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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최종우 교수. ffd랩 디렉터

전) 영국 맥라렌 시니어 제품운송 디자이너, 로지텍MX 시리즈 제품 수석 디자이너

 

 

 


 

 

 

최근 자동차 업계와 디자인계를 이토록 뜨겁게 달군 사건이 또 있었을까. 이탈리아의 심장이라 불리는 페라리가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차 ‘루체(Luce)’를 공개했다는 설정만으로도 이 프로젝트는 충분히 논쟁적이다. 여기에 애플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와 마크 뉴슨이 이끄는 ‘러브프롬(LoveFrom)’이 참여했다는 소식은 기대를 증폭시키기 충분했다. 그러나 막상 공개된 결과를 둘러싼 반응은 찬사보다 의심과 비판이 앞선다. 시장은 열광하기보다 흔들렸고, 일부에서는 이를 “10억짜리 애플카”라는 냉소적 표현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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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Courtesy of Ferrari > 

왼쪽부터 페라리 CEO 베네데토 비냐, 엑소르 CEO 존 엘칸, 페라리 수석 디자인 책임자 플라비오 만조니, 러브프롬의 조니 아이브와 마크 뉴슨.

 

 

 

이 논쟁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간단하지 않다. 과연 극단적으로 절제된 조니 아이브식 미니멀리즘은 굉음과 속도, 공격적인 긴장감으로 대표되는 페라리의 세계와 공존할 수 있는 언어였을까. 혹은 페라리가 선택한 것은 새로운 디자인 철학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적 이름이 가진 과잉된 무게였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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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Courtesy of Ferrari > 

극도로  절제된 조니 아이브식 미니멀리즘이 반영된 페라리 루체(Luce) 인테리어 디테일

 

 

 

조형적인 관점에서 이 차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아마 이렇다. “가까이서는 희극이고, 멀리서는 비극이다.” 실내로 시선을 들여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노다이즈드 알루미늄과 글래스로 정교하게 가공된 토글 스위치, 물리적 감각을 극도로 절제한 인터페이스, 대형 스크린 중심의 트렌드를 거부한 레이어드 계기 구조는 분명 고급 산업디자인의 정점을 보여준다. 디테일 하나하나는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고, 손끝의 감각까지 설계된 결과물처럼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이것은 확실히 완성도 높은 ‘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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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Courtesy of Ferrari > 

페라리 루체(Luce) 외관 디자인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멀리 두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4도어 기반의 비례 위에 얹힌 유려하지만 과도하게 매끈한 글래스하우스, 긴장감보다 안정감을 우선한 실루엣, 그리고 페라리 특유의 공격적인 에너지 대신 정제된 테크 세단을 떠올리게 하는 전체 인상은 브랜드의 본질과 미묘하게 어긋난다. 야생마처럼 도로를 움켜쥐는 긴장 대신, 잘 정돈된 미래 도시의 이동 수단이 먼저 떠오른다는 점에서 이 디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비극’에 가까워진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자동차 디자인은 제품 디자인과 같은 언어로 설명될 수 있는가. 혹은 둘은 애초에 다른 규칙 위에서 작동하는 세계인가.

 

디터 람스는 생전에 자동차 디자인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며 “나는 자동차를 디자인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관점에서 자동차는 기능을 넘어선 과잉과 과시의 영역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철학은 명확하다. 사물은 단순해야 하며, 본질을 벗어난 장식은 제거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동차, 특히 페라리라는 존재는 그 철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페라리는 이동 수단이 아니라 욕망의 객체다. 성능과 기술을 넘어 소유 자체가 상징이 되는 세계다. 그렇기 때문에 페라리의 디자인은 단순한 효율이나 절제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과 과시, 그리고 역사적 서사의 총합이다. 이 지점에서 조니 아이브의 접근은 근본적인 긴장을 만든다. 애플식 미니멀리즘은 본질을 향해 끊임없이 덜어내는 방식이지만, 페라리는 오히려 역사와 감각, 그리고 공격성을 축적해온 브랜드다. 서로 다른 두 언어가 한 문장 안에 공존하려 할 때 충돌은 필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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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BMW > 

BMW i7 전면부, 전통적 키드니 그릴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디자인

 

 

 

이러한 논란은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디자인이 기존의 익숙함을 깨뜨릴 때마다 대중은 거부 반응을 보였다. BMW의 대형 키드니 그릴 논쟁이 대표적이다.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과장과 불균형의 상징처럼 비판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도로 위의 풍경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사례는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가 어떤 디자인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기준은 정말 미학적 완성도에 기반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반복 노출을 통해 형성된 익숙함의 결과일 뿐일까.

 

페라리 루체를 둘러싼 반응 역시 같은 궤도 위에 있다. 낯선 형태는 쉽게 거부되지만, 그 거부가 반드시 본질적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디자인이라는 행위는 언제나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긴장을 만들어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프롬프트 한 줄로 3D 이미지가 생성되는 시대에도 디자인은 여전히 시장을 움직인다. 기술이 복제 가능성을 극단까지 끌어올렸음에도, 형태를 결정하는 한 번의 선은 여전히 기업의 가치와 감정을 흔든다. 이 사실은 역설적이다. 모든 것이 자동화될수록 오히려 인간의 선택은 더 중요해진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국 형태라는 언어로 드러난다. 디자인은 더 이상 단순한 스타일링이 아니라, 세계를 설득하는 방식이다. 결국 이번 논쟁이 드러내는 핵심은 하나다. 디자이너는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그 형태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특히 페라리처럼 역사와 감정이 응축된 브랜드에서 디자인은 단순한 혁신이 아니라 설득의 과정이다. 기술적 정당성만으로는 부족하고, 미학적 새로움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는 힘이 필요하다.

 

조니 아이브가 마주한 과제도 결국 여기에 있다. 애플이라는 거대한 성공 서사 이후, 그는 다른 산업에서 또 다른 설득의 언어를 구축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이름 자체가 이미 과도한 상징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 논쟁의 결론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디자인은 여전히 세계를 움직이고 있고, 그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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