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형 | 인덕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생활 속 시각디자인 저자,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심사위원
요즘 SNS 피드를 스크롤하다 보면 낯선 화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두껍고 검은 테두리,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듯한 텍스트 블록, 형광 노랑과 새빨간 배경의 충돌, 그리고 그림자 하나 없이 납작하게 눌린 버튼들. 세련미를 추구해 온 디지털 디자인의 문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 낯선 미감의 이름은 ‘네오 브루탈리즘(Neo-Brutalism)’이다. “왜 이렇게 못생겼는데 예쁘지?” 이러한 역설적인 반응이야말로 네오 브루탈리즘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포착한다. 거칠고 날것 그대로이며,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이 미학은 지금 MZ세대의 취향을 관통하며 브랜딩, UI/UX, 웹 디자인, 공간 디자인, 패션, 굿즈, 광고 등 생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 칼럼은 그 확산의 궤적을 다양한 실제 사례를 통해 추적하고, 이 낯선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를 읽어낸다.

콘크리트 건축에서 스크린으로 — 브루탈리즘의 계보와 시각 언어
네오 브루탈리즘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어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브루탈리즘(Brutalism)은 1950~70년대 유럽과 소련을 중심으로 유행한 건축 양식에서 비롯됐다.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하고 구조물의 뼈대를 장식 없이 드러내는 이 양식은 프랑스어 ‘béton brut(날것의 콘크리트)’에서 이름을 따왔다. 런던의 바비칸 센터(Barbican Centre), 보스턴 시청사, 옛 소련의 대형 공공건물들이 대표적이다. ‘재료를 숨기지 말 것, 구조를 포장하지 말 것’이라는 이 건축적 정직함은 1990년대 말 웹 디자인 초기로 이식됐고, HTML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투박한 레이아웃과 기본 폰트를 의도적으로 유지하거나 재현하는 ‘웹 브루탈리즘(Web Brutalism)’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2020년대 들어 이 감수성이 현대적 UI 감각과 결합하며 네오 브루탈리즘으로 재탄생했다.
네오 브루탈리즘의 시각 언어는 몇 가지 명확한 원칙으로 구성된다. 요소의 경계를 강조하는 두꺼운 검은 테두리, 현실적 그라데이션 대신 직각으로 이동한 단색 블록 그림자, 형광 노랑·민트 그린·핫핑크 등 인공적인 고채도 원색 팔레트, 의도적으로 정렬을 이탈하는 레이아웃, 그리고 부드러운 전환 대신 툭툭 튀는 즉각적 인터랙션이 그것이다. 이 요소들은 각각 따로 보면 어색하지만, 하나의 시스템으로 맞물릴 때 강렬하고 일관된 미감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 시각 언어의 배후에는 언제나 같은 질문이 놓여 있다. 이 디자인은 무엇을 감추고 있는가? 무엇을 솔직하게 드러내는가? MZ세대는 그 질문 자체에 열광한다. 2010년대 후반을 지배한 플랫 디자인과 머티리얼 디자인의 세계에서 모든 앱이 동일한 언어를 말할 때, 네오 브루탈리즘의 ‘못생김’은 그 획일적 세련됨에 대한 적극적 반란으로 등장했다. 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필터 없는 삶’의 문화, BeReal의 부상, 인스타그램 과보정에 대한 피로감 등이 모든 흐름이 네오 브루탈리즘이라는 시각언어와 정확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스크린 위의 반란 — 웹 디자인과 UI·브랜드의 사례들
네오 브루탈리즘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역동적으로 실험된 공간은 웹 디자인이다. 전통적인 웹 디자인의 문법 ‘깔끔한 그리드, 일관된 여백, 부드러운 호버 효과’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사이트들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웹 디자인의 판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Hype 4의 웹사이트는 네오 브루탈리즘 웹 디자인의 교과서로 꼽힌다. 굵은 검정 테두리로 구획된 카드 레이아웃, 요소마다 적용된 오프셋 박스 섀도우, 형광 옐로와 흰색이 교차하는 배경, 그리고 섹션마다 다른 배경색이 충돌하는 구성은 방문자가 스크롤을 멈추고 다시 올라가 확인하게 만드는 강한 시각적 인력을 발생시킨다. 에이전시 웹사이트가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포트폴리오임을 감안하면, 이 선택은 대단히 도전적이면서도 전략적이다. 개인 포트폴리오 플랫폼 Read.cv 역시 깔끔하되 구조를 노출하는 타이포그래피 중심의 레이아웃으로, 과도한 비주얼 장식 없이 콘텐츠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는 브루탈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온라인 교육 플랫폼 Buildspace의 웹사이트는 다크 배경에 흰 텍스트와 형광 엑센트 컬러를 조합한 터미널 감성의 브루탈 UI로 개발자·빌더 커뮤니티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우리는 예쁜 척하지 않는다”는 태도 자체가 이 플랫폼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수단이 됐다. 스타트업 랜딩 페이지 빌더 Framer에서 공유되는 네오 브루탈리즘 템플릿들은 월간 다운로드 상위를 꾸준히 차지하며, 창업자와 인디 해커 커뮤니티에서 ‘진지하게 만들되 과장하지 않는’ 브랜딩의 기본값으로 자리 잡았다. 포트폴리오 사이트 생성 툴 Cargo와 Format에서도 네오 브루탈리즘 레이아웃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이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 중 하나로, ‘내 작업보다 사이트가 더 튀지 않는다’는 역설적 이유 때문에 오히려 선택된다. 국내 웹 디자인 씬에서도 이 변화는 감지된다. 독립 디자인 스튜디오와 아트 디렉터들의 개인 사이트에서 두꺼운 구획선, 의도적 비대칭 레이아웃, 모노스페이스 폰트를 활용한 브루탈 웹 디자인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특히 서울 크리에이티브 씬의 젊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네오 브루탈리즘 웹 포트폴리오는 ‘트렌드를 꿰뚫고 있다’는 신호로 읽히며 하나의 커리어 언어가 됐다.

UI 제품 디자인에서는 디지털 상품 판매 플랫폼 Gumroad가 2021년 리브랜딩을 통해 분홍 배경, 검은 테두리, 오프셋 그림자의 버튼을 전면 도입하며 업계 전반에 충격을 줬다. 창업자 Sahil Lavingia가 내세운 “의도적으로 과도하게 디자인하지 않음(deliberately under-designed)”이라는 철학은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전반으로 확산됐다. 결제 플랫폼 Lemon Squeezy는 노랑-흰색-검정의 3색 체계와 두꺼운 아웃라인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딱딱한 핀테크 분야에서 강렬한 브랜드 기억도를 만들었으며, 디자인 협업 툴 Figma는 커뮤니티 내 수천 개의 네오 브루탈리즘 UI 킷이 공유되며 이 스타일이 하나의 체계적 디자인 시스템으로 정착했음을 증명했다. 영국의 챌린저 뱅크 Monzo는 산호빛 카드 컬러와 대담한 타이포그래피로 금융 브랜드의 보수적 이미지를 깨뜨렸고, 암호화폐 지갑 앱 Rainbow Wallet은 고채도 컬러와 두꺼운 경계선으로 복잡한 금융 정보를 오히려 명쾌하게 전달한다. 개발자 도구 Railway는 다크 배경에 형광 그린 텍스트와 모노스페이스 폰트를 조합해 터미널 감성과 네오 브루탈리즘을 접목한 독자적 미학을 구축했다.
국내 브랜드에서도 이 흐름은 뚜렷하다. 무신사는 기획전 배너와 앱 내 프로모션 UI에 두꺼운 검정 테두리와 원색 충돌을 반복 활용하며 ‘젊고 거칠다’는 브랜드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일관되게 구축했고, 29CM은 에디토리얼 사진과 브루탈한 타이포그래피를 결합해 쇼핑 앱임에도 패션 매거진에 가까운 몰입적 경험을 제공한다. 한정판 스니커즈 거래 플랫폼 ‘크림(KREAM)’은 강렬한 흑백 대비와 굵은 서체 중심의 UI로 ‘희소성’과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며, 금융 앱 ‘토스(Toss)’의 초기 UI는 파격적인 고대비·단순 구조로 이후 수많은 핀테크 앱 디자인의 기준점이 됐다. 카카오 이모티콘에서도 두꺼운 아웃라인과 과장된 표정의 브루탈 감성 캐릭터들이 꾸준히 인기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며 MZ세대의 감성 표현 방식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공간이 된 브루탈리즘 — 젠틀몬스터 하우스 노웨어 서울
네오 브루탈리즘이 스크린을 벗어나 실제 공간으로 번역된 가장 강렬한 국내 사례는 단연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의 하우스 노웨어(House Nowhere) 서울이다. 성수동에 문을 연 이 공간은 단순한 플래그십 스토어가 아니다. 미완성처럼 보이는 콘크리트 벽면, 육중하게 노출된 철골 구조, 정제되지 않은 듯한 거친 마감재들이며, 이 모든 요소는 치밀하게 계산된 브루탈 미학의 결과물이다. 장식을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구조 자체를 장식으로 삼는 전략이다. 하우스 노웨어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이 공간이 브루탈리즘의 건축적 언어를 브랜드 경험 디자인으로 완벽하게 전환했기 때문이다. 방문객은 안경을 구매하러 들어갔다가 정체불명의 오브제들과 조우하고, 산업적 질감의 공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자발적으로 콘텐츠 생산자가 된다. 이 공간의 비주얼은 SNS에서 급속도로 확산되며 “젠틀몬스터 갔다 왔어”라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됐다. 제품보다 공간이, 판매보다 경험이 먼저 소비되는 구조이며, 이것이 브루탈 미학이 MZ세대에게 작동하는 방식이다.
하우스 노웨어의 웹사이트 역시 이 일관성을 스크린 위에서도 유지한다. 과도한 애니메이션 없이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풀스크린 이미지, 두꺼운 서체와 최소화된 내비게이션, 공간의 날것 질감을 그대로 살린 사진 언어는 오프라인의 브루탈 공간 감수성을 온라인에서도 끊김 없이 이어간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동일한 감각으로 연결되는 이 경험 설계는 브루탈리즘이 하나의 스타일이 아니라 하나의 총체적 브랜드 세계관임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젠틀몬스터는 이전부터 각 매장을 독립적인 예술 설치 공간처럼 운영해 왔지만, 하우스 노웨어는 그 방향성을 한층 더 밀어붙였다. 날것의 물성, 과감한 스케일, 의도적 불완전함은 디지털 스크린 위의 네오 브루탈리즘이 물리적 공간에서 구현될 때 어떤 감각을 만들어내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브랜드는 네오 브루탈리즘이 단순한 시각 트렌드가 아니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언어임을 증명하는 가장 입체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패션과 굿즈 영역에서도 이 미학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발렌시아가(Balenciaga)와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가 오버사이즈 형태, 원가공 소재, 의도적 비례 왜곡을 컬렉션에 반영하는 한편, ‘나이키(Nike)’와 ‘아디다스(Adidas)’는 캠페인 포스터에 두꺼운 블록 텍스트와 원색 배경을 조합한 브루탈 그래픽으로 스포츠 브랜드의 에너지를 한층 원초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독립 출판 브랜드 ‘유어마인드(Your Mind)’와 감성 문구 브랜드 ‘모트모트(MOTMOT)’가 인쇄 자국이 살아있는 리소(Riso) 프린트, 잉크 번짐을 유지한 스탬프 패키지 등으로 ‘이건 손으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이라는 감성 가치를 프리미엄으로 제공하며 MZ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꾸미지 않은 진짜의 아름다움
모든 트렌드는 반(反)트렌드를 낳는다. 이미 일각에서는 “네오 브루탈리즘도 결국 하나의 유행 문법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모두가 두꺼운 테두리를 그린다면, 그 두꺼운 테두리는 더 이상 반란이 아니다. 그러나 네오 브루탈리즘의 핵심 철학은 정직함, 구조의 노출, 불필요한 장식의 거부 등은 특정 유행을 넘어 디자인의 근본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 주목할 점은 이 미학이 접근성(Accessibility)과도 공명한다는 사실이다. 고대비 색상 조합, 명확한 경계선, 큰 텍스트는 시각적 강렬함을 만들면서 동시에 저시력자나 인지 장애가 있는 사용자에게 더 읽기 쉬운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반란의 미학이 포용적 디자인(Inclusive Design)의 방향성과 우연히 교차하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표면보다 금이 가고 긁힌 질감에서 더 큰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는 비단 디자인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완벽한 필터 뒤에 숨기를 거부하고 날것의 감정을 드러내며 소통하는 MZ세대의 방식이 시각언어로 번역된 것이 바로 네오 브루탈리즘이다. 젠틀몬스터의 거친 콘크리트 벽에서, Gumroad의 분홍 배경 버튼에서, Hype 4의 형광 웹 화면에서, 무신사의 두꺼운 검정 테두리 배너에서 우리는 같은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못생긴 아름다움이 아니라, 꾸미지 않은 진짜의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매일 들여다보는 스크린 위에서, 그리고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공간 속에서 가장 솔직하게 빛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