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 천국에 간 디자이너 저자,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심사위원
경험 經驗.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덕목이자 스팩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궁극적으로 경험을 위한 행위를 한다. 힙 플레이스를 찾아가고, 뷰 좋은 카페를, 근사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며, 주목받는 신제품을 구매한다. 이것은 비단 개인의 이야기뿐이 아니다. 기업들 역시 경험 마케팅 Experience marketing 에 총력을 기울인다. 온라인 시장은 물론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와 다양한 분야의 콜라보 등을 통해 고객들의 경험을 극대화 시킨다. 소파에 앉아서 보는 유튜브나 SNS속에서의 간접 경험과는 비교할 수 없다. 직접적인 것이 더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경험을 경험하다
특히 디자이너들은 경험의 최전선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지론이다. 패션, 자동차, 전자제품, 건축, 광고 등 어느 디자인 분야를 막론하더라도 경험 없이 ‘좋은’ 디자인은 불가능하다. 직접 사용해보고, 방문하고, 인터뷰하는 경험은 디자인 작업에 있어서 훌륭한 자양분이 됨은 자명한 사실이다. 고로 디자이너는 경험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필자는 지금까지 20여년 간 산업 디자이너로 일해 오면서 한국, 일본, 스웨덴, 덴마크 기업을 거쳐왔다. 덕분에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일하며 살아보는 특별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한두줄의 문장으로 함축되기에는 수 많은 서사가 쌓여 있을 터. 지나고 보니 ‘경험’이라는 것은 디자이너로서 성장하기에 훌륭한 자양분임이 틀림없다고 망설임 없이, 명료하게 전하고 싶다. 많은 지인과 후배들이 해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에 대한 자문을 구해온다.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디자이너로 활약하는 것에 대한 동경과 해외 여러 도시에 살아보는 것에 대한 막연한 환상도 더 한다. 대부분은 그런 호기심이 출발점이다.
물론 그 호기심의 대가는 그리 녹녹치 않다. 퇴근길 유럽의 이국적인 풍경도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평범한 일상이 되고,언어의 장벽은 회의를 위해 남들보다 두 세배 더 준비 해야 하는 고단함을 필요로 하며,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의 단절 등 여러가지 이면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호기심과 열정을 응원해왔다. 바로 그 익숙치 않은 환경에 나를 옮겨 놓은 뒤 얻게 되는 경험의 힘은 그 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환경이 불러오는 시너지는 익숙한 환경에서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 결과는 쉽게 예측 할 수 없고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어 때때로 보상과 성취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북유럽에서 디자이너로 십 수년을 지나온 필자 역시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성장했음을, 다국적 동료들과 일하면서 마주하는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 존중과 배려심을 배웠다고 믿는다.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순간의 그 두려움과 긴장감은 아직도 생생하지만 덕분에 그 울타리 밖의 세계가 얼마나 넓고 가치 있는지 배웠던 것 같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놓아두었기 때문에 그 만큼의 성장으로 보상 받았음을 깨닫는다.

< 이미지 출처 : www.sangwoocho.com >
경험의 지속화
디자이너는 마라토너와도 같다. 결코 짧지 않은 트랙을 경험과 역량을 축적하며 달리는 것. 개개인의 포트폴리오에 담긴 경험의 자산들은 지금까지의 궤적을 보여주는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길까지 예측하게 해준다. 당연히 그 궤적은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다. 깎아지를 듯한 암벽을 오르는 등반가의 루트가 모두 다르듯이.
주목할 것은 - 바로 ‘경험의 지속화 continuity of the experience다. 멈추지 않고 그 궤적 軌跡 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디자이너로서 나아가는 길이 한국 혹은 해외 일 수도, 대기업 또는 스타트업 일 수도 있고, 창업 일 수도 있다. 내가 어디에 발을 내딛든지 그 지점은 분명 (당장은 안보일지라도) 나의 궤적으로 남고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연결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렇게 이어져온 경험의 축적이야 말로 결국 진짜 나만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그렇게 모인 경험은 개인의 브랜드화 personal Branding 를 이루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이제는 스스로를 어떤 브랜드로 설계해 나아갈지 고민해봐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종영한 시리즈 ‘50대 김부장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가 큰 이유다. 평생을 다닌 회사를 퇴사 후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며 결국엔 개인 브랜딩을 고민해야만 하는 모습이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발견과 연결
지금 살아가는 도시에서, 근무하는 회사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서 스스로 어떤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끊임없는 발견과 연결 discovery & connectivity에 대한 스위치를 항상 켜 놓아야 한다. 지금까지 당신이 지나온 경험의 궤적과, 다가올 미래의 경험이 결국 당신만의 스토리텔링을 완성시켜 줄 것이기에. 지금 당신의 호기심을 응원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