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양대학교 최종우 교수. ffd랩 디렉터
전) 영국 맥라렌 시니어 제품운송 디자이너, 로지텍MX 시리즈 제품 수석 디자이너
새로운 디자인이 처음 세상에 나올 때마다 대중은 종종 날 선 거부 반응을 보인다. 디자인이 기존의 익숙함을 깨뜨릴 때마다 대중은 본능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여왔으며, 익숙한 균형을 무너뜨리는 파격적인 조형은 늘 의심과 조롱의 표적이 되곤 했다. 2016년 처음 등장한 애플의 '에어팟'이 좋은 예다. 기존 이어폰에서 줄만 싹둑 잘라낸 듯한 이 파격적인 줄기형 형태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미디어와 대중은 "귀에 꽂은 콩나물", "부러진 전동 칫솔"이라며 조롱을 퍼부었던 거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디자인 취급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눈에 익기 시작하자 에어팟은 어느새 현대인의 필수 아이콘이자 무선 이어폰의 표준적인 아름다움으로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2016년 처음 선보인 애플의 에어팟 1세대
< 이미지 출처 : Apple >
최근 자동차 산업에서는 테슬라의 '사이버트럭'이 비슷한 논란을 일으켰다. 이 차가 처음 베일을 벗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찬사보다는 짙은 당혹감에 가까웠다. 매끄러운 곡선, 반짝이는 도장, 우아한 비율이라는 100년 넘은 자동차 디자인의 암묵적인 룰을 완전히 박살 낸 이 투박한 스테인리스 스틸 덩어리를 보고, 기성 디자이너들은 물론 현업의 수많은 디자인 전문가들 역시 긍정보다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단순한 미학적 호불호를 넘어 과연 ‘저게 자동차 디자인으로서 성립이나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쏟아진 것이다.

테슬라가 보여주던 우아한 디자인 패턴에서 벗어난 사이버트럭(Cybertruck) 디자인
스테인리스 강판을 그대로 접어 만든 칼날 같은 각진 모서리는 보행자 충돌 시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컸고, 유격이 훤히 보이는 패널 단차와 눈에 띄게 조악한 마감 품질은 실무자들의 한숨을 자아냈다. 페인트 도장조차 없이 출고되어 세차나 관리가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실용성 문제부터, 기본적인 자동차 조형이 갖춰야 할 안전성과 사용성을 무시했다는 지적까지 현업에서의 반응은 그야말로 냉담했다. 이런 현상을 보면 한 가지 근원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가 특정 디자인을 보고 ‘별로다’ 혹은 ‘실패작이다’라고 느끼는 건, 진짜 그 조형 자체가 객관적으로 못생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내 눈에 익숙하지 않아서 생기는 본능적인 거부감일까? 우리가 어떤 디자인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기준은 정말 미학적 완성도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반복 노출을 통해 형성된 익숙함의 결과일 뿐인지 되물어야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각은 절대적이거나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중이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미적인 관점은 철저하게 그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평생에 걸쳐 자신이 속한 문화권의 규범,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이미지,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관을 반복적으로 학습하며 무엇이 좋은 형태인지 은연중에 합의해 온다. 즉, 대중이 낯선 조형에 쏟아내는 혐오는 단순한 미학적 실패가 아니라 집단 무의식 속에 단단하게 굳어진 '문화적 코드'와 새로운 형태가 정면으로 부딪히며 발생하는 인지적 거부감에 가깝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동차의 앞모습에서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헤드램프는 눈, 그릴은 입)을 찾으며 교감하려 하고, 금속을 유기적으로 빚어낸 매끄러운 곡선을 보며 심리적 안정감과 고급스러움을 느낀다. 이것이 우리가 오랫동안 학습해 온 자동차 문화의 굳건한 코드다. 하지만 사이버트럭은 이런 의인화된 시각적 코드를 차갑고 기하학적인 직선으로 가차 없이 잘라냈다. 사람들은 단순히 차의 비율이 틀려서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평생 학습해 온 기성의 맥락과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디자인 앞에서 극심한 심리적 불안을 느낀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디자이너들에게는 화려한 픽셀을 다루는 소프트웨어 툴 기술보다, 인간과 사회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인문학적 시선이 훨씬 더 절실하다. 디자인은 단순히 보기 좋은 껍데기를 씌우는 작업이 아니다. 사람들이 왜 특정 형태에 안도감을 느끼고, 왜 어떤 질감에서 위협을 느끼는지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이해해야만 비로소 굳게 닫힌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아무리 밤을 새워 기가 막힌 조형을 빚어냈더라도 그것은 그저 출발선에 불과하며, 실무의 세계에서 디자인은 결국 끝이 없는 설득의 연속이다.
누군가 “이 디자인은 너무 낯설고 튀는데요?”라고 물었을 때, “요즘 트렌드입니다”라고 답하는 건 3류에 불과하다. 실력 있는 프로 디자이너는 마주 앉은 상대방의 불안과 결핍을 정확히 읽어내는 심리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그들은 그 낯섦 이면에 있는 대중의 불안을 통찰하고 내 디자인의 정당성을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맥락으로 연결해 내는 고도의 인문학적 작업을 수행한다. 특히 2026년 현재, 생성형 AI의 폭발적인 발전과 맞물려 이러한 서사와 설득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디자이너의 명운을 가르는 핵심이 되었다.
예전에는 며칠씩 꼬박 밤을 새워야 얻을 수 있었던 매끄러운 렌더링과 극한의 시각적 완성도는 이제 제대로 된 프롬프트 몇 줄이면 단 1초 만에 스크린 위에 찬란하게 토해진다. 인공지능은 수려한 이미지를 군말 없이 흉내 낼 수 있다. 하지만 AI는 왜 현대인들이 환경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주는 소재에 끌리는지, 왜 과시적인 형태보다 미니멀한 여백에서 심리적 위안을 얻는지는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 아름다운 쓰레기들이 매일 수만 개씩 생산되는 세상에서 오직 시각적인 퀄리티 그 자체만으로 밥그릇을 지킬 수 있던 시대는 저물어져 가고 있다.

서울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 낯선 형태는 언제나 집단 무의식의 거부감과 충돌한다
결국 기술이 인간의 숙련도를 압도하고 모든 조형 작업이 손쉽게 자동화될수록 역설적으로 그 형태를 선택하고 뼈대 있는 서사를 부여하는 디자이너의 인문학적 통찰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화면 위에 긋는 선 하나는 단순히 예쁜 모양이 아니라 시대의 가치관과 대중의 감정을 담아내는 문화적 선언이다. 디자인의 진입 장벽이 완벽히 허물어진 지금, 디자이너는 단순히 손이 빠른 기술자가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고 맥락을 장악하여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쥐어야 할 최종 무기는 픽셀을 움직이는 정교한 손이 아니라 가치를 증명해 내는 단단한 서사의 힘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는 미의 기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사회문화적으로 파악하고 사물이 반드시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강력하고 따뜻한 서사로 짓는 데 진짜 해답이 있다. 세상에 없던 위대한 디자인은 언제나 처음엔 낯설고 불편한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그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대의 맥락과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어 논리적으로 세상을 설득해 내는 것. 그것이 기술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 디자이너만의 고유한 권력이자 진짜 생존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