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왼쪽: 1985년, 디자인 여정을 시작하던 수자타 케샤반 / 오른쪽: 2026년의 수자타 케샤반 >
Sujata Keshavan
“수자타 케샤반은 인도를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인 선구자 중 한 명으로, 그래픽 디자인, 브랜딩, 텍스타일, 문화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40년이 넘는 커리어를 이어왔다. 그는 아메다바드 국립디자인연구소에서 수학한 뒤 예일대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현대 디자인 담론이 주로 서구 중심으로 형성되던 시기에 자신의 디자인 실천을 구축했다. 단순히 글로벌 기준을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인도의 사회적·문화적·산업적 현실 속에서 재해석해 왔다. 케샤반에게 디자인은 미학을 넘어 시민적이고 문화적인 영역으로 확장되는 개념이다. 그는 디자인을 제도와 산업, 그리고 대중의 상상력을 형성할 수 있는 힘으로 바라본다.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교육과 철학, 아시아 디자인의 정체성, 젠더와 리더십, 그리고 더 강한 범아시아 디자인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구조적 노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여정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아시아 디자인이 어떻게 스스로의 언어로 목소리를 만들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서사이기도 하다.”
먼저 디자이너이자 창립자로서의 여정을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래픽과 텍스타일 디자인, 브랜딩, 문화 리더십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어떤 핵심 가치와 철학이 당신의 길을 이끌어 왔습니까?
저는 매우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교육을 받은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아메다바드에 위치한 국립디자인연구소에서 학부 과정 6년을 보냈고, 이후 예일대학교에서 2년간 대학원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이 두 기관은 디자이너로서의 제 사고방식과 커리어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인도와 미국에서 각각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만들어 온 훌륭한 스승들에게 배울 수 있었던 점도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나라의 교육 방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인도의 NID에서 받은 교육은 매우 폭넓고 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디자인이 가장 확장된 의미에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사회가 지닌 복잡성과 디자인이 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관찰의 중요성, 지역적 맥락과 전통, 문화에 대한 민감한 이해, 그리고 디자인 분야 간 사고의 연결성 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반면 예일에서는 폴 랜드, 브래드버리 톰슨, 아르민 호프만, 후쿠다 시게오, 볼프강 바인가르트와 같은 뛰어난 교수들과 함께 공부했습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철학과 디자인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때로는 서로 상반된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학생인 우리는 그 모든 관점을 듣고, 그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공감되는 부분을 선택해 스스로의 디자인 철학을 구축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기술을 연마하는 것의 중요성과 스스로에게 높은 기준을 설정하는 태도, 그리고 자신의 작업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영향에 대한 경험은 제 배움을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여러 관점을 스스로 걸러내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이후 제 작업 방향을 규정하는 나만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디자인은 매우 강력한 도구이며, 제대로 활용될 경우 비즈니스는 물론 사회 영역에서도 결과를 전략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둘째, 디자인은 과학처럼 매우 폭넓은 분야이며 다양한 하위 영역을 포함합니다. 어떤 분야에서 작업하든 공통된 사고의 기반이 존재하며, 각 영역의 특성을 배우려는 의지가 있다면 분야를 넘나드는 작업이 가능합니다.
셋째, 디자인은 보편적인 인간의 행동과 욕구를 고려해야 하는 동시에, 문화적 맥락에 맞게 구체화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청결’에 대한 욕구는 보편적이지만, 무엇을 깨끗하다고 느끼는지는 인도와 일본이 다릅니다. ‘지위’에 대한 욕구 역시 보편적이지만, 그것이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되는지, 혹은 화려하게 드러나는지는 문화마다 다릅니다. 결국 진정으로 효과적인 디자인을 위해서는 깊이 있고 존중하는 지역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커리어는 디자인 담론이 주로 서구 중심의 서사에 의해 형성되던 시기에 시작되었습니다. 아시아의 선구적인 디자이너로서, 글로벌 디자인 기준에 내재된 편향을 어떻게 넘어서며 인도와 아시아 디자인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까?
전 세계 디자인 담론이 서구 중심의 서사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공예’에서 ‘디자인’으로의 전환이 산업화와 함께 유럽에서 먼저 일어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산업화 이전에는 장인이 곧 디자이너이자 제작자였습니다. 그러나 대량생산 체제로 전환되면서, 기계가 생산할 제품의 계획을 설계하는 중간자로서 ‘디자이너’라는 역할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할을 맡은 이들은 교육과 저술을 통해 디자인을 하나의 이론적 학문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바우하우스는 디자인을 독립된 전문 직업으로 정립하고, 길드 중심의 체계를 넘어선 공식 교육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디자인 담론은 이렇게 유럽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제가 인도로 돌아와 디자인 실무를 시작했을 때,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B2B 디자인은 명확성, 구조, 시스템, 그리드를 중심으로 하는 현대적이고 글로벌한 미감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제가 충분히 훈련받은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작업을 진행하면서 또 다른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소비재, 예술, 문화처럼 최종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디자인은 시각적 중립성을 거부하고, 오히려 경험적 풍부함, 분위기, 상징성, 그리고 지역적 서사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디자인이 항상 특정한 맥락과 특정한 대상에 맞춰 만들어진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그 대상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예일에서 배운 유럽식 기준처럼 ‘좋은 디자인’과 ‘나쁜 디자인’이 항상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적합성과 맥락이며, 내가 누구를 위해 디자인하고 있는지를 잊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제가 매우 서로 다른 대상과 환경을 위해 디자인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았을 때, 오늘날의 명성과 영향력을 얻기까지 가장 극복하기 어려웠던 장벽은 무엇이었습니까? 문화적, 산업적, 혹은 이념적 측면에서 어떤 도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아시아 디자인의 정체성을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된 전환점이 있었다면 무엇이었습니까?
제가 디자인 실무를 시작했을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인도에서 ‘디자인’이라는 분야 자체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제대로 이해되지도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광고 산업은 이미 잘 발달해 있었지만, 디자인 사무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명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잠재적인 클라이언트들에게 제가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조직이나 비즈니스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습니다. 또한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 역시 처음부터 만들어야 했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가치를 어떻게 인정받게 할 것인지, 그것을 지적 재산으로서 어떻게 이해하게 할 것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비용을 어떻게 지불하도록 할 것인지까지 모두 새롭게 정의해야 했습니다. 당시 인도에서는 이 모든 것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고, 저는 디자인이라는 분야 자체를 알리고 설득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초기에는 또 하나의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고품질의 현대 디자인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산업적 생태계가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공예 분야는 잘 발달해 있었고, 손으로 만든 물건들은 매우 아름다웠지만,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 시스템은 매우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1980년대 후반 당시 인도 경제는 외부와 거의 단절되어 있었고, 인쇄소는 낡은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종이 종류도 제한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일관된 품질 기준이라는 개념 자체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디자인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환경을 개선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했습니다. 인쇄소, 사인 제작자, 금형 제작자 등과 긴밀히 협업하면서 원하는 수준의 결과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조율했습니다. 때로는 밤늦게까지 인쇄소에 남아 판을 다시 만들고, 롤러에 잉크를 다시 바르게 하면서 결과물을 개선하려고 했습니다. 아마 그들은 저를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느꼈을 것이고, 저 역시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인도가 경제를 개방하고 세계와 연결되면서 상황은 점차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과 일본에서 더 좋은 기계를 들여올 수 있게 되었고, 다양한 종이와 필름, 인쇄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5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고, 디자이너들은 이제 본연의 역할인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산업 역시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1989년에 Ray+Keshavan을 설립했습니다. 이는 인도에서 가장 초기의 디자인 회사 중 하나였으며, 국제적인 기준으로 작업을 수행한 첫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이루어진 인도 경제의 자유화는 저와 제 실무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 변화는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수세기 만에 인도 기업들이 자국의 상품과 서비스를 해외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다국적 기업들도 인도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저는 양쪽 모두를 연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국제적으로 교육을 받은 디자이너로서 인도 기업들이 세계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왔고, 동시에 인도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로서 다국적 기업들이 이 크고 복잡한 시장을 이해하고 현지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아시아는 매우 역동적이지만 디자인 산업 측면에서는 여전히 분절되어 있습니다. 유럽 일부 지역에서 보이는 것처럼 더 강한 범지역 디자인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어떤 구조적 혹은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아시아의 디자인은 대체로 국가 단위, 나아가 민족적 경계 안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각국이 자국을 넘어 외부를 바라보려는 시도나 논의 자체가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에 대한 담론 역시 국가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범지역적 관점에서 상상되거나 확장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유럽의 디자인 생태계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구축된 결과입니다. 장기적인 문화적 비전을 바탕으로 디자인에 높은 위상을 부여했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과 같은 국가들은 디자인을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의 일부로 인식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국가 간 교류, 공동 전시, 연구 프로젝트를 활발히 추진하고 범유럽 차원의 지원도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유럽의 디자이너들은 이론과 비평을 발전시켰고, 디자인은 단순한 산업 지원 기능을 넘어 하나의 지적 분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즉, 디자인은 문화 자본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에 비해 아시아에서는 국가 간 교류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저는 범아시아 디자인 협의체나, 디자인 담론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국가 간 레지던시 프로그램, 공동 협업,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도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년에 걸친 지속적인 투자와 구조적 약속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아시아 각국의 디자인 학교 간 협력을 통해 학생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제휴된 학교에서 한 학기를 보내는 방식도 가능할 것입니다. 보다 현실적인 출발점으로는 서로 다른 아시아 국가의 학생들이 온라인 환경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국가 간 교류가 디자인보다 미술 분야에서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장기간에 걸친 일관된 의지와 노력, 그리고 공공과 민간의 지속적인 투자입니다. 무엇보다도 디자인은 산업의 보조적 기능이 아니라 문화적 인프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디자인을 단순한 미학이 아니라 시민적이고 문화적인 힘으로 바라봐 왔습니다. 특히 인도와 동남아시아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디자이너는 대중의 상상력을 형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남아시아처럼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매우 빠르게 일어나는 지역에서는 디자인이 단순한 미학을 넘어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도는 수십 년간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1인당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의 기능적 측면을 개선해야 할 여지가 여전히 매우 큽니다. 선진국에서는 ‘잘 작동하는 것’이 이미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며, 이제는 이른바 ‘포스트 기능’ 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도를 비롯해 방글라데시, 네팔,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지역에서는 기능과 미를 동시에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히 큽니다. 과부하 상태에 놓인 도시의 낙후된 공공 인프라만 보더라도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과 동남아시아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디자이너는 사람들이 급격한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도시는 빠르게 확장되고, 새로운 기술은 일상을 변화시키며, 사회적 규범 역시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을 공간, 제품,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사람들이 실제로 체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하는 데 디자인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전통과 현재의 관계를 어떻게 다루느냐입니다. 아시아에서는 공예, 재료, 제작 방식 등을 통해 문화적 기억이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예를 과거에 고정시키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의 맥락에서 의미 있게 재해석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는 장인과 현대 사회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디자이너는 분명한 시민적 책임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은 사람들의 행동과 가치에 영향을 미칩니다.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선택이 지속가능성, 포용성, 접근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중요한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디자이너는 영향력을 가진 매개자로서 중립적인 위치에 머물 수 없으며,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와 사용하는 재료, 그리고 자신의 작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디자인은 대중의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의미 있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을 통해 리더십과 회복력에 대해 어떤 배움을 얻으셨나요? 또한 스스로의 전문성과 영향력을 어떻게 구축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리더를 꿈꾸는 젊은 여성 디자이너와 비서구권 디자이너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디자인 실무를 시작했을 당시, 인도의 기업 환경에는 여성 자체가 매우 드물었습니다. 25년이 넘는 커리어 동안 수백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기억에 남는 여성 클라이언트는 단 세 명뿐이었습니다. 인도의 비즈니스 세계는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구조입니다. 제 딸이 어렸을 때 “엄마는 항상 남자들 회의에 가는 것 같아”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표현이 상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실을 인식했기 때문에 저는 Ray+Keshavan에서 의도적으로 여성 디자이너들을 많이 채용하려고 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당시 인도에서는 디자인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했는데, 여기에 더해 비즈니스 세계에서 여성의 수 자체도 매우 적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을 본질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보고, 비서직이나 초급 직무에는 적합하지만 권위를 가진 위치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마다 제가 충분히 역량이 있고, 대형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반복해서 증명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상대가 아무리 영향력이 크거나 부유하더라도 위축되지 않았고, 제 의견을 말하거나 그들의 생각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불리한 점도 있었습니다. 남성들처럼 어깨를 두드리며 친분을 쌓거나, 술자리에서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클라이언트들은 제가 디자인에 깊이 헌신하고 있으며,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끈기를 통해 그들의 저항을 점차 낮추었고, 언제나 그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전문가라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꾸준히 탁월한 결과를 증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회의에서 종종 보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성들이 더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낮추고, 덜 유능한 남성들이 중심에 서도록 내버려두는 경우입니다. 뿌리 깊은 가부장적 구조는 남성들에게 더 자연스러운 자신감을 부여해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개선되었지만,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변화가 더딘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남성들이 그 자리를 자발적으로 내어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으로는 회복력을 갖고, 자신의 강점에 집중하며, 차분하면서도 확고한 권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리적 경계와 분야를 넘어 활동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자국을 넘어 세계 무대로 진출하고자 하는 신흥 시장이나 비서구권 출신 디자이너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자신의 도시나 국가를 넘어 활동하고 싶다면, 디자인을 보다 넓은 관점에서 사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념적인 아이디어와 적극적으로 연결되고, 자신만의 관점과 목소리를 가지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자인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은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폭넓은 독서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다른 디자이너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이야기하는지 이해하게 해주고, 새로운 아이디어의 세계를 열어주며, 디자인에 대해 말하고 쓸 수 있는 언어를 갖추게 해줍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야기가 생기기 시작하면, 먼저 자신이 속한 도시와 국가의 디자인 포럼이나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점차 자신감을 쌓아가면서 다른 지역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실천 중심의 분야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은 반드시 실제 작업 사례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주변에 디자인 포럼이 없다면, 직접 만들어도 됩니다. 저는 몇 년 동안 방갈로르에서 ‘디자인 프라이데이(Design Friday)’라는 포럼을 운영하며 디자이너뿐 아니라 건축가, 사진가, 영화감독, 예술가들을 초대해 작업을 공유하도록 했습니다. 강연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교류가 이어지는 자리도 마련되었고, 이를 통해 젊은 디자이너들이 경험 많은 디자이너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밀도 높은 디자인 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더 넓고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의견 리더로 성장하는 것이 과거보다 훨씬 쉬워졌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수많은 정보와 소음 속에서 돋보여야 하기 때문에, 전달하는 메시지는 충분히 깊이 있게 고민되어야 하며 논리적으로 설득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적 특수성과 글로벌한 공명은 강력한 조합이 될 수 있습니다. 인도 또는 아시아의 문화적 언어를 담으면서도 더 넓은 글로벌 시장과 소통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항상 매체나 형식에 관계없이 디자인 전체를 바라보며 작업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건축, 제품, 텍스타일, 가구, 그래픽 등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은 디자인의 결과물이며, 그 안에는 공통된 사고 과정이 존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텍스타일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저를 매료시켜 온 분야입니다. 인도에서는 아름다운 직물과 함께 성장하게 되며, 수천 년에 걸쳐 이어져 온 직조와 프린팅의 깊고 풍부한 전통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살아 있지만, 대부분 자국 내에 머물러 있어 세계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저는 이러한 기술과 전통에 빛을 비추고, 이를 세계에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은 점은, 이러한 전통을 국제 시장에서 의미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디자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Varana’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이 브랜드는 인도의 전통 직물 유산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공예적 기반을 유지하면서도 글로벌 소비자가 요구하는 품질과 디자인 기준을 충족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글로벌 시장의 수준 높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방갈로르 스튜디오에는 다문화 디자인 팀을 구성했습니다. 인도의 텍스타일 및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및 패턴 메이커들과 협업했습니다. 이는 동서양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교차하는 매우 풍부한 실험의 장이 되었고, 그 결과 문화적 특수성과 글로벌한 공명을 동시에 갖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는 자신 있게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다음 챕터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특히 더 깊이 탐구하고 싶은 주제나 영역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다음 세대의 아시아 디자이너들에게 어떤 유산을 남기고 싶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돌아보면, 저와 제 팀이 쌓아온 작업의 양이 매우 방대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2년 뒤면 제가 NID에 학생으로 입학하며 처음 디자인을 접한 지 50년이 됩니다. 저에게 디자인은 평생에 걸친 깊은 애정의 대상이었고, 이 분야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은 제 삶을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랜 시간 실무에 몰두해 온 탓에 작업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데에는 충분히 시간을 들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제는 그동안의 생각을 정리하고, 긴 시간에 걸쳐 해온 작업들을 체계적으로 모아야 할 시점이라고 느낍니다.
제가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는 모든 것이 손으로 이루어지던 시기였고, 컴퓨터가 등장하기 이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세상을 크게 바꿀 것으로 예상되는 AI의 시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제 작업을 기록하기 시작한 단계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그 안에 담긴 경험과 배움이 지금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의미 있는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Archive. Design. Esse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