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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현 | 듀당스 대표

K-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

 

 

 


 

 

 

불닭볶음면의 캐릭터 논란을 아는가. 과거부터 쌓아온 자산을 스스로 버리겠다는, 그 선택 말이다. 삼양식품은 지금 더없이 잘나간다. 불닭 하나로 해외를 휩쓸며 회사를 사상 최대 규모로 키웠고, 그 기세는 아직 꺾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 봉지를 12년간 지켜온 호치를 신규 캐릭터 페포로 바꾸는 안을 꺼냈다. 호치는 2014년부터 봉지 위에 있던 닭이다. 투블럭 머리에 비키니, 어딘가 촌스럽고 그래서 더 각인이 된 캐릭터. 중국과 동남아의 짝퉁들이 라면 맛은 못 베껴도 호치만큼은 기어이 따라 그렸을 만큼, 그 닭은 불닭 그 자체였다. 회사 설정으로는 페포가 그 뒤를 잇는다. 자식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그림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명분을 따라가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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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삼양식품 >

 

 

 

잘 팔리는 물건의 얼굴을 굳이 바꾸는 건 드문 일이다. 불닭은 매출 대부분을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삼양의 사실상 전부다. 세계가 알아보는 간판을 내리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삼양은 이유를 댔다. 짝퉁이 호치까지 베낀다, 호치가 좀 낡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진짜 이유는 권리에 있었다. 호치는 2012년 김정수 당시 대표와 외부 제작사가 함께 만든 캐릭터라 권리가 쪼개져 있었고, 봉지 밖 굿즈나 콘텐츠로 넓히려면 매번 외부 계약을 풀어야 했다. 그 계약은 2023년에 끝났다. 여기까지는 사실이다. 그런데 권리가 문제라면 길은 둘이었다. 쪼개진 상표권을 사들여 온전히 삼양 것으로 만들거나, 호치를 시대에 맞게 손보거나. 둘 다 멀쩡히 열려 있었다. 회사는 셋째 길을 골랐다. 12년 쌓인 얼굴을 통째로 내리고, 처음부터 100% 자기 것인 새 얼굴을 올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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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헷갈린다. 사려고 봉지를 든 손님은 익숙한 호치가 없으면 "어, 아니네?" 하고 그냥 지나친다. 게다가 호치는 복잡하고 매력 있는 캐릭터라 아무도 똑같이 못 베꼈다. 불닭의 상징은 단순한 닭이 아니라 그 복잡한 호치였다. 반대로 페포 같은 단순한 빨간 새는 이미 짝퉁 봉지에 흔하고, 다른 흔한 캐릭터를 떠올리게 해 오해까지 산다. 베낄 수 없던 자산을 내리고, 누구나 베낄 수 있는 자산을 그 자리에 올린 셈이다. 오해는 말자. 페포가 못난 캐릭터라는 얘기가 아니다. 해외 유튜브 구독자가 백만을 넘고 캠페인 영상은 두 달 만에 1억 뷰를 찍었다. 그러나 100% 내 것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이 호치에게 12년간 보낸 정까지 옮겨다 주지는 않는다. 소유와 애정은 다른 항목이다.

 

삼양식품에서의 이런 의사결정은 처음도 아니다. 몇 해 앞서 그룹은 60년 넘게 써온 이름과 상징을 통째로 갈았다. 삼양식품그룹은 삼양라운드스퀘어가 됐다. 월간디자인 같은 매체는 60년 헤리티지를 이어온 대대적 리뉴얼이라 소개하며, 3세 전병우가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는 김정수 부회장과 함께 펜타그램 런던 오피스로 직접 날아가 킥오프부터 전 과정을 이끌었고, 사각형과 원이 교차하는 네거티브스페이스, 비트루비안 맨에서 비례를 따왔다는 발상도 그의 것이라고 밝혔다. 세 갈래 가지가 한 기둥으로 모이던 옛 나무 심벌은 삭제되었다. 오래 써온 그 마크를 지운 자리는, 윗대와 다른 걸 보여주고 싶다는 3세의 의지로 읽힌다. 브랜드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인 헤리티지의 단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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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삼양식품 >

 

 

 

비트루비안 맨.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안다. 이런 인용이 대체로 거창한 말장난에 가깝다는 걸. 게다가 식품회사와 다빈치가 어떤 맥락에서 연결되는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다 빈치라는 이름값은, 권한 많고 비판해줄 주변에 사람이 없는 어린 오너에게는 더없이 설득력 있게 다가갔을 것이다. 더 곤란한 건, 이번엔 그 오너가 설득당한 쪽이 아니라 직접 들고 온 쪽이라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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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삼양식품 >

 

 

 

작업은 세계 최고라는 펜타그램이 맡았다. 펜타그램 입장에선 쉬운 고객이었을 거다. 자기들을 알지도 못하던 동양의 식품 회사가, 그리고 싶은 그림과 거액을 들고 왔으니. 이런 걸 사대주의라 부른다. 임원 회의를 통과시킬 권위를 빌리러 외국 거장을 찾는 건 한국 인하우스에서 비일비재하지만, 나도 그런 방에 앉아본 적 있어서 저 인터뷰는 솔직히 씁쓸했다. 세계 최고의 외피는 어설픈 결정마저 그럴듯해 보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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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펜타그램 >

 

 

 

애초에 얼마나 쉬운 고객이었을까. 펜타그램이 자사 포트폴리오에 이 작업을 올리며 맨 앞에 건 이미지를 보면 대충 짐작이 간다. 삼양식품이 정작 세계에 파는 물건은 봉지 라면, 간편식이다. 그런데 그 첫 화면을 채운 건 라면이 아니라, '한국' 하면 떠오르는 삼겹살같은 외식 풍경에서 잘라 온 듯한 그림이었다. 클라이언트가 무엇을 만드는 회사인지는 거기서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저 한국이라는 나라가 먹기 좋게 포장됐을 뿐. 별생각 없이 팔기 좋은 그림이다. 역시나, 외국 에이전시가 맥락을 버린 채 진행해 디자인 참사라 불리는 한솥의 리브랜딩 사례를 다시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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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스톡홀롬디자인랩 >

 

 

 

물론 시각적 완성도야 흠잡을 데 없다. 네모와 원이 겹치며 생기는 네거티브 스페이스를 브랜드 전반으로 끌고 가는 솜씨는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문제는 그게 삼양식품과 어떻게 연결되느냐다. 둥근 것은 식문화, 각진 것은 과학기술, 둘이 겹쳐 새 가능성이 태어난다는 서사. 그건 만드는 쪽, 공급자의 언어다. 라면을 사 먹는 소비자의 언어는 그 안에 없다. 게다가 네모와 동그라미는 세상에서 가장 흔한 도형이라 그 자체로는 식별력이 약하다. 멀리서 '아, 삼양이구나' 하고 떠오르게 만들려면 한참을 걸릴것이다. 

 

식별력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짚을 게 있다. 삼양식품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 삼양과 완전히 다른 회사다. 설탕과 화학, 의약바이오를 다루는 100년 기업 삼양그룹이 따로 있고, 라면을 만드는 삼양식품은 한자 이름만 같을 뿐 뿌리가 다른 별개 회사다. 이름은 오히려 삼양그룹이 먼저 썼다. 사람들은 늘 이 둘을 헷갈려 왔다. 누군가는 이번 심벌을 두고 '삼양'의 받침 ㅁ과 ㅇ을 따왔다며, 식품 원재료를 만드는 회사라 그렇다고 읽기도 했다. 그러나 원재료를 납품하는 건 삼양그룹의 일이지 삼양식품이 하는 일이 아니다. 이름이 같아 생긴 오해다. 리브랜딩은 그 오해를 끊어낼 기회였다. 그런데 삼양식품은 정반대로 갔다. 자기를 단숨에 알아보게 했던 것들, 불닭과 호치와 오래된 나무 심벌을 내려놓고, 누구나 그릴 수 있는 네모와 원을 골랐다. 자기를 남과 갈라주던 무기를 스스로 버린 셈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100주년을 맞은 삼양그룹 역시 세계적 타이포그래퍼 네빌 브로디를 불러 CI를 갈았고, 그쪽도 후계자가 전면에 섰다. 두 삼양은 서로 멀어지기는커녕, 약속이나 한 듯 닮은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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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삼양그룹 >

 

 

 

그러나 결과까지 같지는 않았다. 브로디가 그린 삼양그룹은 화학과 소재를 다루는 B2B 회사의 언어를 잘 담아냈다. 원래 그 회사 로고는 이렇다 할 식별력이 없었으니 무엇으로 바꾸든 비판은 피해갈 만했고, 피하기만 한 게 아니라 바뀐 얼굴은 전보다 더 큰 회사처럼 보인다. 추상적이고 절제된 기업의 언어가 애초에 그런 회사에 어울리는 옷이기 때문이다. 반면 삼양식품에 남은 건 비전만 그득한 현학적인 아이덴티티다. 다 빈치에서 빌려 온 비례, 식문화와 과학의 만남이라는 서사는 소재를 파는 회사 회의실에서라면 근사했겠지만, 봉지를 쥐는 손님 앞에서는 공허하다. 같은 처방이 한쪽은 더 커 보이게 만들었고, 다른 쪽은 더 비어 보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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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삼양라운드스퀘어 >

 

 

 

이름도 따로 논다. 라운드 스퀘어, 둥근 것이 먼저인데 정작 심벌에서 먼저 읽히는 건 각진 쪽이고 둥근 것이 뒤따른다. 버벌과 비주얼이 어긋난다. 나는 이걸 잘 여물지 않은 결정이라고 본다. 그들은 이 변화를 브랜드의 진화라 불렀다. 진화가 아니다. 그냥 다른 것이다. 60년 줄기를 자르고 낯선 줄기를 심는 일은 진화가 아니라 혁명에 가깝고, 적어도 이 경우의 혁명은 좋게 봐주기 어렵다. 승계가 잘 풀린 기업들을 보면 다르다. 그들은 물려받은 것을 함부로 지우지 않는다. 오래된 상징 위에 새 의미를 얹고, 낡았다 싶은 얼굴도 버리기보다 매무새를 고쳐 다시 내보낸다. 헤리티지를 딛고 올라설 바닥으로 쓴다. 그게 진짜 진화다. 끊임없이 변신하는 것 자체가 이 회사의 헤리티지였다면, 나도 기꺼이 인정하겠다.

 

하지만 60년을 들여 쌓은 이름과 얼굴을 한 번에 내려놓은 선택은, 진화라 부르기엔 너무 과했다. 그 욕망 자체는 죄가 아니다. 다만 욕망이 판단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과감함이 목적이 되고 결과는 뒤로 밀린다. 과감함은 목적이 될 수 없다. 결과여야 한다. 차라리, 그 네모와 원을 세로로 포개 컵라면 한 그릇을 그렸다면 어땠을까. 삼양라면으로 시작해 불닭볶음면의 열열한 팬으로서 60년을 끓여온 회사가 무엇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사 먹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한 번이라도 물었다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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