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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더넛츠 송창렬 대표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대한민국광고대상> 심사위원

 

 

 


 

 

 

파버카스텔과 힙분유가 증명한 구조의 힘

 

우리는 장인정신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한 사람을 생각한다. 오랜 시간 같은 일을 반복하며 숙련된 기술을 몸에 새긴 사람, 손끝의 감각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존재. 장인정신은 그렇게 개인의 능력과 태도에 가까운 개념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 정의는 절반만 맞다. 왜 어떤 브랜드는 수십 년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동일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을까. 왜 어떤 제품은 세대가 바뀌어도 동일한 신뢰를 유지할 수 있을까. 만약 장인정신이 개인의 기술에만 의존하는 것이라면, 그 지속성은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은 바뀌고, 환경은 변하고, 조건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은 다시 설정되어야 한다. 장인정신은 개인의 기술인가, 아니면 시스템의 결과인가.

 

이 질문에 가장 명확하게 답하는 두 개의 브랜드가 있다. 파버카스텔(Faber-Castell)과 힙분유 (HiPP)다. 이들은 모두 독일에서 출발한 브랜드다. 독일에서 품질은 결과가 아니라, 구조의 결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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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파버카스텔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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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힙 >

 

 

 

연필은 한때 감각의 도구였다. 어떤 것이 더 부드러운지, 어떤 것이 더 단단한지는 설명되지 않았고, 사용자는 경험을 통해서만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기준은 존재하지 않았고, 선택은 늘 불확실했다. 파버카스텔은 이 지점에서 제품을 개선하는 대신, 제품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기 시작한다. 좋은 연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연필을 설명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겠다는 선택, 감각에 의존하던 도구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환하겠다는 시도였다.

 

그 결과가 바로 H와 B로 대표되는 경도 체계다. 그리고 그 사이를 세분화한 수치화된 단계들은 연필이라는 제품을 ‘설명 가능한 도구’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연필은 느낌이 아니라 목적에 따라 선택되는 도구가 되었고, 이 변화는 단순한 사용 편의성을 넘어 시장의 구조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기준이 생기면 비교가 가능해지고, 비교가 가능해지면 선택이 단순해지며, 선택이 단순해지는 순간 시장은 하나의 언어로 작동하게 된다. 이 변화는 기능의 개선이 아니라 카테고리를 구성하는 문법의 생성이며, 파버카스텔은 연필을 만든 브랜드가 아니라 연필을 이해하는 방식을 만든 브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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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파버카스텔 제공 >

 

 

 

이 기준은 연필에 머물지 않는다. 이후 색연필, 필기구, 아트 도구 전반으로 확장되며, 파버카스텔이라는 브랜드 전체를 관통하는 원칙으로 자리 잡는다. 이들이 말하는 “Creativity in your hands for 265 years.”라는 문장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그 기준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에 가깝다. 이 구조는 제품에만 머물지 않는다. 브라질에 조성된 자체 산림은 단순한 원료 공급지가 아니라, 품질을 통제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어떤 나무를 사용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 자란 나무인가를 기준으로 삼고, 그 기준을 생산 공정 전체에 일관되게 적용한다. 그래서 이 브랜드의 품질은 공장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이미 그 이전 단계에서 결정된다. 연필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조 속에서 완성되는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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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파버카스텔 제공 >

 

 

 

힙분유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면 유기농 분유를 만드는 제품처럼 보이지만, 이 브랜드의 본질은 제품이 아니라 시스템에 있다. 힙분유가 선택한 것은 ‘유기농’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가 흔들리지 않도록 만드는 조건이었다. 글로벌 분유 리콜 사태에서 많은 브랜드들이 영향을 받았던 이유는 원재료 공급망에 있었다. 특정 지역, 특정 공급업체에 의존하는 구조는 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동시에 리스크를 내포한다. 그러나 힙분유는 다른 선택을 했다. 유럽 내 공급망을 기반으로 한 원재료 관리, 장기적인 파트너십, 그리고 초기 단계에서 품질을 통제하는 구조. 이 모든 선택은 하나의 방향으로 이어진다. 우연을 허용하지 않는 것. 이들이 말하는 “The best from nature. The best for nature.”라는 문장은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자연에서 시작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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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HiPP / 독일 유기농 힙분유는 유기농 농가와 직접 계약을 맺고, 제조 각 단계를 직접 통제하고 있다 >

 

 

 

이 두 브랜드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리스크가 발생하지 않는 조건을 설계한다. 대부분의 브랜드가 완성된 결과를 기준으로 품질을 관리할 때, 이들은 결과가 흔들리지 않도록 만드는 구조를 먼저 설계한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결과에서는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하나는 품질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브랜드이고, 다른 하나는 품질이 유지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브랜드다. 그래서 장인정신은 더 이상 개인의 기술로 설명될 수 없다. 장인정신은 반복 가능한 구조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사람이 바뀌어도, 환경이 변해도, 결과가 흔들리지 않도록 만드는 설계. 그 설계가 존재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장인정신이라고 부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만드는가가 아니다. 어떻게 만들어지도록 설계했는가다. 장인정신은 손끝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 단계에서 이미 결정된다. 어떤 기준을 만들 것인가, 어떤 구조를 설계할 것인가, 어떤 조건을 통제할 것인가. 그 선택들이 반복될 때, 결과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장인정신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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