‘못생긴 신발’은 이제 부산의 로봇 팔을 통해 매 3분마다 한 켤레씩 미래를 생산하고 있다.

 

온이 앞으로 그리는 미래는 단순히 신발을 더 많이 파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인간의 움직임(Movement) 자체를 재정의하고,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순환 경제 안에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내는 ‘무브먼트 컴퍼니’를 꿈꾸고 있다. 부산 공장의 확장은 그 거대한 계획의 시작일 뿐이다. 누군가의 무모한 실험이 전 세계 러너들의 표준이 된 것처럼, 온이 제시하는 지속 가능한 미래 스포츠의 비전 또한 곧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다. 구름 위를 향한 이들의 질주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다음 혁신이 무엇일지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 Founder: Doyou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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