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혁 | ASIA DESIGN PRIZE 미디어 편집장
공공 디자인은 오랫동안 기능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보행자의 이동을 안내하는 표지판, 휠체어가 통과할 수 있는 경사로, 비상 상황에서 작동하는 조명, 도시의 광장과 공원에 적용되는 사인 시스템까지 대부분의 공공 디자인은 얼마나 정확하고 안전하게 기능하는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2026~2027 아시아 디자인 트렌드 리포트에서 발견한 흐름은 공공 디자인의 역할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능과 안전을 충족하는 것을 넘어 시민이 공간과 서비스를 이용하며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까지 설계의 대상으로 포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리포트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CIVITONE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Civic과 Tone을 결합한 신조어로, 공공 공간과 시민 서비스에 따뜻함과 배려, 신뢰와 같은 정서적 경험을 의도적으로 부여하는 디자인 전략을 의미한다.

< THINKaMuna Pilipinas, ASIA DESIGN PRIZE 2026 Winner >
필리핀의 THINKaMuna Pilipinas는 이러한 변화를 그래픽 디자인의 영역에서 보여준다. 데이터에서는 digital, graphic, red, flag가 함께 높은 빈도로 등장했는데, 이는 시민 교육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국가 정체성과 시각 언어를 연결하는 경험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Quemoy Memory, ASIA DESIGN PRIZE 2026 Grand Prize >
대만의 Quemoy Memory는 오래된 주택과 가족의 기록을 개인의 추억이 아닌 지역사회가 함께 공유하는 문화 자산으로 전환했으며, 싱가포르의 Posters with Purpose Book은 사회적 메시지를 누구나 쉽게 접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시각 언어로 재해석해 디자인이 시민 행동과 인식을 연결하는 공공적 매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JOYJAY air purifier sterilizer for baby, ASIA DESIGN PRIZE 2026 Grand Prize >
한국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한국 트렌드 가운데 하나인 Care Driven Function은 사용자 중심 설계를 건강과 심리적 안정까지 확장하며, 영아용 공기청정기나 의료 인터페이스, 생활가전처럼 사용자의 불안과 부담을 줄이는 조용한 배려를 디자인의 핵심 가치로 삼는다.

< Drama as an Education Tool, ASIA DESIGN PRIZE 2026 Winner >
홍콩의 Drama as an Education Tool 역시 학교를 하나의 교육 무대로 재해석해 학생들이 공간을 단순히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도록 만든 사례다. 교실과 복도는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학습과 감정을 연결하는 장치가 된다. 이러한 사례를 종합하면 CIVITONE은 공공 디자인이 기능의 정확성뿐 아니라 시민의 정서적 경험까지 함께 설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공공 디자인의 범위는 공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 PEE POO CARE, ASIA DESIGN PRIZE 2026 Winner >
대만의 Pee Poo Care와 C.F.T Patch는 신생아 건강관리와 의료 안전을 보다 직관적이고 따뜻한 인터페이스로 풀어내며 의료와 복지 영역에서도 시민의 불안과 판단 부담을 줄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CIVITONE이 공공 공간뿐 아니라 시민의 삶 전반을 아우르는 디자인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공공의 감정 인프라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지금까지 도로와 전기, 통신처럼 물리적인 기반 시설만을 공공 인프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병원과 학교, 도서관과 공원에서 시민이 어떤 감정을 경험하는가 역시 도시의 품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CIVITONE이 단순히 감성을 강조하는 디자인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시민의 감정을 자극하거나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정보를 편안하게 이해하고 공간을 안전하게 이용하며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공공 디자인은 감정까지 설계하기 시작했을까. 첫째, 시민들은 민간 공간에서 높은 수준의 경험을 일상적으로 접하면서 공공 공간에도 같은 수준의 배려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둘째, 시민은 더 이상 서비스를 수동적으로 받는 존재가 아니라 정보를 선택하고 참여하는 주체가 되었기 때문에 공공의 안내와 커뮤니케이션 역시 전달 방식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셋째, 공공 영역에 대한 윤리적 기대가 높아졌다. 시민은 공공 서비스에서도 단순한 기능을 넘어 자신이 존중받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변화는 공공 캠페인의 방식도 바꾸고 있다. 과거처럼 메시지를 크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결국 CIVITONE은 공공 디자인이 기능 중심의 시스템에서 시민 경험 중심의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디자이너의 역할 역시 정보를 정리하는 사람을 넘어 시민의 경험과 감정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확장되고 있다. 작은 의자 하나를 설계하더라도 누가 앉고 얼마나 머무르며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공공이 다시 따뜻해질 수 있는가. CIVITONE은 이 질문에 디자인으로 답하려는 동시대 아시아 디자인의 흐름이다. 그 답은 거대한 랜드마크가 아니라 작은 안내 문구와 병원의 인터페이스, 학교의 복도, 동네 공원의 의자처럼 시민의 일상 속 가장 가까운 접점에서 시작된다. 디자인이 시민의 기능적 요구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정서적 경험까지 함께 설계하기 시작한 것, 그것이 지금 아시아 공공 디자인에서 발견되는 CIVITONE의 가장 중요한 변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