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혁 | ASIA DESIGN PRIZE 미디어 편집장
이번 2026-2027년 아시아 디자인 트렌드 리포트의 분석 결과를 다시 들여다보면, 형태는 더 이상 디자이너의 손에서 한 번 결정되고 마는 영역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수많은 수상작들의 디자인 설명과 키워드는 형태가 이제 시간 속에서 자라고 변화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 격상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디자인의 형태는 완성된 후에도 사용자의 시간, 환경의 조건, 자연의 호흡과 더불어 계속해서 변해 가는 능동적인 구조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트렌드 리포트는 이 거대한 흐름을 'BIOFORMA'라는 단어로 명명하기로 했다. Bio(생명)와 Forma(형태)가 결합된 개념이다.

BIOFORMA는 단순히 두 단어를 조합한 신조어가 아니다. 생명과 형태가 만나는 지점에서 이 단어는 새로운 디자인 패러다임의 탄생을 선언한다. 자연을 단순히 모방하는 단계를 넘어 자연처럼 행동하는 형태를 추구하겠다는 태도, 사용자의 시간과 함께 자라고 갈라지는 구조를 설계의 핵심 언어로 받아들이려는 디자이너의 철학이 담겨 있다. 텍스트 분석 결과는 이를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단서를 제시한다. 재료와 자연을 가리키는 'wooden'이라는 단어는 일본 수상작 프롬프트에서 81회 등장하며 'modern'(76회)을 앞지르고 처음으로 상위 10위 안에 진입했다. 홍콩에서도 'wooden'은 32회로 상위 10위권을 유지했고, 러시아 극동의 'Ural Forest' 프로젝트 프롬프트에서는 'natural'(10회), 'wooden'(10회), 'outdoor'(5회), 'wood'(5회)가 빈도의 최상단을 차지한다.
같은 단어가 여러 권역에서 동시에 상위권으로 떠오른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으로 볼 수 없다. 여기서 'wooden'은 단순히 마감재를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디자인이 어떤 시간을 통과해 만들어졌는가'를 보여주는 신호이며, 시간과 기억, 계보를 함께 담아내는 재료의 위상이 격상되었음을 알려준다. 이번 분석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wooden'은 단순한 목재의 빈도가 아니라, 재료가 디자인의 출발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트렌드 분석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지금, 디자인은 형태에 생명을 부여하기 시작했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기술의 진보다. 파라메트릭 설계 도구와 생성형 알고리즘, 적층 가공 기술, 그리고 스스로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신소재의 발달은 디자이너가 '자라는 형태'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기술적 진보는 이유의 절반에 불과하다. 더 본질적인 변화는 디자인이 다루는 핵심 대상이 '사물의 외형 디자인'에서 '시간의 흐름이 포함된 디자인'으로 옮겨 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물은 형태로 정의되지만, 시간은 행동이 중요하게 작용된다. '시간을 설계하는 디자인'의 시대에 살아 움직이는 형태가 부상하는 것은 필연적인 흐름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또 다른 핵심 요인인 변화된 '사용자의 감각'이 더해진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 안에서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갈증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정지된 사물, 결정된 형태, 닫힌 시스템은 더 이상 사용자의 호흡과 어울리지 않는다. 도시인의 일상이 점점 더 '자연 결핍'의 조건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 역시 이 흐름을 부추긴다. 콘크리트와 유리, 액정과 콘솔로 둘러싸인 도시인의 하루 속에서 사용자는 자연의 외형보다 자연의 호흡을 그리워한다. 사용자는 이제 자신과 함께 호흡하고, 자신의 시간과 함께 변하는 사물을 원한다. BIOFORMA는 바로 이 요구에 대한 디자인의 응답이라 해석된다.

< VINE, ASIA DESIGN PRIZE 2026 Winner >
권역별 사례를 들여다보면 이 흐름은 더욱 선명해진다. 한국의 'VINE'은 BIOFORMA의 가장 정직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작품의 이름 자체가 '덩굴'이다. 인공 구조와 유기적 형태 사이의 경계를 부드럽게 풀어내면서, 덩굴 식물이 기어오르고 가지를 뻗는 움직임 자체를 디자인의 조형 언어로 받아들인다. 흥미로운 점은 이 프로젝트가 단지 덩굴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디자인은 형태가 '성장'할 수 있는 방향, 담쟁이 처럼벽면 위로 '기어오를' 수 있는 표면, '갈라질' 수 있는 분기점을 함께 설계한다. 다시 말해, 형태는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다음 단계를 향해 펼쳐질 가능성' 안에 놓인다. VINE은 그래서 멈춰 있는 조형이 아니라 '성장을 품은 움직임'의 상태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 private villa ten KUMANO, ASIA DESIGN PRIZE 2026 Grand Prize >
일본의 'private villa ten KUMANO'는 BIOFORMA가 건축의 스케일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산과 바다가 가장 가까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은 이 빌라는 필로티 구조로 메인 층을 들어 올려 수평선을 액자처럼 받아낸다. 중요한 것은 이 건축이 지형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KUMANO는 산의 경사와 바람의 방향, 빛의 진입각, 식생의 호흡까지 함께 받아들이며 '자연이 자라는 방향에 맞춰 놓인 구조물'로 작동한다. 빛과 바람을 향해 가지를 뻗는 나무처럼, 건축은 풍경을 거스르지 않고 풍경의 일부가 된다. 이는 '닮은 형태'가 아니라 '비슷한 행동'이다. KUMANO는 자연을 모방하지 않고, 자연이 하는 일을 똑같이 한다.

< Formosa Forest Reed Diffuser, ASIA DESIGN PRIZE 2026 Grand Prize >
대만의 'Formosa Forest Reed Diffuser'는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사라져 가는 숲의 호흡과 기억을 일상의 향(香) 안에 새겨 넣는 이 디자인은, 자연을 '조형'이 아니라 '감각'으로 받아들인다. 디퓨저라는 작은 사물이 거대한 숲의 시간성을 운반한다. 향이 공기 중에 퍼지는 방식은 식물이 잎을 통해 호흡하는 방식과 닮아 있고, 사용자는 이 작은 사물 하나를 통해 자연의 '행동'을 자신의 실내 공간 안으로 끌어들인다. BIOFORMA가 거대한 건축에서만 작동하는 어휘가 아니라, 손바닥 위의 사물에서도 같은 논리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형태가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결국 '작동하는 방식'이 자연을 닮는다는 의미이며, 그 작동은 스케일과 무관하다.

< Ural Forest, ASIA DESIGN PRIZE 2026 Gold Winner >
러시아의 'Ural Forest'는 BIOFORMA가 공공 디자인의 영역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보여준다. 야외 놀이 공간을 단순히 '서 있는 구조물'이 아니라 '자라나는 숲처럼 짜인 환경'으로 다룬다. 아이들의 움직임, 나무의 성장, 숲의 호흡이 하나의 생태적 장면 안에 엮인다. 'natural', 'wooden', 'outdoor', 'wood'가 빈도의 최상단을 차지한다는 데이터의 표면은, 이 공간이 단순히 자연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차원을 넘어, 자연이 자라는 논리로 '짜였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놀이 시설은 멈춰 있는 사물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함께 변하는 환경이 된다. BIOFORMA가 공공의 영역에서 어떻게 시민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 수 있는지를 단정하게 증명하는 프로젝트다.
이러한 권역별 사례를 종합해 보면, BIOFORMA의 공통 문법이 또렷이 떠오른다. 한국의 BIOFORMA가 '성장을 품은 형태'라면, 일본은 '풍경에 응답하는 건축', 대만은 '감각으로 호흡하는 사물', 러시아는 '함께 자라는 공공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주요 권역 모두 'wooden'과 'natural'이 최상위 키워드로 도출되었으나, 그 자연이 디자인 안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철저히 지역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공통점은 분명하다. 첫째, 형태가 '완성'이 아니라 '과정'으로 다뤄지고, 둘째, 디자인이 자연의 '외형'이 아니라 자연의 '동사'를 흡수하며, 셋째, 사용자가 형태를 '본다'가 아니라 '함께 호흡한다'의 감각으로 마주한다. 디자인의 평가 기준이 형태의 명사에서 행동의 동사로 옮겨 간 것이다.

< Keyaki Monogatari, ASIA DESIGN PRIZE 2026 Grand Prize >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BIOFORMA는 '유기적인 곡선의 미감'과 분명히 다르다. 유려한 곡선은 BIOFORMA의 겉으로 드러난 결과일 수는 있지만, 본질은 곡선의 형태가 아니라 '성장의 논리'에 있다. 직선으로 구성된 디자인이라도 시간의 흐름과 사용자의 생활 변화에 맞춰 갈라지고 확장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었다면 BIOFORMA의 흐름 안에 들어온다. 반대로 곡선이 가득해도 그 곡선이 단지 시각적 장식에 머문다면 BIOFORMA의 본질을 벗어난다. 형태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표현의 핵심은 '움직임'이 아니라 '살아 있음'이다. BIOFORMA의 또 다른 핵심 단서는 '재료의 윤리'에 있다. 일본의 'Keyaki Monogatari'는 의뢰인의 본가 정원에 있던 느티나무를 새 집의 구조 기둥으로 끌어들이며, 디자인을 추모와 계승의 행위로 확장한다. 재료는 단순한 마감이 아니라 '기억을 품은 존재'로 자리한다.

< Ooyster, ASIA DESIGN PRIZE 2026 Winner >
대만의 'Ooyster' 또한 같은 흐름 안에 있다. 굴 껍데기와 해조 젤을 활용해 양식 시스템과 해양 생태 회복을 동시에 설계하는 이 프로젝트는, 자연의 폐기물조차 '다시 자라나는 자원'으로 다시 자리매김시킨다. BIOFORMA가 단지 '형태의 미감'이 아니라 '순환의 시스템'으로 작동할 때, 디자인은 비로소 '만드는 일'이 아니라 '가꾸는 일'에 가까워진다. 일본 디자인이 'wooden'을 'modern'보다 앞 자리에 놓는다는 데이터는, 디자인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다'의 보고서가 아니라 '어떤 시간으로 만들어졌다'의 진술로 진화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BIOFORMA는 '지역성'과 단단히 묶인 어휘다. 자연을 '일반적인 자연'이라는 추상으로 다루는 디자인은 점차 힘을 잃고 있다. KUMANO는 그 지역의 산과 바다라는 '특정한 풍경'과 묶여 있고, Formosa Forest는 사라져 가는 '대만의 숲'이라는 구체적인 장소와 묶여 있다. Ural Forest 또한 우랄 지역의 침엽수 생태계라는 '그 자리의 자연'에서 출발한다. BIOFORMA가 작동하는 모든 사례에서 자연은 '추상의 자연'이 아니라 '사용자와 함께하는 자연'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흐름은 BIOFORMA가 제품·공간·재료 디자인 사이의 견고했던 경계를 서서히 흡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재료는 디자인의 마지막 단계에서 선택되는 마감의 영역이었고, 형태는 제품·공간·환경이라는 각각의 카테고리 안에서 결정되어 왔다. 그러나 본격적인 BIOFORMA의 시대에는 이 경계가 점차 허물어진다. 제품 디자이너는 사물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할지를 초기 설계 단계부터 함께 고려해야 하며, 공간 디자이너는 재료가 운반하는 시간성과 기억을 형태의 핵심 변수로 받아들여야 한다. 디자인 직군 사이의 견고했던 경계가 조용히 허물어지는 그 자리에, BIOFORMA는 새로운 공통의 언어로 굳건히 자리매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계의 주체인 디자이너 관점에서 요구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본격적인 BIOFORMA의 시대에 디자이너는 두 가지 새로운 감각을 체화해야 한다. 첫째, 형태를 사후적으로 '결정(Decide)'하는 자가 아니라, 처음부터 형태가 자라날 수 있는 조건을 '경작(Cultivate)'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재료를 단순한 '마감(Finish)'으로 다루는 것을 넘어, 시간과 기억을 담아내는 '서사(Narrative)'로 읽어내는 감각으로 다루어야 한다.
이제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핵심 역량은 형태의 윤곽을 그려내는 일을 아득히 넘어선다. 사물이 시간 속에서 갈라지고 확장될 수 있는 조건, 재료가 품고 있는 기억과 계보, 나아가 자연이 가진 성장의 논리까지 총체적으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무엇처럼 보이는 사물을 만들 것인가"만을 묻지 않는다. "무엇처럼 자라는 사물을 함께 가꿀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진정한 BIOFORMA는 바로 그 본질적인 질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발현된다. 그리고 이 시대적 질문에 대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응답해 낸 동시대 디자이너들의 해답이, 이번 ADP 2026 수상작들 곳곳에 표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