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 천국에 간 디자이너 저자,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심사위원
최점단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AI 기술, 똑똑한 휴머노이드 로봇은 이제 동네 마트에서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첨단 FSD, Full Self-Driving 기술 덕분에 운전자는 핸들링 대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생각보다 너무 빠르다. 현재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우리는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신기술과 제품들을 쫓아간다. 이렇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리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지나칠까 두렵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이제는 스토리텔러 Story teller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기반이 될 때 비로소 기술과 혁신은 빛을 발하는 법. 반대로 이야기가 없는 기술은 잠시 떠올랐다 공허하게 가라앉아 버리기 마련이다. 이처럼 중요한 스토리텔링, 과연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여기 흥미로운 예시가 있다. 바로 북유럽 덴마크 ‘몬스트롬 Monstrum' (www.monstrum.dk)이다. 놀이터 playground를 디자인하는 회사다. 놀이터를 디자인한다? 아마도 누군가는 단순히 그네와 시소 등의 놀이기구를 예쁘게 만드는 것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음 포트폴리오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놀이터란 어떤 공간인가? 아마 이렇게 상상할지 모르겠다. 미끄럼틀, 그네, 시소가 있고 바닥은 푹신한 우레탄 매트가 깔려 있는. 그곳에서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고, 술래잡기를 하고, 소꿉놀이를 한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친근한 공간인 것이다.


몬스트롬은 이토록 익숙한 공간에 스토리를 불어넣는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진 이 공간에 그들은 우주선과 해적선을 띄웠고, 독수리와 곰을 풀어놓았다. 상상력 풍부한 그 공간에서 아이들은 뛰어놀며 그들만의 스토리를 더 해 나간다. 근사한 우주인이 되기도, 해적 선장도, 공주도, 히어로든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살던 코펜하겐에도 그들이 디자인한 놀이터가 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대체로 부모들은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지만) 그 놀이터에서 만큼은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어울려 놀던 장면이다. 어른들에게 조차 추억을 소환하고 동심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는 진정한 감성 디자인 emotional design의 좋은 사례였던 것 같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빅데이터의 활용이다. 지극히 아날로그 방식일 것 같은 그들의 작업이 철저한 데이터에 기반한 영역이라는 것. 설치 지역의 날씨, 환경, 문화 등을 정밀하게 연구해 설계에 반영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전 세계 여러 도시는 물론, 야외 혹은 실내 쇼핑몰, 공항 등의 다양한 공간을 배려한 창의적인 놀이터가 지금도 탄생하고 있다. 바로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을 위해서는 정교하고 밀도 높은 데이터 활용이 필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분명 여기에는 최점단의 시대를 숨 가쁘게 쫓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기술인지, 무엇을 위한 서비스인지, 혁신을 위해 어떤 것을 놓고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영리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가치 있는 스토리텔링 valuable storytelling이 기술과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그것에 의미 부여가 되고 비로소 인류를 위한 디자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제 디자이너는 스토리텔러 story teller가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