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예나
비포브랜드(B for Brand) 대표 / 로맨틱 타이거(Romantic Tiger) 디렉터
“비포브랜드(B for Brand)는 로고를 디자인하기에 앞서 사업의 수익 구조와 시장 내 위치 등 브랜딩 이전의 본질적인 질문을 우선적으로 다루는 전문 에이전시다. 최예나 대표는 클라이언트의 브랜드를 기획하는 에이전시의 수장이자, 레그웨어 브랜드 '로맨틱 타이거(Romantic Tiger)'를 직접 운영하는 브랜드 오너로서 두 비즈니스 영역을 활발하게 오가고 있다. 그는 브랜딩을 단순한 시각적 산출물이 아닌 비즈니스 의사결정의 체계로 정의하며, 브랜드의 전략이 실제 고객의 경험과 접점에서 어떻게 유효하게 작동하는지에 집중한다. 기획자의 거시적인 시선과 브랜드 오너의 현실적인 실무 감각을 동시에 지닌 최예나 대표를 만나,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브랜딩이 지니는 가치와 디자이너가 갖추어야 할 현실적인 태도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먼저 비포브랜드와 최예나 디자이너님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비포브랜드는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브랜딩 에이전시이며, 현재 어떤 방식으로 브랜드와 비즈니스를 연결하고 있나요?
비포브랜드(B for Brand)는 브랜딩 이전의 질문을 다루는 회사라는 뜻입니다. 저희의 일은 로고를 그리기 전에 먼저 결정해야 할 것들에서 시작합니다. 이 사업이 어떻게 수익을 만드는지, 시장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정말 필요한 것이 브랜딩인지 살펴보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이름 자체는 영어에서 철자를 구두로 전달할 때 사용하는 표현에서 가져왔습니다. B라는 글자 하나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전달되지 않지만, 뒤에 Brand가 붙는 순간 비로소 정확한 의미가 완성됩니다. 아무 의미도 없던 기호에 맥락을 부여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가치로 만드는 일. 회사를 만들고 나서 돌아보니, 그 이름 안에 저희가 하는 일의 정의가 이미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습니다. 클라이언트의 브랜드를 만드는 에이전시 대표이자, 레그웨어 브랜드 로맨틱 타이거를 직접 운영하는 브랜드 오너입니다. 만드는 입장과 판매하는 입장을 함께 경험하다 보면 업계의 오래된 구조적 문제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많은 브랜딩 프로젝트가 결국 '납품'에서 끝난다는 점입니다. 아름답게 디자인된 가이드라인 북이 완성되고 프로젝트는 종료됩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 실제 매장을 보면 처음 기획했던 브랜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비포브랜드는 바로 그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저희는 브랜딩을 디자인 결과물이 아니라 비즈니스 의사결정을 위한 하나의 체계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저희의 결과물은 로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패키지, 공간의 사인 시스템, 고객 응대 문구, 배송 박스를 여는 순간의 경험까지 모두 브랜드의 영역으로 연결됩니다. 브랜드는 하나의 파일이 아니라, 고객이 축적하는 경험의 총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ATLAS Conference BI & Key Visual Design, ASIA DESIGN PRIZE 2026 Winner >
비포브랜드는 다양한 클라이언트의 브랜드를 기획하고 디자인해 온 에이전시입니다.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단계에서부터 브랜드 전략을 설계하는 과정까지, 비포브랜드가 가장 중요하게 확인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세 가지를 봅니다. 첫째, 이 문제가 정말 브랜딩으로 풀리는 문제인가. 매출이 정체된 이유가 브랜드 인지도가 아니라 가격 구조나 유통 채널에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그럴 때 리브랜딩은 가장 비싼 진통제일 뿐입니다. 저희는 초기 미팅에서 "지금 리브랜딩이 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먼저 꺼내는 편입니다. 이 말을 할 수 있느냐가 에이전시의 신뢰도를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테이블에 앉아 있는가. 브랜딩은 취향의 영역과 맞닿아 있어서, 결정권자가 프로젝트 후반부에 처음 등장하면 그때까지의 전략적 합의가 한 번에 무너집니다. 이건 실무자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프로세스 설계의 문제입니다. 셋째, 론칭 이후를 운영할 체력이 있는가. 브랜드는 완성되는 게 아니라 유지되는 것입니다. 만들어 드린 시스템을 6개월 뒤에도 지킬 수 있는 인력과 예산이 없다면, 그 브랜딩은 시작부터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셈이죠.

브랜딩 프로젝트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그대로 시각화하는 일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방향과 브랜드의 정체성을 함께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포브랜드는 클라이언트의 사업 구조와 시장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이를 브랜드 전략으로 전환하나요?
저희가 킥오프에서 요청하는 자료는 경쟁사 무드보드가 아니라 손익 구조와 판매 데이터입니다. 객단가는 얼마인지, 재구매율은 어느 정도인지, 매출이 어느 채널에서 나오는지, 어느 단계에서 고객이 이탈하는지. 이 숫자들을 보면 브랜딩이 건드려야 할 지점이 좁혀집니다. 재구매율이 낮다면 문제는 첫인상이 아니라 사용 이후의 경험에 있습니다. 그러면 로고보다 리필 패키지의 구조나 언박싱 이후의 커뮤니케이션에 자원을 써야 합니다. 반대로 유입은 충분한데 전환이 안 된다면, 그건 상세페이지의 설득 구조와 가격의 근거를 다시 짜야 하는 문제죠.
그래서 저희의 전략 설계는 이런 순서를 따릅니다. 수익 구조 파악 → 이 사업을 실제로 움직이는 핵심 지표 특정 → 그 지표에 영향을 주는 고객 접점 선별 → 그 접점에 디자인 자원 집중. 예산은 항상 유한하기 때문에, 브랜딩에서 진짜 실력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무엇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느냐에서 드러납니다. 브랜드 전략은 결국 손익계산서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어야 합니다.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설득력이 없지만, "이 톤앤매너가 객단가 저항선을 얼마나 밀어 올린다"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비포브랜드의 작업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주거 브랜딩 이후, 인테리어 업체가 아닌 브랜딩 에이전시가 사인 시스템 작업까지 확장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공간의 사인 작업은 인테리어 또는 공간 디자인의 일부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비포브랜드가 이 영역까지 맡게 된 배경과, 그 과정에서 발견한 브랜딩의 가능성은 무엇이었나요?
사인 작업을 수주해서 시작한 게 아니라, 앞단의 작업이 필연적으로 그리로 이어졌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대명건설과는 개별 단지의 브랜딩이 아니라 브랜드 아키텍처부터 함께 구축했습니다. 오피스텔, 타운하우스, 아파트는 고객층도 가격대도 구매 동기도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기업이 쌓아온 신뢰라는 하나의 자산을 공유해야 하죠. 그러니 핵심 질문은 하나로 좁혀집니다. 어디까지는 같아야 하고, 어디부터는 달라야 하는가. 저희는 그 위계와 경계를 설계하고, 각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현재는 같은 체계 위에서 리조트 브랜딩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브랜드 아키텍처는 문서 위에서는 도표지만, 실제 세계에서 그 위계가 처음으로 눈에 보이는 자리가 바로 사인입니다. 서체의 굵기, 글자 사이의 간격, 소재의 등급, 벽면에서 떨어진 거리 — 입주자는 이 미세한 차이를 통해 '이 단지가 이 그룹 안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가'를 무의식적으로 읽어냅니다. 결국 사인은 마감재가 아니라 브랜드 아키텍처의 물리적 구현체인 셈이죠. 그 판단을 아키텍처를 설계한 사람이 아닌 다른 주체가 내리면, 도표 위의 위계는 현장에서 조용히 무너집니다. 인테리어의 판단 기준은 공간의 완성도입니다. 소재의 조화, 마감의 정교함이 우선이죠. 반면 브랜딩의 판단 기준은 인지 경험과 체계의 일관성입니다. 이 문구가 어느 거리에서 읽히는지, 어두운 저녁에 어떤 인상을 남기는지, 그리고 이 표현이 다른 단지와의 관계 속에서 정확한 위치를 말하고 있는지를 봅니다.
두 기준은 자주 다른 답을 냅니다. 주거 공간에서 이건 특히 결정적입니다. 광고는 몇 번 보고 지나가지만, 입주민은 같은 사인을 하루에 몇 번씩, 몇 년에 걸쳐 마주칩니다. 브랜드 자산으로서의 노출 총량이 어떤 캠페인보다도 압도적이죠. 이 과정에서 발견한 가능성은 이렇습니다. 브랜딩이 평면에서 벗어나 물성·스케일·동선의 언어를 갖는 순간, 브랜드는 '보는 것'에서 '통과하는 것'으로 바뀝니다. 사람은 자기가 매일 지나는 공간을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거든요. 그때 브랜드는 인지의 대상이 아니라 소속감의 대상이 됩니다.

비포브랜드의 작업은 로고나 그래픽에 머무르지 않고, 브랜드가 고객과 만나는 실제 접점으로 확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자이너님께서는 오늘날 브랜딩 에이전시의 역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보시나요?
브랜드는 로고에서 시작해서 CS 응대 문장에서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는 브랜드북을 읽지 않습니다. 배송이 하루 늦었을 때 받은 알림 문구, 반품을 요청했을 때의 응대 톤, 매장 직원의 첫마디에서 브랜드를 판단하죠. 그 순간들이 일관되지 않으면 앞단의 모든 정교한 설계는 회수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확장의 기준을 '영역'이 아니라 '접점'으로 봅니다. 고객이 브랜드를 만나는 자리라면, 그게 인테리어든 물류든 응대 스크립트든 브랜딩의 사정권 안에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분명한 선이 필요합니다. 에이전시가 모든 것을 직접 실행하겠다는 건 오만이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저희가 지향하는 역할은 기준의 저자입니다.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실행하되, 그 판단의 기준선은 브랜드가 제공하는 것. 실행의 주체는 나눠 갖되 기준의 주체는 하나여야 브랜드가 흩어지지 않습니다.

로맨틱 타이거는 최예나 디자이너님이 직접 론칭한 레그웨어 브랜드입니다. 클라이언트의 브랜드를 만드는 일과 직접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일은 매우 다를 것 같습니다. 로맨틱 타이거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에이전시 운영자로서의 경험이 브랜드 론칭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에이전시 일에는 구조적인 아쉬움이 있습니다. 브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 시장의 실제 반응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채 프로젝트가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안하고 설득한 뒤 결과물을 전달하면 저희의 역할은 대부분 거기서 마무리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내린 판단이 실제 시장에서 얼마나 유효한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클라이언트의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 설득의 과정이라면,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일은 책임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의 승인을 받을 필요는 없지만, 모든 결정의 결과는 창고에 쌓이는 재고와 통장 잔고를 통해 매우 분명하게 돌아옵니다.
에이전시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된 부분도 분명했습니다. 첫 제품을 만들기 전부터 브랜드의 세계관과 톤앤매너, 컬러 시스템을 먼저 설계했고, 덕분에 로맨틱 타이거는 첫 시즌부터 하나의 완성된 브랜드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제가 착각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잘 만든 브랜드는 자연스럽게 팔릴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직접 운영해 보니, 잘 만든 브랜드는 사람들이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팔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이를 연결하는 유통, 노출, 판매 동선을 구축하는 일은 브랜딩만큼이나 어렵고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브랜드를 직접 운영하면서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이야말로 비즈니스에서 가장 큰 과제라는 점을 몸소 배울 수 있었습니다.

로맨틱 타이거는 양말이라는 기능적 제품군을 넘어, 레그웨어라는 표현을 통해 보다 넓은 패션적 태도와 정체성을 제안하는 브랜드로 보입니다. 로맨틱 타이거가 ‘레그웨어’라는 언어를 선택한 이유와, 이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브랜드의 관점은 무엇인가요?
언어를 바꾸면 비교 대상이 바뀌고, 비교 대상이 바뀌면 가격의 기준선이 바뀝니다. '양말'은 소모품의 언어입니다. 그 단어를 쓰는 순간 소비자의 머릿속에는 마트의 5켤레 묶음이 기준점으로 자리 잡습니다. 어떤 디자인을 얹어도 그 앵커에서 벗어나기 어렵죠. 반면 '레그웨어'는 착장의 언어입니다. 비교 대상이 묶음 양말이 아니라 그날의 스타일링 전체가 되고, 소비자의 질문도 "이게 얼마인가"에서 "이게 나와 어울리는가"로 이동합니다. 관점의 측면에서도 이 단어가 정확했습니다. 다리는 옷차림에서 가장 늦게 결정되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자리입니다. 전체를 뒤엎지 않고도 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작고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죠. 저는 그 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큰 결단 없이도 오늘의 나를 다르게 선언할 수 있는 자리. 로맨틱 타이거는 그 작은 선언을 제안하는 브랜드입니다.

로맨틱 타이거의 브랜드 메시지에는 “identity, attitude, worldview”와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작은 제품 카테고리 안에서 개인의 태도와 세계관을 표현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제품의 기능보다 브랜드의 감도와 태도를 먼저 설계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하셨나요?
기능은 검증의 언어이고 태도는 선택의 언어입니다. 소비자는 기능으로 제품을 검증하지만, 선택은 태도로 합니다. 통기성과 내구성은 구매를 정당화해줄 뿐, 구매를 발생시키지는 않죠. 그래서 순서를 뒤집었습니다. 시즌 기획을 할 때 제품 사양이 아니라 문장부터 씁니다. 이번 시즌의 그녀는 어떤 하루를 보내는가, 어떤 상황에서 이 아이템을 고르는가. 그 짧은 서사에서 컬러 팔레트와 패턴의 밀도, 촉감의 방향이 도출됩니다. 제품은 그 이야기의 결과물로 나옵니다. 브랜드 네임 자체가 이 전략의 압축이기도 합니다. 로맨틱과 타이거, 부드러움과 사나움이라는 모순된 두 단어를 나란히 놓았습니다. 사람의 정체성은 원래 일관되지 않으니까요. 부드러운 날과 사나운 날이 같은 사람 안에 있고, 그 진폭 전체를 긍정하는 것이 이 브랜드의 관점입니다. 태도를 설계한다는 건 결국 소비자에게 '이 브랜드를 고르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답을 쥐여주는 일입니다.

디자이너가 직접 브랜드를 운영하면 브랜딩이 더 자유로워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생산, 유통, 재고, 가격, 고객 반응 등 현실적인 비즈니스 문제와 계속 마주하게 됩니다. 로맨틱 타이거를 운영하면서 디자이너로서 가장 크게 배운 비즈니스 감각은 무엇인가요?
가장 크게 배운 건 이겁니다. 디자인은 결정이지만, 재고는 결과다. 에이전시에서는 색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게 파일 하나를 더 만드는 일입니다. 하지만 브랜드에서는 최소 생산 수량이 곱해집니다. 팔리지 않은 재고는 창고에 쌓인 나의 취향이고, 그건 아주 정직하고 아주 아픈 피드백이죠. 두 번째는 캐시플로우의 감각입니다. 매출과 현금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원부자재 대금은 먼저 나가고 정산은 나중에 들어옵니다.
잘 팔리는 시즌에 오히려 현금이 마르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시즌 기획이 감성이 아니라 회전율의 문제라는 걸 이해했습니다. 세 번째는 가격에 대한 관점의 변화입니다. 예전에는 가격을 원가에 마진을 더한 결과로 봤습니다. 지금은 가격을 브랜드가 시장에서 점유한 자리의 표현으로 봅니다. 가격은 계산의 결과가 아니라 선언이고, 그 선언을 지탱하는 건 결국 브랜드가 쌓아온 맥락입니다. 이 경험은 에이전시 일에도 그대로 돌아옵니다. 클라이언트가 왜 그 결정을 망설이는지, 이제는 숫자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많은 디자이너들이 언젠가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디자인 역량만으로 브랜드를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디자이너가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에 반드시 준비해야 할 비즈니스적 조건이나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팔리지 않는 시간을 버틸 자금과 각오가 필요합니다. 브랜드는 대체로 1년 안에 답을 주지 않습니다.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도 몇 달 동안 반응이 없다면,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는 현금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급한 할인으로 브랜드 스스로의 가치를 훼손하게 됩니다. 초기 할인은 당장의 매출을 앞당길 수는 있지만, 브랜드의 가격 기준을 영구적으로 낮추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둘째, 판매 이후의 운영 구조를 디자인만큼 중요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물류, 재고 관리, 반품, 고객 응대는 디자이너들이 가장 소홀히 하기 쉬운 영역이지만, 고객이 브랜드를 실제로 경험하는 대부분의 순간은 바로 이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이 부분이 허술하면 아무리 뛰어난 디자인도 그 가치를 끝까지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셋째,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취향을 시장의 반응에 맞춰 조정할 수 있는가입니다. 디자이너가 브랜드를 만들 때 가장 큰 자산은 확고한 안목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가장 큰 위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시장의 반응은 취향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중요한 정보입니다. 그것을 정보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브랜드를 오래 운영할 수 있지만, 자존심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첫 시즌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브랜드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운영하는 것입니다. 론칭은 결승선이 아니라 출발선이며, 디자인 역량은 그 긴 운영 과정에서 필요한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Archive. Design. Esse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