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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어 김주황 대표 (브만남)

<K-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

 

 

 


 

 

 

제주도 여행에서 우연히 방문했던 ‘오설록 티 뮤지엄’. 그곳에서 오설록이라는 브랜드의 깊은 역사에 대해 발견하게 되었다. 2024년과 2025년을 관통하는 글로벌 트렌드의 정점에는 ‘말차(Matcha)’가 있었는데, 그 중심에서 한국의 미학을 전파하는 브랜드가 바로 오설록이다. 최근 오설록은 연 매출 1,000억 원 돌파를 눈앞에 두며 아모레퍼시픽그룹 내 핵심 자회사로 부상했다. 2023년 매출액 937억 원, 영업이익 92억 원을 달성하며 전년 대비 각각 11.7%, 67.3%라는 경이로운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물론, 2024년 3분기에도 매출 성장세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이런 성취는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최근 서구권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클린 걸(Clean Girl)’ 라이프스타일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소비를 추구하는데, 이들이 고카페인 커피 대신 심신을 안정시키는 말차를 선택하면서 전 세계적인 수요가 폭발했다. 오설록은 이 흐름을 포착해 말차를 단순한 전통차가 아닌 ‘역동적인 식문화 콘텐츠’로 재정의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선보인 ‘말차 스테이션’이나 제주 티 뮤지엄의 ‘말차 누들바’는 방문객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일 정도로 글로벌한 성지가 되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는 반 세기에 가까운 인고의 시간과, 그 시간을 온전히 담아낸 제주라는 거대한 본진이 자리 잡고 있다.

 

오설록 브랜드 경험의 정점은 단연 제주 서광차밭 끝자락에 위치한 ‘오설록 티뮤지엄’이다. 2001년 국내 최초의 차 박물관으로 개관한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오설록이라는 브랜드의 철학과 역사가 집결된 ‘메카’와 같다. 세계적인 디자인 건축 전문 사이트 ‘디자인붐’이 선정한 세계 10대 미술관에 이름을 올릴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이곳에는 연간 2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발걸음을 한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덖음 차의 제조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제주 흙으로 만든 옹기 다관에 차를 우리며 오설록이 지향하는 ‘티 라이프스타일’을 오감으로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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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설록 티뮤지엄 >

 

 

 

이 브랜드의 시작, 과연 어땠을까?

 

오설록의 역사는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모레퍼시픽 창업주 고(故) 장원 서성환 선대회장이 제주도 서귀포시 도순동의 거친 돌밭을 사들이면서 비극적이면서도 위대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당시 제주도민들조차 '멀왓'이라 부르며 외면하던 땅이었다. 자갈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암반이 깔린 황무지였기에 누구도 그곳에서 농사를 지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화장품으로 성공한 기업가가 왜 돈도 안 되는 돌밭을 사서 고생하느냐며 비웃었지만, 서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어느 나라를 가도 그 나라만의 차 문화가 있는데 우리에게는 없다"는 안타까움,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가치가 없다"는 집념이 그를 움직였다.

 

개간 작업은 말 그대로 '광기'에 가까웠다. 도로도, 수도도 없던 땅에서 서 회장은 직접 장화를 신고 돌을 골라냈다. 한 달에 두세 번씩 직접 제주를 방문해 현장 직원들과 빵과 막걸리로 끼니를 때우며 밭을 일궜다. 1980년 '설록차'라는 브랜드로 첫 제품을 출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한국은 이미 인스턴트 커피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고, 차는 고리타분한 구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놀라운 사실은 오설록이 2020년 본격적인 흑자 전환을 하기 전까지 무려 40년 넘게 적자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1년에 수십억 원의 손해를 보면서도 아모레퍼시픽은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차나무는 묘목을 심어 수확하기까지 수년이 걸리고 기후에 민감해 유지비가 막대했지만, 그들은 이를 단순한 사업이 아닌 '한국 차 문화 복원'이라는 문화적 사명으로 여겼다. 45년 전 제주 돌밭에 뿌려진 차 씨앗이 오늘날의 거대한 숲이 되기까지, 오설록은 '시간을 이기는 브랜딩'이 무엇인지 몸소 증명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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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설록 서성환회장 >

 

 

 

오설록의 핵심 경쟁력은 전 세계 티 브랜드 중 드물게 재배부터 가공, 판매까지 전 과정을 직접 관리하는 ‘티 메이커(Tea Maker)’라는 정체성에 있다. 글로벌 시장의 강자인 TWG나 포트넘 앤 메이슨이 찻잎을 사와 섞어 파는 ‘티 딜러(Tea Dealer)’인 것과 대조적이다. 오설록은 제주도에 약 100만 평 규모의 유기농 차밭을 직접 운영하며 ‘Farm to Cup’ 시스템을 구축했다. 서광, 돌송이, 한남 등 각기 다른 기후를 가진 세 곳의 다원에서 생산되는 차는 저마다의 독특한 풍미를 지닌다. 여기에 한국 전통 장류에서 유래한 고초균으로 찻잎을 발효하고 제주 삼나무통에서 숙성하는 방식은 오설록만이 낼 수 있는 깊은 향미를 완성했다.

 

브랜드의 품격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결단도 결정적이었다. 2014년, 오설록은 매출의 80%를 차지하던 대형마트 유통을 전격 중단했다. 대신 그들은 공간에 집중했다. 매장 수를 늘리는 대신, 북촌 티하우스처럼 각 매장에 고유한 스토리와 콘텐츠를 입혔다. 1960년대 양옥을 리모델링한 북촌점은 층마다 깊이를 달리해, 3층 ‘바설록’에서 비알코올 티 칵테일을 파는 등 고객이 머물러야 할 이유를 명확히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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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설록 티백 >

 

 

 

이러한 내공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이커머스 플랫폼인 아마존(Amazon) 진출 시, 그들은 미국 소비자들의 리뷰를 분석해 ‘티 스프레드’와 향이 강한 ‘블렌디드 티’를 히어로 제품으로 밀어붙였다. 한국식 유통기한 표기법이 현지 소비자에게 혼란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하자마자 전용 패키지를 개발하는 등 세밀한 로컬라이징에도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오설록은 이제 아마존 차 카테고리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K-컬처의 외연을 식문화로 확장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헬로키티 50주년 콜라보레이션 에디션을 출시하며 대중적인 팬덤까지 포섭했다. 네이버 쇼핑 라이브에서 하루 25만 명이 시청하고 3분 만에 전량 매진을 기록한 성과는 오설록이 이제 강력한 ‘문화적 영향력’을 지닌 브랜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다가오는 2026년 말의 해를 맞이해 준비하는 한복 가방 프로모션 등 오설록의 행보는 늘 전통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일관된 맥락을 유지한다.

 

결국 오설록의 성공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진정한 프리미엄은 유행을 쫓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황무지에 45년간 물을 주고 기다린 ‘본질의 힘’에서 나온다. 제주 티뮤지엄의 티스톤 셀러에서 차가 익어가는 소리와, 전 세계 아마존 장바구니에 담기는 말차의 숫자는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 열매다. 45년 전 제주 앞바다의 안개 속에서 시작된 서성환 회장의 꿈은 이제 전 세계인의 찻잔 속에서 연두색 기적으로 피어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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