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혁 | ASIA DESIGN PRIZE 미디어 편집장
이번 2026-2027년 아시아 디자인 트렌드 리포트의 분석 결과를 들여다보면, 브랜드는 더 이상 평면적인 시각 인식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음을 명확히 시사한다. 수많은 수상작들의 디자인 설명과 키워드는 브랜드가 이제 사용자가 직접 들어가 머무르고 경험하는 하나의 '공간'으로 격상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브랜드 정체성은 로고나 그래픽 요소를 넘어 공간 구성과 동선, 조명과 소재를 통해 종합적으로 숨 쉬는 거주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트렌드 리포트는 이 거대한 흐름을 'BRANDLIVING(브랜드리빙)'이라는 단어로 명명하기로 했다. Brand(브랜드)와 Living(거주)이 결합된 개념이다.

BRANDLIVING은 단순히 두 단어를 조합한 신조어가 아니다. 브랜드와 사용자의 경험이 존재할 수 있는 지점에서 이 단어는 브랜드 패러다임의 새로운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브랜드를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사용자가 거주환경과 같이 세부적인 경험이 살아있는 환경으로 추구하겠다는 태도, 사용자의 일상과 체류 시간 안에 브랜드의 철학을 심어 넣으려는 디자이너의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다.

< Sushi Sou Quiet Density and Pure Presence, ASIA DESIGN PRIZE 2026 Grand Prize >
한국 수상작 [Sushi Sou Quiet Density and Pure Presence]는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는 다이닝 브랜드를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니라, 사용자가 머무는 시간을 중심으로 설계된 공간 경험으로 제안한다. 좁은 면적 안에서도 절제된 밀도와 조용한 분위기를 통해 브랜드의 성격을 전달한다. 이곳에서 브랜드는 메뉴판이나 간판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천장의 구조, 조명의 위치와 색감, 좌석 배치, 손님의 이동 방식이 함께 작동하며 브랜드가 추구하는 정서를 형성한다. 이는 공간의 세부 요소가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DIMENSION GO ANIME RETAIL FLAGSHIP STORE, ASIA DESIGN PRIZE 2026 Winner >
중국의 [Dimension Go Anime Retail Flagship Store]는 브랜드리빙의 방향을 보다 적극적인 몰입형 경험으로 확장한 사례다. 중국 수상작 데이터에서 상위권에 등장한 ‘크다(large)’, ‘벽(wall)’, ‘장면(scene)’이라는 단어는 중국 리테일 공간이 대규모 장면 구성과 시각적 몰입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에서 매장은 단순히 제품을 진열하는 장소가 아니라, 소비자가 브랜드 세계관 안으로 들어가 경험하는 공간으로 설계된다.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에 머무르지 않고, 공간 안에서 브랜드가 제안하는 장면을 직접 체험하는 참여자가 된다.

< JUE Restaurant, ASIA DESIGN PRIZE 2026 Winner >
말레이시아의 [JUE Restaurant]는 다이닝 아일랜드와 장식적인 천장을 중심 요소로 활용해 식사 경험을 브랜드 정서와 연결한 사례다. 이 프로젝트는 식사의 기능적 목적뿐 아니라, 사용자가 공간에서 느끼는 분위기와 감각적 인상을 함께 설계한다. 브랜드리빙이 반드시 동일한 방식으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각 지역의 문화, 공간 감각, 소비 방식에 따라 다른 형태로 적용될 수 있다. JUE Restaurant는 동남아시아의 공간 정서에 맞춰 브랜드 경험을 유연하게 해석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 Wooden Nook Cafe, ASIA DESIGN PRIZE 2026 Winner >
대만의 [Wooden Nook Café]는 기존 건축 자산과 브랜드 경험을 결합한 사례다. 오래된 벽돌, 목재 구조, 레트로한 색채를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대신, 기존 장소가 가진 시간성과 분위기를 브랜드 자산으로 전환했다. 이 프로젝트는 브랜드가 반드시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오히려 기존 공간의 맥락을 존중하고, 그 위에 브랜드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얹을 때 사용자가 더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위의 네 가지 사례는 브랜드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브랜드는 더 이상 로고와 컬러의 조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브랜드는 사용자가 어떤 공간에 들어가고, 어떤 순서로 이동하며, 어떤 물성을 접하고, 얼마나 오래 머무르는가를 통해 경험된다. 따라서 브랜드리빙의 핵심은 사용자가 브랜드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설계하는 데 있다. 보기 좋은 외관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가 그 공간에 머물 이유를 만들고, 그 시간을 긍정적인 브랜드 경험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브랜드는 ‘소비자가 거주하고 싶은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오프라인 공간의 역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은 정보 탐색, 가격 비교, 구매의 편의성을 이미 매우 높은 수준으로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오프라인 공간은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장소만으로는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사용자가 직접 방문할 이유, 시간을 들여 머무를 이유, 다시 찾아올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이 변화에 따라 브랜드 충성도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반복 구매가 중요한 지표였다면, 이제는 사용자가 브랜드 공간에 얼마나 자주 머무르고, 얼마나 긍정적인 경험을 축적하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대형 상업 공간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브랜드의 공간화는 일상 제품과 가정용 제품의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브랜드 메시지와 텍스트, 소재, 조작 방식은 매장 밖으로 나와 사용자의 일상 환경 안에 자리 잡는다. 예를 들어 매일 사용하는 가전제품, 주방 제품, 생활용품의 표면과 인터페이스도 브랜드를 경험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사용자는 제품을 단순히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놓인 생활 환경 속에서 브랜드를 반복적으로 접하게 된다. 이 점에서 브랜드리빙은 리테일 전략뿐 아니라 제품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 사용자 경험 설계와도 연결된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리빙이 막대한 자본을 가진 대기업만의 전략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의 작은 다이닝 바나 대만의 골목길 카페가 보여주듯, 공간의 크기나 예산보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가 머무는 시간을 얼마나 세심하게 설계하는가이다. 작은 공간이라도 동선, 조명, 소재, 사인, 음악, 서비스 흐름이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만든다면 충분히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크고 화려한 공간이라도 사용자의 체류 경험을 고려하지 못한다면 지속적인 브랜드 자산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이 변화는 디자이너의 역할도 새롭게 정의한다. 브랜드 디자이너는 더 이상 로고와 시각 시스템만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다. 브랜드가 어떤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경험될 것인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공간 디자이너 역시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구성하는 역할을 넘어, 브랜드의 메시지와 사용자의 체류 경험을 설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앞으로의 브랜드 가이드라인은 로고 사용 규정, 색상 코드, 서체 규정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의 인상, 시선의 이동 경로, 조명의 밝기, 가구의 촉감, 안내 문구의 어조, 서비스 응대 방식까지 포함하는 경험 설계 매뉴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예컨데, 브랜딩에서 서비스 디자인의 영역까지도 필수적으로 포함하여야 고객여정(Customer Journey)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 브랜드리빙은 브랜드가 시각적 상징에서 경험적 환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브랜드는 더 이상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보여지는 이미지가 아니라, 사용자가 직접 들어가 머무르고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생활 환경이 되고 있다. 이 변화 속에서 중요한 경쟁력은 더 큰 공간이나 더 화려한 연출이 아니다. 사용자가 브랜드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얼마나 명확하고 일관되며 긍정적인 경험으로 설계할 수 있는가이다. 앞으로의 브랜드 전략은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넘어 “어떤 공간과 시간으로 경험될 것인가”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