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는 2억 5천만 곡이 넘는 노래가 쌓여 있다. 2025년 한 해에만 하루 평균 10만 곡이 넘게 새로 올라왔고, 그중 절반 가까이는 한 해 동안 열 번도 재생되지 않은 채 카탈로그 어딘가에 묻혀 있다. 음악을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는 비용이 사실상 0에 수렴하면서, 이제 문제는 ‘어떻게 더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이 무한한 더미에서 무엇을 들을 것인가’로 옮겨갔다. 최근에는 사람이 만든 곡 사이로 AI가 생성한 음악까지 밀려들어, 어떤 경쟁 서비스는 하루 업로드의 3분의 1 이상이 완전한 AI 생성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공급은 무한대로 팽창하는데, 사람의 하루는 여전히 스물네 시간이다.
이 지점에서 흔히 하는 오해가 있다. 기술이 무언가를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게 되면, 그 ‘만드는 능력’이 곧 경쟁력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왜냐면 지금까지는 그런 세상이 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무한히 생성할 수 있게 된 순간, 생성 그 자체의 값어치는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희소해지는 것은 정반대편에 있다. 무엇이 의미 있는지를 가려내는 기준,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이것’을 골라 앞에 내미는 관점, 그 선택에 이유를 붙이는 판단이다. 생성이 흔해질수록, 우리가 설계해야 할 대상은 생성이 아니라 판단으로 옮겨간다.

스포티파이가 지난 십여 년 동안 실제로 해온 일이 정확히 이것이다. 이 회사는 더 많은 곡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경쟁하지 않았다. 대신 그 무한한 더미와 사람 사이에 ‘판단의 층’을 설계했다. 한쪽에는 기계가 있다. 이용자의 취향과 맥락을 읽어 추천을 자동으로 만들어내는 개인화 엔진이 매주 새로운 발견 목록을 뽑아내고, 시간대와 기분에 맞춰 흐름을 바꾸며, AI DJ는 오픈AI 기술로 세션을 즉석에서 구성하고 합성된 목소리로 곡 사이사이를 채운다. 표면에서 벌어지는 방대한 분류와 생성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로 기계가 처리한다.
그런데 스포티파이가 스스로 자신의 강점이라 부르는 것은 그 엔진이 아니다. 전 세계에 흩어진 수백 명의 음악 에디터들, 장르와 문화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들의 안목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AI 생성이 가장 값싸지고 흔해진 바로 그 시점인 2025년에 이 회사가 오히려 사람 에디터의 역할을 더 키우겠다고 선언했다는 데 있다. 이들의 설명은 단순하면서도 핵심을 찌른다. 알고리즘은 ‘무엇을’ 틀지 고를 수 있어도, ‘왜 이것이 지금 중요한가’라는 관점을 갖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AI DJ가 들려주는 곡 설명조차, 뒤에서는 음악 전문가와 문화 전문가와 작가가 함께 앉은 편집실이 사실을 검증하고 맥락을 입혀 만든 결과물이다. 기계는 규모를 감당하고, 사람은 의미를 책임지게 된다.

여기서 진짜 디자인은 화면의 모양이나 재생 버튼의 위치가 아니다. 어디까지를 기계에 맡기고 무엇을 사람에게 남길 것인가, 그 경계를 긋는 일이다. 생성과 분류처럼 표면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실행은 기술이 가져가되, 무엇이 들을 만한가를 가르는 판단과 그 이유를 설명하는 관점은 사람의 자리로 지켜내게 된다. 이 경계를 어디에 긋느냐가 스포티파이가 설계한 구조의 본질이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서비스 전체의 성격을 결정한다. 생성이 무한하고 공짜에 가까워진 세계에서 가장 귀한 자원은, 결국 그 무한을 걸러내는 기준이다. ‘이것이지 저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관점이다. 표면을 다루는 사람은 이미 정해진 결과물을 더 보기 좋게 다듬는다. 그러나 구조를 다루는 사람은 애초에 무엇이 존재하고 사람들 앞에 놓일 자격이 있는지를 결정한다. 기술이 표면의 실행을 통째로 가져가는 시대에 사람에게 남는 자리는, 바로 이 뒤쪽이다.
나는 지금 ValueFormer에서 AI 제품과 서비스를 설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언어와 인지를 연구하던 데서 출발해 경영을 공부했고, 제품을 만들고, 사람마다 다른 맥락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설계해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갈수록 또렷해진 확신이 하나 있다. 기술이 표면의 실행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신할수록, 무엇이 의미 있는지를 판단하는 인간의 지능은 오히려 더 중심에 놓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역할을 Human Intelligence Design이라 부른다. 생성과 실행이 기계의 영역으로 넘어갈수록, 사람은 무엇을 선택하고 왜 선택하는지를 설계해야 한다. 도구가 답을 무한히 만들어낼수록, 그 답들 가운데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가려내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그동안 여러 팀이 기술을 도입하는 자리에서, 나는 비슷한 장면을 반복해서 목격했다. 무언가를 더 많이 더 빨리 만들어내는 기능을 앞다투어 붙이면서, 결과물이 늘어나는 것 자체를 곧 가치가 커지는 일이라 착각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정작 어렵고 그래서 값진 일은 그 반대편에 있었다. 쏟아지는 결과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판단을 설계하는 일이다. 스포티파이가 무한한 카탈로그 위에 사람의 안목을 다시 얹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만들고 있는 서비스에서, 기계에 넘겨도 좋은 실행과 끝까지 사람이 쥐고 있어야 할 판단의 경계는 어디에 그어져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