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우.png

한양대학교 최종우 교수. ffd랩 디렉터

전) 영국 맥라렌 시니어 제품운송 디자이너, 로지텍MX 시리즈 제품 수석 디자이너

 

 

 


 

 

 

얼마 전 동료 교수들과 AI 시대의 디자인 교육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화제는 학생들이 제출하는 결과물과 그것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이어졌다. AI와 함께 작업하면 짧은 시간에도 상당히 정교한 이미지가 나온다. 예전이라면 높은 점수를 주었을 표현력 앞에서 이제는 판단이 망설여진다. 이 결과를 어디까지 학생의 실력으로 인정해야 할까. 그런데 대화를 이어갈수록 더 고민에 들게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지금까지 학생의 실력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일까.

 

 

 

Image 1.jpeg

스케치와 표현의 완성도는 오랫동안 디자이너의 숙련을 가늠하는 중요한 단서였다

< Sketch : Michael DiTullo (Core 77) >

 

 

 

디자인 교육에서 완성된 결과물은 오랫동안 중요한 평가의 근거였다. 포트폴리오에 담긴 스케치와 모델링, 정교한 렌더링을 보며 작업자의 역량을 짐작했다. 실제로 그 이미지를 만들려면 상당한 시간과 숙련이 필요했다. 표현의 완성도가 디자인 능력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느 정도 훈련을 거쳤는지 보여주는 단서로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교수도 채용 담당자도 그 단서를 통해 작업 과정을 추정해왔다. AI는 그 익숙한 연결을 흔들고 있다. 높은 수준의 표현을 얻기 위해 반드시 그만큼의 제작 숙련을 갖출 필요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결과가 좋아졌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사용자는 디자이너가 어떤 도구를 썼는지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제품인지에 관심이 있을 것이다. 학생 역시 같은 시간에 더 나은 결과를 얻을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활용하려 할 것이다. 문제는 좋아진 결과에서 개인의 어떤 역량을 읽어낼 수 있느냐는 데 있다.

 

 

 

DFGDFGFD - 복사본.png

SDFSDFSFD.png

Vizcom을 활용해 탐색한 의자 디자인과 3D 프린트 모형. AI는 형태의 시각화와 반복 검토를 빠르게 하며 디자인 과정을 바꾸고 있다.

< Photo : by Vizcom >

 

 

 

가령 두 학생이 비슷한 수준의 의자 이미지를 제출했다고 생각해보자. 한 학생은 사용자의 앉는 자세와 제작 조건을 검토한 뒤 AI를 활용해 자신의 구상을 구체화했다. 다른 학생은 여러 이미지를 생성하다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것을 선택했다. 제출된 한 장만 보면 차이를 알아보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등받이 각도를 바꾸거나 생산 방식을 조정해야 하는 순간에는 각자가 이해하고 있는 범위가 드러날 것이다. 지금의 평가가 그 차이까지 확인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그렇다고 직접 모델링한 학생에게 무조건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 작업했다는 사실은 노력의 증거일 수 있지만,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했다는 증거와는 다르다. 반대로 AI를 활용했다는 이유로 성과를 낮게 평가한다면 도구를 선택하고 조합하는 능력을 놓칠 수 있다. 이제는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얼마나 많은 부분을 손수 만들었는지 만으로 실력을 가늠하기 어렵다. 평가하는 사람도 자신이 익숙한 숙련을 실력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 세대 역시 이런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3D 프로그램과 렌더링 엔진, CMF 라이브러리의 도움으로 작업했고, 촬영과 목업 제작을 다른 전문가에게 맡기기도 했다. 결과물에는 언제나 여러 사람과 도구의 능력이 함께 들어 있었다. 우리는 그 안에서 기획하고 조율한 부분을 자신의 역량으로 설명해왔다. 그렇다면 AI와 협업하는 사람에게도 무엇을 맡겼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직접 결정했는지 설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기여의 범위를 묻는 기준은 세대에 따라 달라져서는 곤란하다. 여기서 실력이라는 말의 범위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눠볼 필요가 있다.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 조건을 정리하는 능력, 대안을 만드는 능력, 선택하고 검증하는 능력은 서로 연결되지만 같지는 않다. 뛰어난 이미지를 생성하는 사람도 있고, 잘못 설정된 과제의 방향부터 다시 잡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여러 부서의 요구를 조율해 실제 생산까지 이끈다. 이 서로 다른 역량을 결과물의 시각적 완성도 하나로 줄여 평가해온 것은 아닌가.

 

특히 포트폴리오는 이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한 장의 이미지에는 프로젝트의 성과가 압축되어 있지만 그 성과에 지원자가 어떻게 기여했는지는 충분히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잘 정리된 과정 설명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했던 고민을 기록한 것인지, 완성된 결과에 맞춰 나중에 구성한 설명인지 문서만으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이제 포트폴리오를 보는 사람에게는 작품을 감상하는 안목에 더해, 지원자의 역할과 판단을 확인하는 질문이 필요해진다. 예를 들어 완성된 안을 설명하게 한 뒤 조건 하나를 바꿔볼 수 있다. 판매 가격을 낮춰야 한다면 무엇부터 수정할 것인가. 사용자의 손이 더 작다면 어느 치수를 다시 확인할 것인가. 선택한 소재를 구할 수 없다면 어떤 대안을 검토할 것인가. 여기서도 답변의 유창함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설명한 내용을 간단한 수정안이나 계산, 실제 확인으로 이어갈 수 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말로 자신을 포장하는 능력이 새로운 평가의 지름길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수업에서도 무엇을 평가하는 과제인지 먼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형태를 직접 구현하는 기초 역량을 확인하는 수업이라면 도구의 사용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 반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라면 AI를 포함한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게 하고, 그 선택과 성과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도구라도 학습 목표에 따라 허용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학생에게 규칙을 요구하기 전에 교수부터 어떤 능력을 확인하려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평가를 바꾸는 데는 비용도 따른다. 완성된 이미지 몇 장을 비교하는 것보다 작업 중간의 선택을 확인하고, 조건을 바꿔 질문하고, 수정 결과를 살피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과정을 감시하듯 기록하게 하는 방식은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결정이 있었던 몇 지점을 골라 확인하는 방식부터 고민할 수 있다. 학생이 보여주기 위한 기록을 늘리는 데 시간을 쓰지 않도록 평가 자체도 설계해야 한다.

 

학생에게도 자신의 성과를 설명하는 언어가 필요해진다. AI가 만들었다는 이유로 모든 기여를 축소할 필요도 없고, 최종 결과가 자신의 제출물이라는 이유로 모든 능력을 갖췄다고 주장할 필요도 없다. 어떤 문제를 정의했고, 어떤 조건을 제시했으며, 무엇을 수정하고 확인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아직 확인하지 못한 일을 구분하는 태도는 협업하는 상대에게도 중요한 정보다. 실력에 대한 정직함은 도구를 공개하는 일보다 더 넓은 문제다.

 

 

SDFGSDFGDFG.png

AI 시대의 역량은 도구의 활용을 넘어, 결과를 이해하고 평가하며 자신의 결정에 책임지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 Photo : by David Armano >

 

 

 

AI의 완성도는 나의 실력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결과물에서 잠시 눈을 떼고 그 결과에 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야 한다. 평가하는 사람 역시 무엇을 근거로 타인의 능력을 인정해왔는지 돌아봐야 한다. AI가 디자인 과정 깊숙이 들어온 2026년, 교육 현장과 산업계는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눈앞의 완성도를 넘어, 그 결과를 만든 사람이 새로운 문제 앞에서도 스스로 판단하고 대응할 수 있는지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 이제 우리에게는 달라진 작업 방식 속에서 디자이너의 역량을 제대로 읽어낼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

  • Founder: Doyoung Kim
  • Business Registration Number: 454-86-01044
  • Copyright © DESIGNSORI Co., Ltd.
Menu