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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최종우 교수. ffd랩 디렉터

전) 영국 맥라렌 시니어 제품운송 디자이너, 로지텍MX 시리즈 제품 수석 디자이너

 

 

 


 

 

 

미드저니에 ‘포르쉐의 실루엣과 라이카의 차가운 금속 가공미를 더한 오브제’ 프롬프트 몇 줄을 던지면 몇 초 만에 완성도 높은 이미지가 쏟아진다. 볼륨감, 다이얼의 정밀한 눈금, 빈티지 렌즈 특유의 묵직한 물성까지 2026년 현재 버전에서 흠잡을 데가 없다. 방금 컴퓨터 화면에 뜬 가상의 렌더링인데도 어딘가 유서 깊은 스위스 공방에서 수십 년간 다듬어온 아카이브처럼 보인다. 겉모습만 보면 100년 된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구별하기 어렵다. 요즘 나오는 생성형 툴들은 디자이너가 몇 날 며칠 밤을 새워 만지던 CMF의 디테일까지 단숨에 흉내 낸다. 하지만 아무리 그럴듯해도 우리는 그 가상의 사물에 선뜻 많은 비용을 쓰기가 망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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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M3. 우리는 기계 스펙이 아닌 그 뒤에 쌓인 사람의 역사에 값을 치른다.

< 이미지 출처 : 라이카 >

 

 

 

우리가 라이카 M을 집어 들 때 치르는 대가는 기계 스펙에 대한 값이 아니다. 렌즈와 센서 성능만 따지면 최신 일본 미러리스 카메라가 기술적으로 압도하고도 남는다. 어두운 곳에서도 대낮처럼 초점을 잡고, AI가 피사체의 눈동자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며, 1초에 수십 장을 연사한다. 반면 라이카는 손가락으로 포커스 링을 돌려 뷰파인더 속 갈라진 상을 직접 맞춰야 간신히 셔터가 끊긴다. 손떨림 보정도 없고 연사도 느리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철저하게 비효율적이고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다. 실용성만 따지는 사람 눈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비싼 장난감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라이카의 붉은 로고에 반응한다. 1914년 오스카 바르낙이 손에 쥐기 편한 작은 규격을 찾기 위해 깎아낸 프로토타입의 기억,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파리 골목에서 숨을 죽이며 프레임을 채우던 태도 등 그 시간의 무게가 제품에 고스란히 얹혀있기 때문이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볼 때 느껴지는 특유의 긴장감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사진가들이 세상을 응시하던 태도를 그대로 경험하게 만든다. 버튼 하나로 모든 걸 보정해 주는 최신 전자기기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인간적인 연결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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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카레라 RS 2.7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911 스포츠 클래식의 고정식 덕테일

< 이미지 출처 : 포르쉐 >

 

 

 

포르쉐 911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엔지니어링의 정석으로 보면 무거운 엔진을 리어 액슬 뒤로 밀어 넣은 RR 레이아웃은 시작부터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세팅이다. 코너를 돌아 나갈 때 뒤쪽이 밖으로 털려 나가기 쉬워 다루기 까다롭고 위험하다. 데이터와 공기역학, 주행 안정성을 최적화하는 현대 알고리즘에 디자인을 통째로 넘겼다면 60년 전 진작에 엔진을 중앙으로 옮기거나 차체 라인을 완전히 갈아엎었을 것이다. 컴퓨터의 계산식 안에서 911의 구조는 개선해야 할 실패작에 불과했다. 포르쉐는 그 결함을 삭제하지 않았다. 비좁은 뒷좌석과 개구리를 닮은 둥근 루프 라인, 그리고 뒤뚱거리기 쉬운 리어 엔진 구조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 불완전함을 억누르고 통제하기 위해 수십 년간 서스펜션을 비틀고, 섀시를 다듬고, 타이어 폭을 넓히며 물리학과 싸웠다. 수많은 레이스에서 끝내 타협하지 않았던 그 집착이 지금의 911을 완성했다. 오늘날 911의 스티어링 휠을 쥘 때 체감하는 단단함은 잘 만들어진 운송수단을 넘어 60년 넘게 결함과 씨름하며 버텨낸 사람들의 태도 그 자체다.

 

에르메스의 가죽 제품이나 롤렉스의 서브마리너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시장 조사를 거쳐 가장 많이 팔릴 만한 평균치를 뽑아낸 결과물이 아니다. 누군가의 지독한 고집, 수많은 시행착오, 그리고 망할 뻔했던 위기를 넘기며 지켜낸 철학이 세월을 타며 다듬어진 덩어리다. 결국 사람들이 진짜 프리미엄을 인정하는 지점은 매끄럽게 뽑아낸 조형의 껍데기가 아니다. 그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실패를 감당하고 버텨낸 ‘시간의 질량’과 ‘사람의 선택’이다.

 

 

 

여기서 질문이 남는다. 과연 AI가 이 영역까지 채워낼 수 있을까?

 

알고리즘의 엔진은 명확하다. 웹에 축적된 무수한 레퍼런스를 긁어모아 가장 실패 확률이 적은 평균값을 계산하는 일이다. AI는 라이카와 포르쉐, 롤렉스의 서사를 학습해 단 몇 초 만에 가상의 브랜드 스토리나 장인정신 시나리오를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다. 심지어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장인이 손으로 가죽을 꿰매는 영상까지 그럴듯하게 합성해 낸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뱉어낸 그럴듯한 이야기는 결국 과거 데이터를 조합해 만든 가짜다. 브랜드의 진짜 역사는 손해 볼 걸 알면서도 온몸으로 부딪힐 때 만들어진다. 유행을 거스르고 시장에서 외면당해 망할 뻔하면서도 ‘우리는 이 디자인과 방식을 절대 안 바꾼다’며 끝까지 버텨낸 고집이 결국 사람들을 설득하는 이야기가 된다. 반면 실패는 쏙 빼고 잘 팔린 것만 섞어놓은 AI의 결과물에는 스스로 깨지고 부딪히며 생긴 진짜 상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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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화된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장인의 손길. 헤리티지는 계산된 평균값이 아니라, 비효율을 버텨낸 끈기에서 태어난다.

< 이미지 출처 : Roberto Giovannini >

 

 

 

아무리 그래픽과 텍스트가 정교해져도 지어낸 역사에 진짜 신뢰를 보낼 사람은 없다. 자연이 겪어낸 시간의 결처럼, 브랜드의 헤리티지도 온갖 풍파를 겪으며 버텨낸 흔적이 굳어 단단한 나이테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래서 시대가 변해도 낡지 않는 ‘타임리스 디자인’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으로 남는다. 타임리스 디자인은 수치상 가장 효율적인 정답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이 최적화를 이유로 빠른 타협을 요구할 때, 겉보기엔 미련해 보일지라도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어떤 기준과 철학이 남긴 결과물이다. 기계는 가장 빠른 지름길과 평균적인 조합을 찾아줄 뿐 왜 굳이 그 손해 보는 비효율을 감수해야 하는지 그 비합리적인 결정을 스스로 내리지 못한다. ‘이번 시즌에는 이 기능이 유행이지만 우리는 넣지 않는다’, ‘원가가 두 배로 들더라도 이 마감 방식을 고수한다’ 같은 결단은 데이터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 리스크를 짊어지고 시간을 견디는 것은 오직 오너십을 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기계가 단 몇 초 만에 100년 된 브랜드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복제하는 시대다. 이제 조형을 감각적으로 뽑아내는 기술만으로는 누구의 마음도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디자인의 기준이 껍데기에서 그 뒤에 버티고 선 태도와 시간으로 옮겨가는 지금, 과연 알고리즘이 짜깁기한 가짜 스토리가 사람들의 진짜 열광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여전히 사람이 직접 깨지고 부딪히며 새겨 넣은 그 거친 나이테에만 지갑을 열게 될까?

  • Founder: Doyou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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