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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혁 | ASIA DESIGN PRIZE 미디어 편집장

로컬브랜딩 전략 저자, 오컴스브랜딩 대표

 

 

 


 

 

 

디자인은 오랫동안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형태와 기능, 비례와 색의 균형은 디자이너의 직관이나 평론가의 언어로 해석되어 왔고, 그래서 디자인은 늘 마지막까지 ‘감각의 언어’로 남아 있었다. 좋은 작업을 보면 누구나 “좋다”는 느낌은 받지만, 왜 좋은지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이번 ‘2026–2027 아시아 디자인 트렌드 리포트’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디자인을 감성의 영역이 아니라 데이터의 구조로 읽어보겠다는 시도다. 다시 말해, 디자인이 시대를 어떻게 반영하고 움직이고 있는지를 데이터의 흐름 속에서 추적해보려는 작업이다. 이번 리포트는 전 세계 22개 지역에서 출품된 1,515개 작품 가운데 329개의 수상작과 11,539장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다. 작품 설명과 심사평, 이미지에서 추출된 단어는 약 142,290개에 이르며, 이 가운데 정제된 고유 단어 6,053개와 형용사 512개가 핵심 분석 데이터로 사용되었다. 여기에 색채 빈도 분석까지 결합해 ‘고바야시 색채 이미지 스케일(Kobayashi Color Image Scale)’에 매핑함으로써, 각 작품이 풍기는 미묘한 분위기와 정서의 방향까지 함께 읽어냈다. 단순히 유행하는 스타일을 정리하는 수준이 아니라, 동시대 아시아 디자인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텍스트와 이미지, 감정의 좌표를 통해 교차 분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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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데이터의 규모보다 그 안에 담긴 변화다. 2025년과 비교했을 때 작품 한 점당 설명 밀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디자이너들은 이제 자신의 작업을 단순히 형태와 기능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맥락과 감정, 태도와 윤리까지 함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디자인은 점점 더 ‘말이 많은 분야’가 되어가고 있고, 142,290단어는 단순한 텍스트의 집합이 아니라 동시대 디자인이 고민하는 사고의 구조에 가깝다. 전체 키워드 분석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예상과 달리 form이 아니라 white(911)였다. 그 뒤를 text(758), space(756), room(735), modern(633), wall(575)이 이었다. 이는 2026년 아시아 디자인이 흰 배경과 절제된 구조를 공통의 기반으로 삼으면서도, 그 위에 빛과 재료, 분위기와 감정을 더해 차이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디자인의 차이는 무엇을 더했는가보다, 어떤 분위기를 머물게 하는가에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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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차이는 더욱 흥미롭다. 한국은 white(559)와 text(540)가 거의 같은 수준으로 나타나며, 브랜드 타이포그래피가 공간 안으로 스며드는 특징을 보여준다. 중국은 room(122), white(119), space(114)가 고르게 분포하며 대형 실내 공간 중심의 흐름을 드러낸다. 일본에서는 wooden(81)이 상위권에 진입하며 재료와 풍경 중심의 감수성이 강해졌고, 홍콩은 room(100)이 space(85)를 앞서며 제한된 공간 안의 정교한 경험 설계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같은 아시아 안에서도 각 지역은 서로 다른 디자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 트렌드 리포트의 의미는 바로 여기 있다. 그동안 디자인 트렌드 분석은 큐레이터나 에디터 개인의 감각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이번 리포트는 11,539장의 이미지와 142,290개의 단어를 통해 반복되는 패턴을 읽어낸다. 물론 데이터 역시 완전히 중립적일 수는 없다. 어떤 작품이 출품되고 수상되었는가 자체가 이미 하나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우리는 디자인을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축적된 패턴과 흐름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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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이번 리포트가 ‘Country’ 대신 ‘Region’라는 개념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국가 구분보다 문화적·정서적 맥락을 더 중요하게 보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홍콩은 같은 아시아 안에서도 전혀 다른 감각과 어휘를 보여준다. 데이터 기반의 분석은 바로 이런 차이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준다. 이번 리포트는 단순히 유행을 정리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디자인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추적하는 작업에 가깝다. 2025년 리포트가 Senterface, Neoditional, Identeling, Livingformal이라는 네 개의 흐름을 제시했다면, 2026년에는 그것이 LUMINSCAPE, BIOFORMA, BRANDLIVING, CIVITONE이라는 새로운 코드로 진화했다. 빛은 재료가 되고, 자연은 살아 움직이는 구조가 되며, 브랜드는 거주 가능한 경험으로 확장되고, 공공 디자인은 더 따뜻한 감정의 언어를 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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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텍스트 분석과 색채 분석을 함께 결합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고바야시 색채 이미지 스케일 위에서 한국은 polished와 peaceful, 중국은 bold와 luxurious, 일본은 calm과 genuine의 좌표에 가까운 흐름을 보였다. 이는 디자인의 분위기와 감정을 데이터 위에 시각화한 하나의 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번 리포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디자인은 이제 데이터로 읽을 수 있는 분야가 되었다는 것. 둘째, 그 데이터가 보여주는 방향은 점점 더 분위기와 감정, 돌봄 같은 비물질적 가치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디자인은 더 이상 단순히 사물의 외형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이제는 인간이 머무는 환경과 감정을 설계하는 일로 확장되고 있다. 이번 시리즈는 그 142,290개의 단어에서 출발한다. 다음 회부터는 네 개의 핵심 트렌드 코드와 함께 한국·중국·일본·대만의 디자인 언어를 본격적으로 해독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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